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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백의 아트 다이어리] 도시, 밤이 지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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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백의 아트 다이어리] 도시, 밤이 지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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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백 홍익대 교수 미술사·시각철학

전영백 홍익대 교수 미술사·시각철학

인공지능(AI)은 더 이상 전문가의 영역에만 있지 않다. 그것은 어느새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일상적으로 형성하는 보이지 않는 환경이 되어있다. 스마트폰 속 뉴스·영상·이미지들은 개인의 클릭 기록과 체류 시간을 학습한 알고리즘에 의해 신속하게 우리 앞에 제공된다. 사람들은 스스로 선택한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AI에 의해 ‘보고 싶을 것이라 예측된 것들’을 연속적으로 소비하게 되는 것이다.



현란한 전광판, 미디어 파사드

인간은 수동적인 소비자 신세

온기 어린 밤은 이제 없는 걸까


AI는 갈수록 복잡한 정보를 빠르게 요약하고 추천해 주지만, 그 편리함 속에서 우리는 점차 기계의 판단에 기대는 데 익숙해진다.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의심하지 않고 따르듯 이미지와 정보 역시 ‘알고리즘이 골랐기 때문에’ 믿을 만하다고 느낀다. 놀랍도록 편리하지만 동시에 스스로 사유하는 능력이 저하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AI 테크는 ‘양날의 검’이다.


가장 변화무쌍하기는 시각 영역이 아닐까 싶다. 손에 쥔 스마트폰 화면과 거리 곳곳의 전광판, 밤이 되면 도시의 표정을 바꾸는 건물 외벽의 미디어 파사드까지. 이 모든 시각 환경의 뒤편에는 데이터를 학습하고 판단하는 AI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갈수록 현란해진다. 언제부턴가 성탄절 무렵이 되면 서울 한복판 백화점의 미디어 파사드는 장안의 화제로 떠오른다. 화려한 색과 강렬한 빛은 물론 전광판의 평면을 뚫고 나온 3차원의 입체 이미지가 도시인의 환상 체험을 고조시킨다. 스펙터클의 화려함과 입체적 돌출에 눈이 팔린 자동차 속 운전자가 자칫 사고를 내지 않을까 싶을 정도이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대는 행인들이 도로 가까이 모여들고 미디어 폭죽이 터질 때마다 탄성이 터져 나온다.

이미지의 관람 수준이 이젠 눈의 지각을 넘어 온몸의 감각을 뒤흔든다. 그리고 자극의 수위는 점점 높아만 간다. 도시 공간이 흡사 거대한 테마파크가 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이러한 현상은 ‘디즈니화(Disneyfication)’ 혹은 ‘디즈니 효과’라는 사회학 용어와도 통한다. 도시 공간이 그 지역 고유의 속성과 무관하게, 오로지 소비와 구경거리를 위해 표준화되고 연출되는 현상을 뜻한다. AI 시각 테크가 만들어내는 압도적이고 비현실적인 영상들은 도시를 실제 인간의 삶이 살아 숨 쉬는 인문적 공간이기보다 단지 ‘사진 찍기 좋은’ 혹은 ‘인스타용’ 재료로 격하시키고 만다.

이렇듯 AI가 뿜어내는 환상적 스펙터클은 도시의 실제 모습을 가린다. 사람들은 도시 곳곳의 장소적 특성과 시간의 경험보다 매끈하게 꾸며진 디지털 이미지를 소비하는 데 열중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도시의 현실적 진정성은 휘발된다. 결국 도시는 인간의 삶이 교차하는 유기적인 공간이 아니라, 고도의 상업 전략으로 기획된 테마파크처럼 변모되는 것이다. 동시에 시민들은 주체적 거주자에서 수동적 관람객으로 밀려나게 된다. 1960년대에 기 드보르(Guy Debord)가 비판했던 자본주의 소비문화의 ‘스펙터클의 사회’는 이제 그 정도가 날로 극대화되고 있다. 그리고 그 시각적 범람은 신체적 공감각으로 확장되고 관람자의 감각을 마비시킬 정도로 압도적이다.


그런데 첨단 알고리즘에 기반한 이 혁신적인 제작들이 미적 획일화를 초래한다는 점은 역설적이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하여 가장 대중적으로 선호도가 높은 결과물을 내놓기에, 도시의 전광판에는 비슷한 유형의 기하학적 문양이나 반복되는 자연 풍경, 그리고 유행하는 스타일에 고착되는 경향이 있다. 다수의 선호를 반영한 제작 방식과 데이터의 평균값으로 인해 어느 도시나 유사한 성격을 갖게 되는 것이고, 그 결과 인간 창작의 독창성은 매몰되어 간다.

『음예공간 예찬』 이라는 책이 있다. 어슴푸레한 그늘 속에 빛이 스며드는 밤의 아름다움을 예찬한 책이다. 이 책에서 저자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현대문명의 징후를 “너무 밝고 찬 것”으로 진단했다. 인간의 온기나 접촉이 적어 냉기 어린 도시를 한탄한 것으로도 읽힌다. 너무 밝아 밤이 지워진 도시. 차갑고 화려한 미디어 파사드 속에서 실제 삶의 온기는 느껴지기 어렵다. 사람들의 숨소리가 느껴지고 저만의 기억을 머금은 도시의 얼굴이 보고 싶다.

밝고 번쩍거려서 어둠을 지워버리면 아름다운 것일까. 매년 12월이 되면 눈이 어지럽게 쏘아대는 전광판의 빛 속에 둘러싸인 서울이 내게는 낯설기만 하다. 이 오래된 고도(古都)에서 가로등 켜진 한적한 밤거리를 걸으며 한 해를 정리해 보고 싶은 것은 이제 무리한 꿈일까.

전영백 홍익대 교수 미술사·시각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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