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의 북한군 포로] 송환 절차 1년째 지지부진
우크라이나군이 지난 1월 생포한 북한군 포로인 정찰·저격수 리모(26·왼쪽)씨와 소총수 백모(21)씨. 이들은 올해 초 본지 인터뷰에서 “한국에 가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북한에서 복무하던 이들은 지난해 10~11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도와 쿠르스크 지역에 파병됐다./ 조선일보 DB |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동원됐다가 지난 1월 우크라이나군에 생포된 북한군 포로 2명이 한국 귀순 의사를 밝혔음에도, 한국과 우크라이나 간 송환 절차는 1년 가까이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우리 정부와 우크라이나가 모두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으면서 자칫 이들이 ‘국제 미아(迷兒)’ 신세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대한민국 헌법에 따라 ‘한국 국민’으로서의 지위를 지닌 이들은 지난 24일 탈북민 단체가 공개한 자필 편지에서 “한국에 계시는 분들을 친부모, 친형제로 생각하고 그 품속으로 가기로 마음먹었다”며 한국행 희망을 재확인했다.
현 정부 고위 관계자는 북한군 포로들의 편지가 공개된 직후 “(한국과 우크라이나) 정부 대 정부 사이의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며 “데려오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편지를 공개한 장세율 겨레얼통일연대 대표도 최근 외교부를 찾아 이들의 귀순 의사를 전달했고 외교부로부터 노력하고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국내외 전문가들은 “1년이 다 돼가는 시점에도 양국 정부 간 실질적으로 진행되는 협상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고 비판하고 있다. 특히 윤석열 정부 때는 탄핵 국면 속에서 제 역할을 못 했고, 이재명 정부 들어서는 소극적 대처로 송환 절차가 지연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남성욱 숙명여대 석좌교수는 25일 본지에 “우리 정부가 우크라이나 정부뿐 아니라 미국 등 국제사회에 북한군 포로들의 의사에 따라 한국행에 오를 수 있게 적극적으로 외교전을 펴야 하는데, 현재 그런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직 안보실 관계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북한 포로들은 혹시 북송되지 않을까 불안이 커질 것”이라면서 “이들이 한국행을 분명히 밝힌 이상, 정치적 고려보다 인도적 측면에서 이번 사안을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탈리아 구메뉴크 우크라이나 공익 저널리즘 연구소장은 24일 본지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가 이들을 방치하는 것은 무책임하고 근시안적인 처사”라고 했다. 그는 “이 문제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아니라 한국 정부에 물어야 할 사안”이라며 “한국 헌법상 한국 국민인 이들을 한국 정부가 데려가지 않는 것은 정말 이상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구메뉴크는 “한국 정부가 미국 등의 눈치를 보느라 너무 조심스러워하는 것 같다”며 “이들을 대우하는 방식은 민주주의 국가로서의 존엄과 문명 수준을 보여주는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했다.
지난 2월 북한군 포로 일부가 한국행을 원한다는 사실이 알려진 직후 당시 윤석열 정부 관계자들은 “한국에 오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4월 외교부 관계자가 우크라이나를 방문했지만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에서 외교·안보 역량을 투입하기 쉽지 않았다고 한다. 6월 출범한 이재명 정부 역시 한국행 의사를 밝힌 북한 포로 귀순 문제에 대해 헌법에 따라 수용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현 당시 외교부 장관 후보자(현 장관)는 7월 국회에서 “(귀순 포로 수용은) 헌법을 준수하는 문제”라며 “다만 우크라이나 정부라는 상대국이 있기 때문에 현명하게 조용하게 외교 교섭을 통해서 그들의 자유의지를 확인하고 그에 따른 조처를 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후 이재명 대통령 등 현 정부 고위 인사들은 이 문제에 대해 공개 언급을 한 적이 없다.
우크라이나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문가인 나탈리아 부티르스카는 이재명 정부가 북한·러시아·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중시하는 기조가 북한군 포로 송환에 소극적인 이유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현재 양국 정부 관계가 다소 냉랭하고, 이재명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 사이에 아주 열린 대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재명 대통령은 한국의 국익을 대변하는 입장에서 북한군 포로 송환 문제를 우크라이나 정부와 더욱 긴밀히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남성욱 교수는 “현재 이재명 정부의 ‘자주파’ 대북 라인들이 대북 협력을 하고 싶어 김정은의 심기를 건드릴 일은 기피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그래도 국가로서 헌법상 우리 국민을 위해 해야 할 일은 해야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