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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노봉법 '진짜 사장' 기준 제시…정리해고도 교섭 대상

노컷뉴스 CBS노컷뉴스 김동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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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노봉법 '진짜 사장' 기준 제시…정리해고도 교섭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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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계와 노동계 우려 공존 속…정부, 해석 지침 발표
'구조적 통제'로 사용자성 판단 기준 구체화 노력
정리해고도 단체교섭 대상에 포함시키고, 일부 단협 위반 사항도 교섭 대상화
노동계, 구조적 통제 개념 등에 "법 취지 무력화" 반발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 시행을 앞두고, 고용노동부가 '노란봉투법'을 실제 현장에 적용할 때 활용할 해석지침 내용을 공개했다.

하청 노조와 단체교섭을 해야 할 원청 사용자를 가르는 핵심 잣대는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사실상 결정하는 '구조적 통제' 여부다. 또 임금 뿐 아니라 △정리해고 △구조조정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같은 문제로도 노동쟁의에 돌입할 수 있다고 정리했다. 노사가 이미 합의한 내용을 사측이 명확하게 어긴 경우에도 노동쟁의를 할 수 있게 됐다.

다만 노동계는 노란봉투법의 취지에 역행해 사용자성과 노동쟁의를 인정할 범위를 더 좁혀놓은 지침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나서 논란이 계속될 전망이다.

확대된 사용자성 판단, 핵심 잣대는 '구조적 통제'

고용노동부 제공

고용노동부 제공



고용노동부는 내년 3월 10일 시행되는 노란봉투법의 현장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마련한 '개정 노조법 해석지침안'을 이날부터 다음달 15일까지 행정예고한다고 26일 밝혔다.

이번 지침은 사용자 범위와 노동쟁의 대상을 확대한 개정법에 대해 경영계의 '1년 내내 하청노조와 교섭해야된다'는 우려와 노동계의 '실효성 확보' 요구가 충돌하는 가운데 정부가 내놓은 교섭의 기준점이다.

노동부는 개정 노조법 제2조 제2호 후문에 신설된 사용자 개념을 해석하며 '근로조건에 대한 구조적 통제'를 핵심 판단 기준으로 제시했다. 이는 원청이 하청 소속 노동자의 근로시간이나 작업 방식 등 근로조건의 핵심적인 부분을 사실상 결정하거나, 하청 업체가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재량을 본질적·지속적으로 제한하는 상태를 말한다.


지침에 따르면 사용자성 판단은 원칙적으로 실질적·구체적 지배력의 존재를 중심으로 하되, 단발적·일시적 개입이 아닌 '구조적 통제'가 핵심이다.

구체적으로는 △원청의 생산 계획이 하청 노동자 운용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인원 배치나 근무 형태를 결정하는 경우 △하청의 업무가 원청 사업 체계에 필수적으로 편입되어 하나의 작업 집단으로 운영되는 경우 △하청이 원청에 경제적으로 전속되어 자율적 결정권이 없는 경우 등이 보완적 징표로 고려된다.

다만, 통상적인 물량 도급 관계에서 납기나 품질을 요구하거나 거래 조건을 협상하는 행위는 '계약상 관리 범위' 내의 행위로 보아 구조적 통제와 엄격히 구분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대부분의 도급 관계인 물량 도급은 이번 지침의 적용 범위에서 사실상 제외된다"며 "사내하도급처럼 원·하청 업무가 밀접하게 연동된 경우 책임을 묻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노동안전, 복리후생, 근로시간, 임금 등 영역별 사용자성 판단 예시도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24일 서울 동작구 한국토지주택공사(LH) 공공분양주택 신축 공사 현장에서 불법하도급 점검을 실시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제공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24일 서울 동작구 한국토지주택공사(LH) 공공분양주택 신축 공사 현장에서 불법하도급 점검을 실시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제공



노동부는 현장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각 근로조건 영역별로 사용자성 판단에 활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예시도 제시했다.

노동안전 분야에서는 원청이 작업 공정과 안전 절차 등 전반적인 안전보건관리체계를 지배하고 있는지가 관건이다.


특히 원·하청 노동자가 동일 공간에서 혼재돼 근무하고, 시설과 장비의 소유권이 원청에 있어 하청 하청 사용자가 스스로 위험 요인을 없애거나 설비를 고치기 어려우면 원청의 사용자성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판례를 반영해, 원청이 안전 지침을 마련하고 이행을 감독하는 것이 법상 도급인의 의무라 할지라도 실질적 지배력이 있다면 사용자로서의 교섭 의무가 부인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또 하청 노동자가 사용하는 휴게공간이나 사무공간의 이용 기준을 원청이 정하고, 하청은 이에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 사용자성이 인정될 수 있다.

복리후생에서도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성과급 수준을 직접 결정하거나 원청의 성과지표에 연동시키는 경우, 또는 식대나 복지포인트를 원청이 일방적으로 축소·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면 교섭 대상이 된다.

근로시간 및 작업 방식에 있어서도 원청이 특정 라인에 투입할 인원과 근무시간을 구체적으로 정하거나, 교대제 변경(2조2교대→3조2교대)을 사실상 결정하는 경우 교섭대상으로 인정될 수 있다. 작업 방식에서도 원청이 세밀한 작업지시서나 시스템을 통해 업무 배정과 순서를 결정해 하청의 자율성을 제한한다면 구조적 통제로 본다.

임금·수당 분야는 가장 엄격하게 판단한다. 단순히 도급 단가를 정하는 것을 넘어,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임금 테이블을 직접 제시하거나 각종 수당의 지급 기준을 통제해 하청의 재량을 본질적으로 제한하는 특별한 사정이 있어야 한다. 반면 원청이 평균 임금을 고려해 도급 총액만 정하고 그 범위 내에서 하청이 자율적으로 지급한다면 사용자성 인정 여지는 적다.

정리해고도 단체교섭 대상에 포함

개정 노조법 제2조 제5호에 따라 노동쟁의의 정의도 대폭 확대됐다. 기존에는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분쟁만 인정됐으나, 법 개정에 따라 이제는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경영상의 결정'과 '명백한 단체협약 위반'도 포함됐다.

가장 큰 변화는 정리해고다. 기존 행정해석은 정리해고 결정을 '고도의 경영상 결단'으로 보아 교섭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았으나, 이번 지침은 이를 "근로자 지위 박탈 등 근로조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결정"으로 규정해 단체교섭 대상에 포함했다. 이에 따라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 실시 여부 자체를 두고 노사가 교섭하거나 쟁의행위를 할 수 있게 됐다.

다만 합병, 분할, 매각 등 기업 조직 변동 결정 그 자체는 '영업의 자유' 영역으로 보아 교섭 대상에서 제외했다. 하지만 이러한 결정의 결과로 정리해고나 배치전환이 객관적으로 예상되는 경우, 노조는 고용 보장 등을 요구하며 교섭을 신청할 수 있다.

'근로자 지위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의 경우, 노동부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징계·승진 기준의 설정 및 변경 요구 등에 대한 분쟁도 노동쟁의 대상에 명확히 포함된다고 밝혔다.

아울러 임금이나 휴가 등 일부 단체협약에 명시된 사항을 사용자가 명백히 위반한 경우도 권리분쟁임에도 불구하고 노동쟁의 대상에 포함시켜 노사가 자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했다.

"극한 투쟁 악순환 끊겠다"…노동계 "진짜 사장 회피 명분만 줬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24일 서울 동작구 한국토지주택공사(LH) 공공분양주택 신축 공사 현장에서 불법하도급 점검을 실시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제공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24일 서울 동작구 한국토지주택공사(LH) 공공분양주택 신축 공사 현장에서 불법하도급 점검을 실시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제공



노동부는 이번 지침을 노란봉투법 도입 과정에서 제기된 경영계의 불확실성 우려와 노동계의 기대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의도가 담겼다고 소개했다.

노동부 권창준 차관은 "개정 노동조합법은 원하청의 상생 성장을 위해 대화 자체가 불법인 상황을 해소하고 불법파업과 과도한 손해배상청구, 그리고 극한투쟁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서 새로운 노사관계 패러다임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번에 예고된 해석지침안은 이러한 입법취지를 반영하려는 것으로 과거와 달리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행정예고기간 중 다양한 현장 의견에 귀 기울이고 토론 등을 통해 최종안을 확정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노동계는 이번 지침이 개정법의 입법 취지를 전면 무력화하고 있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노동계 비판의 핵심은 노동부가 제시한 '구조적 통제'라는 기준이 기존의 불법파견 판단 기준보다 훨씬 엄격하다는 점에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이날 성명을 통해 "노동부의 해석지침은 불법파견 인정보다 더 엄격한 요건을 충족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며 "지침대로라면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나 불법파견에 이를 정도가 되어야만 지배력이 있다는 것으로 오인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불법파견이 인정되면 '직접고용'이라는 강력한 책임이 발생하지만, 개정 노조법상 사용자성은 단순히 '단체교섭 의무'를 지우는 것인 만큼 그 요건이 훨씬 완화되어야 함에도 노동부가 오히려 문턱을 높였다는 지적이다.

일반적인 도급계약 관계는 '구조적 통제'가 아니라고 한 점도 "오히려 도급계약관계는 지배력의 근거"라며 "불법파견과 달리 법률이나 계약에서 원청이 책임을 할당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문제를 해결할 권한과 책임이 원청에 있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한국노총은 사용자성 판단요소 중 하나인 '업무의 조직적 편입 및 통제 여부'를 보완적 징표로 삼겠다고 밝힌 것도 "원청과 교섭하고자 하는 하청·간접고용 노동자에게까지 불법파견 판단에 준하는 엄격한 기준이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 역시 "이는 묵시적 근로계약 관계이거나, 파견근로관계로 인정되어야 할 사안"이라며 "지침에 담으려면 '이런 경우는 다른 사정은 볼 필요도 없이 바로 실질적 지배력은 인정된다'고 설명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공공부문에 대한 노동부의 판단을 놓고, 한국노총은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위반 가능성을 제기했다. 한국노총은 "기획재정부가 공공기관의 직급·인원 구조까지 세세하게 관리하며 인건비를 통제하고, 경영평가와 각종 지침을 통해 인사·징계에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며 "이런 현실을 외면한 채 '재량'을 이유로 정부의 사용자성을 부정하는 것은 모순적 태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특히 노동계는 임금 분야 지침을 두고 "하청 노동자의 핵심 단체교섭 대상인 임금 교섭을 원천 차단하려는 의도"라고 비판한다. 노동부가 '원청이 임금 테이블을 직접 제시하거나 인건비를 사실상 결정해야 한다'는 조건을 단 것은, 실제 현장에서 '도급 총액(기성금)' 방식으로 계약 형태를 바꾸어 책임을 회피하는 원청들에 면죄부를 주는 격이라는 주장이다.

한국노총 역시 "'구조적 통제'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이유로 사용자 책임을 다시 좁히고 있다"며 "사실상 사용자들이 사용자성을 지우는 안내서로 활용될 우려가 크다"고 경고했다. 노동계는 이번 지침이 하청 노동자가 진짜 사장을 찾아가는 길을 막는 '장벽'이 될 것이라며, 행정예고 기간 중 투쟁을 예고했다.

노동부는 내년 1월 15일까지 노사 전문가 등 다양한 의견을 수렴한 뒤, 이를 반영해 최종 지침을 확정할 계획이다. 법 시행일인 내년 3월 10일에 맞춰 현장 지도를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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