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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참 안이한 국민의힘 필리버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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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참 안이한 국민의힘 필리버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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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23일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 반대를 위해 국회 본회의장에서 24시간의 필리버스터를 마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23일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 반대를 위해 국회 본회의장에서 24시간의 필리버스터를 마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필리버스터는 무제한 토론을 통한 국회의 합법적 의사 진행 방해 수단이다. 다수결에 따른 다수당 주도의 안건 처리 과정에서 소수당의 의견 표명 기회를 보장하는 취지다. 더불어민주당이 이르면 연내 필리버스터 제도 손질에 나선다. 소수당 발언권을 제한하는 방향이다. 여야가 소모적 필리버스터 대치를 거듭한 것을 반성하고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복원해야 할 마당에 여당이 꺼낸 해법이 겨우 이 정도라니 안타깝다.

필리버스터를 무책임하게 악용한 국민의힘 책임도 크다. 국민의힘은 최근 위헌성이 있고 각계가 반대하는 허위조작정보근절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과 내란재판부 설치법(내란·외환·반란 범죄 등 형사절차 특례법안)에 대한 2박 3일간의 필리버스터를 진행했다. 여당 입법 강행의 부당성을 알리고 반대 여론을 모으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긴커녕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 과정에서 보인 모습은 안이하고 나태했다.

당 수장인 장동혁 대표가 나섰는데도 본회의장은 텅텅 비어 있었다. 소속 의원 107명 중 겨우 몇 명이 자리를 지키거나 발언에 집중하지 않는 등 필리버스터 취지를 훼손했다. 올해 8, 9월 필리버스터 정국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내 리더십 문제도 있거니와 ‘웰빙 정당’ 습성을 버리지 못한 탓이다. 국민의힘 소속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회의 진행을 거부해 우원식 국회의장이 내내 자리를 지키게 한 것도 입법부 대표답지 못했다. “이런 비정상적인 무제한 토론은 없어야 한다”고 우 의장이 개탄할 만하다.

이에 민주당은 의사정족수(재적 5분의 1 이상·60명) 미달이면 표결로 필리버스터를 중단시킬 수 있게 하는 국회법 개정을 공언했다. 현행 국회법이 의사정족수와 무관하게 24시간 필리버스터를 보장하는 것을 감안하면, 숙의 민주주의의 후퇴다. 국민의힘이 민주당에 명분을 준 측면이 있으나, 국회에서마저 '입틀막'이 벌어져선 안 된다. 물론 본질적 해결책은 정치 정상화다. 민주당은 입법 독주를 멈추고, 국민의힘은 보다 생산적·전략적으로 여당을 견제해 국회를 '민의의 전당'으로 돌려놓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