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28일 서울 종로구 주한 미국대사관 앞에서 미국 비자를 발급 받으려는 사람들이 줄 서 있는 모습. 연합뉴스 |
미국 국무부가 운영하는 대표적 문화 교류 프로그램인 제이(J)-1 비자 제도가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 ‘현대판 노예제’처럼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고 뉴욕타임스가 25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이 프로그램은 전 세계 청년들이 미국에서 일하면서 문화적 경험을 쌓도록 하기 위해 고안됐다. 하지만 일부 스폰서 기관들은 외국 청년들을 미국에 보내는 과정에서 막대한 수수료를 챙기면서도 이들의 노동 조건이나 안전 문제에는 눈을 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뉴욕타임스 보도를 보면, 한 스폰서 단체는 대표에게 연봉 50만달러 이상을 지급하면서 외국인 연수생들을 노동 착취에 가까운 환경으로 보냈다. 또 다른 단체는 최고경영자의 가족을 직원으로 등록해 최근 2년 동안 100만달러 이상의 수익을 챙겼다. 일부 단체는 자신들이 소유한 농장이나 와이너리로 연수생들을 보내기도 했다.
J-1 비자 프로그램의 운영을 위탁받은 이들 스폰서들은 원래 청년들에게 안전한 근무처를 연결해주고 미국 문화를 소개하는 외교적 역할을 맡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이들은 수천달러의 참가비를 청구하면서도, 현장 근무 실태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오히려 고용주와의 유착 관계를 통해 이익을 극대화했다”고 전했다.
한국 대학생 강아무개씨는 2023년 “일생에 단 한 번뿐인 기회”라는 홍보 문구에 이끌려 약 5000달러의 참가비를 지불하고 인디애나의 한 제철소로 파견됐다. 그러나 그는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한 채 정화조를 청소하는 일을 하다 해고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관련 소송을 진행 중이다. 독일 출신 농업공학 학생 리앤더 바이그도 지난해 오클라호마의 한 농장에 배치됐다가 사고로 두개골 골절과 외상성 뇌손상을 입었다. 그는 “스폰서를 믿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저 값싼 노동력일 뿐이었다”고 말했다.
스폰서 단체들은 미국 내 고용주와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문제 발생 시 연수생보다는 고용주 편에 서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경제정책연구소(EPI)의 다니엘 코스타 이사는 뉴욕타임스에 “노동자를 보호해야 할 단체들이 고용 중개인 역할도 하고 있다. 이는 재앙의 조합”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국무부가 지난 2000년과 2012년 각각 실시한 내부 감사에서 일부 스폰서 단체가 돈벌이만을 목적으로 존재한다며 심각성을 지적했지만, 실질적인 규제는 이뤄지지 않았다”며 “실제로 스폰서 단체들은 로비를 통해 참가비 제한 등의 규제를 무력화시켰으며, 참가비 정보를 정부에만 제출하고 일반에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국무부는 “관련 스폰서에 대해 규정에 따라 관리하고 있다”며 “예전 사례를 끄집어내 현재 국무부 운영을 비판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뉴욕타임스에 해명했다.
워싱턴/김원철 특파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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