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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대통령 집무실이 청와대로 공식 이전함에 따라 29일부터 봉황기가 청와대에 게양된다. 사진은 청와대 본관 앞에 걸려있었던 태극기와 봉황기. 뉴스1 |
29일 0시를 기해 청와대에 대한민국 대통령의 소재를 알리는 봉황기가 게양된다. 대통령 집무실이 용산으로 이전한 지 약 3년 7개월 만이다. 봉황기 게양 행사는 이재명 정부가 ‘계엄정권’과의 단절을 알리려는 상징적 세리머니가 될 것으로 보인다.
□ 봉황은 날카로운 부리와 볏이 특징인 상상의 새다. 중국 동한시대의 사상가인 왕충(27~97?)은 정치서인 ‘논형’에서 "성군이 오시면 태평성대를 이루고 태평성대가 오면 봉황이 나타난다"고 썼다. 봉황은 이처럼 동양에서는 고대로부터 잘 다스려지는 나라와 성군을 상징했다. 암(凰)과 수(鳳) 한 쌍은 정이 도타워 화목한 남녀 사이를 의미했고, 오동나무에 깃든다는 생태적 특성 때문에 청렴한 선비를 지칭하기도 했다. 봉황의 이런 상서로운 이미지 때문에 자연스럽게 대통령 상징으로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 대한민국 대통령 상징으로 봉황이 공식 사용된 건 박정희 정부 때인 1967년 ‘대통령 표장에 대한 공고’가 제정되면서다. 봉황 두 마리가 마주 보고 있고 가운데에 무궁화가 그려져 있는 표장이 대통령 상징으로 결정됐다. 하지만 봉황의 전근대적이고 권위주의적 이미지 때문에 민주화 이후에는 탐탁지 않게 여겨지기도 했다. '보통사람'을 자처했던 노태우 대통령은 ‘각하’라는 명칭을 없애고 봉황 문장 사용을 자제하도록 했으며,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식 연단에서 처음으로 봉황 문장을 걷어내고 신문고 문양의 휘장을 사용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태평고를, 박근혜 대통령은 삼태극 문양을 썼다. 이후에도 제왕적 대통령제 폐단이 끊임없이 지적되면서 일각에서 민주공화국에 걸맞지 않은 봉황 문장을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 청와대로 돌아온 이재명 정부가 앞장서서 봉황 문장을 폐기할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정권의 성패는 대통령 상징이나 대통령 거처의 변화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통치자가 아닌 국민의 가장 큰 일꾼으로 봉사하겠다는 마음가짐, 형식과 권위가 아니라 실용과 소통을 중시하는 스타일을 유지한다면 봉황 문장이 변수가 될 리 없다.
이왕구 논설위원 fab4@hankook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