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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나이지리아 IS 테러리스트에 '성탄절 폭탄' 세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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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나이지리아 IS 테러리스트에 '성탄절 폭탄' 세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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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IS 공습, 기독교인 학살한 대가”
11월 초 “총 쏘며 들어갈 것” 사전 경고
지지층 요구 반영… 분쟁 단순화 지적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 미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열린 성탄절 만찬에 참석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있다. 팜비치=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 미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열린 성탄절 만찬에 참석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있다. 팜비치=AFP 연합뉴스


미국이 서아프리카 나이지리아 내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을 상대로 성탄절 폭탄 세례를 퍼부었다. 우파 기독교 복음주의 세력이 지지 기반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기독교인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복잡한 분쟁 배경을 단순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도리 없는 외세 개입 허용


트럼프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오늘 밤 최고사령관인 나의 지시로 미국이 나이지리아 북서부에 있는 ISIS 테러리스트 쓰레기들을 상대로 강력하고 치명적인 공습을 단행했다”며 “전쟁부(국방부)가 미국만 할 수 있는 완벽한 공습을 여러 차례 실시했다”고 밝혔다. ISIS는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미국식 호칭이다.

이번 공습은 나이지리아와 니제르 간 접경의 IS 거점을 겨냥한 것으로 보도됐다. 미군 아프리카사령부는 “25일 소코토주(州)에서 나이지리아 내 ISIS 테러리스트를 상대로 공습을 수행했다”고 공지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미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기니만 해상에 있는 미 해군 함정에서 발사된 10여 발의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이 IS 캠프 2곳의 반란군들을 타격했다고 전했다.

공격 이유는 기독교인 살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전에 나는 이 테러리스트들에게 그들이 기독교인 학살을 멈추지 않으면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고, 오늘 밤 그렇게 됐다”고 말했다.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은 엑스(X)에 “더 많은 게 있을 것”이라고 올려 추가 공격 가능성을 시사했다.

군사 작전은 트럼프 대통령의 지난달 초 사전 경고 뒤 근 두 달 만에 현실화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0월 31일 기독교인들이 살해되고 있다며 나이지리아를 ‘특별 우려국’으로 지정하더니 이튿날 트루스소설을 통해 이슬람 무장세력을 소탕하러 미군이 “총을 쏘며(guns-a-blazing)” 나이지리아에 진입할 수도 있다고 예고했다. 또 나이지리아가 기독교인 살해를 계속 용납할 경우 모든 원조와 지원을 끊겠다고 위협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 행동을 경고한 지 약 3주 만인 지난달 21일 나이지리아 서부 나이저주의 한 가톨릭 학교에서 학생 303명과 교사 12명이 무장 괴한들에 의해 납치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협조 말고는 나이지리아에 사실상 다른 도리가 없었다. 나이지리아 외교부는 26일 새벽 성명을 내고 “나이지리아 당국은 지속적인 테러 위협과 폭력적 극단주의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을 포함한 국제 파트너들과의 체계적인 안보 협력을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헤그세스 장관은 X에 “나이지리아 정부의 지원과 협력에 감사한다”고 적었다.

트럼프식 십자군 리얼리티 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나이지리아 내 이슬람국가(IS) 겨냥 군사작전 가능성 시사 발언이 실린 현지 신문들이 2일 나이지리아 대도시 라고스의 가판대에 진열돼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나이지리아 내 이슬람국가(IS) 겨냥 군사작전 가능성 시사 발언이 실린 현지 신문들이 2일 나이지리아 대도시 라고스의 가판대에 진열돼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미국의 작전은 나이지리아 기독교인들이 폭력의 표적이 되고 있다는 미국 내 기독교 복음주의 단체와 연방 상원의원 테드 크루즈(텍사스) 등 집권 공화당 중진들의 주장이 몇 개월간 줄기차게 제기된 뒤 이뤄졌다.

하지만 나이지리아의 분쟁 배경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나이지리아 인구 2억3,700만 명은 주로 북부에 거주하는 무슬림 유목민과 남부에 거주하는 기독교인 농민이 거의 반반이다. 오래된 이들 간 갈등에는 종교뿐 아니라 종족, 자원 부족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더욱이 10년 넘게 북동부에 자리 잡은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 보코하람은 신앙심이 부족한 무슬림을 기독교인과 구분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이지리아 서부·북부에서는 몸값을 노린 현지 무장단체의 민간인 공격이나 납치(반디트)도 빈번하다고 한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ficciones@hankookilbo.com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