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5일 서울 종로구 주한미국대사관에서 미국 비자를 발급받으려는 시민들이 줄을 서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김보영 기자] 미국에서 일과 언어를 배우는 기회로 활용되는 J-1(비이민 교환방문) 비자 제도가 사실상 ‘현대판 노예제’처럼 운영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25일(현지시간) 매년 30만명 이상이 J-1 비자로 미국에 입국하고 있지만, 일부 악덕 업체들이 이를 악용해 외국 학생들을 중노동 현장으로 내몰고 있다고 보도했다.
NYT는 2023년 J-1 비자를 통해 미국에 온 한국인 대학생 강모씨의 사례를 소개했다. 강씨는 지난 2023년 “일생에 한 번뿐인 기회”라는 J-1 비자 홍보 자료를 보고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왔다. 그는 지원자를 모집하는 ‘J-1 비자 익스체인지’라는 단체에 수수료로 약 5000달러(약 725만원)를 냈다.
하지만 강씨에게 주어진 ‘한 번뿐인 기회’는 인디애나주의 한 제철 공장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교육조차 거의 받지 못한 채 정화조 청소를 강요받았다. 이에 불만을 제기하자 업체는 강씨를 해고했다. 강씨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이 과정에서 스폰서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고 주장했다. 소송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미국에는 이처럼 각종 문화교류·업무교육 명목으로 운영되는 스폰서가 영리·비영리 재단 형태로 다수 존재한다. 이 단체들은 현지의 취업박람회 등을 통해 J-1 학생을 모집하고 미국 내 업체들과 연결·관리하는 일을 한다.
1990년 세워진 ‘전세계 국제학생교류재단’(WISE)도 그중 한 곳이다. 이 단체는 연간 3300명의 J-1 비자 노동자를 모집하고 있으며, 수수료 수입만 490만달러에 이른다. 그러나 2012년에는 WISE를 통해 입국한 외국 학생들이 알래스카 해산물 가공공장에 보내진 뒤 하루 최대 19시간에 달하는 중노동에 시달렸다며 국무부에 신고한 사실이 드러났다.
2018년에는 이 재단에 1인당 2000달러를 내고 온 외국인 학생들이 뉴욕주의 한 산업용 온실로 보내졌다가 성희롱과 부상을 당하는 일도 발생했다. 이듬해 네브래스카주의 한 양돈 농장으로 보내진 또 다른 이들은 하루 12시간씩 일했고 다쳐도 병원에 갈 수 없었다며 “노예 같았다”고 호소했다. 한 독일인 학생은 지난해 오클라호마주 농장에서 일하던 중 트럭 타이어 폭발로 두개골이 함몰되면서 중증 장애를 입기도 했다.
반면 스폰서 운영자들은 J-1 입국자들과 업체들로부터 받은 수수료 등으로 막대한 수익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WISE 재단을 세운 데이비드 달은 한해 52만달러를 받았으며, 200평 넘는 저택으로 집을 옮겼다. 또 ‘미국 외국학습 연구소’라는 스폰서는 사고·여행보험을 제공하는 별도 회사를 차린 뒤 J-1 비자 입국자들에게 최대 월 100달러의 보험 가입을 의무화하기도 했다.
NYT는 국무부도 스폰서들의 파행적 운영 실태를 모르지 않지만, 형식적인 감독에만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13년 미 연방 의회에선 J-1 비자를 포함한 외국인 근로자 채용 프로그램과 관련한 수수료를 금지하는 법안이 추진됐으나 스폰서들의 로비로 부결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