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中-러 핵위협 등 안보 환경 엄중…‘美 억지력만 믿을 순 없다’는 취지
日총리 ‘비핵 3원칙 재검토’ 시사속 美 전술핵 재배치 추진 의도 분석
방위상 “핵잠 논의 당연” 발언도 논란
日총리 ‘비핵 3원칙 재검토’ 시사속 美 전술핵 재배치 추진 의도 분석
방위상 “핵잠 논의 당연” 발언도 논란
18일 일본 총리실의 안보정책 담당 간부가 “일본이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고 밝혔다고 교도통신 등 일본 매체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지난달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의 ‘비핵 3원칙’(핵무기를 만들지도, 갖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 재검토 시사와 맞물려 일본이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를 추진하려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교도통신은 “일본 정부의 기존 (비핵화) 입장에서 현저히 벗어난 것으로 국내외에서 반발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19일 중국은 외교부 대변인 명의로 “국제 정의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고 반발했다. 지난달 7일 다카이치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발언 이후 불거진 중일 간 군사적 긴장이 ‘핵 보유’ 발언까지 겹쳐 한층 고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中-러-北 주변 안보환경 엄중”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일본 총리실의 안보정책 담당 간부는 사견을 전제로 “나는 우리(일본)가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중국의 핵전력 증강, 러시아의 핵 위협, 북한의 핵 개발 등 일본을 둘러싼 안보 환경이 엄중해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때 미국의 핵 억지력만 믿을 순 없고, 핵무기 보유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 다만, 현 정부 내에서 핵 보유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이 간부는 다카이치 총리에게 안보정책 수립을 조언하는 위치에 있는 인물로 전해졌다.
앞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11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비핵 3원칙에 대한 질문에 “이제부터 작업이 시작된다. 표현을 말할 단계가 아니다”라며 ‘반입’ 원칙의 재검토를 시사했다. 미국 확장억제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미국 전술핵 반입이 필요하다는 것. 총리실 간부의 발언이 이를 위한 일종의 ‘밑밥 깔기’가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비핵 3원칙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당시 총리가 발표한 후 지금까지 일본의 핵 정책으로 유지되고 있다.
일각에선 일본의 자체 핵무기 개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시각도 있다. 일본은 1988년 미일 원자력협정 개정으로 핵연료 재처리의 법적 권한을 확보했다. 이에 따라 현재까지 원자폭탄 약 6000개를 만들 수 있는 분량의 플루토늄 46t을 보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등 5개 핵보유국만 인정하는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로 인해 일본의 핵 보유는 쉽지 않다는 전망이 아직까진 지배적이다. 지구상 유일한 핵무기 피폭국인 일본 국민들의 반핵 정서도 걸림돌이다. 19일 입헌민주당, 공명당 등 일본 야당들은 핵보유 발언 당사자의 파면과 발언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일본으로부터 침략당한 경험이 있는 주변국들의 반발도 변수다. 궈자쿤(郭嘉昆)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현재 일본의 일부 세력은 핵무기를 보유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우익 보수세력이 군국주의를 부활시키고 국제질서의 제약을 벗어나며 ‘재군사화’를 가속화하려는 야망을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핵보유 발언의 국내외 파장이 커지자 일본 정부는 진화에 나섰다. 정부 대변인인 기하라 미노루(木原稔) 관방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부는 비핵 3원칙을 정책상의 방침으로 견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 日방위상 “일본도 핵잠 논의 당연”
해상 훈련 중인 일본 해상자위대의 경항공모함 ‘가가함’(오른쪽). 사진 출처 해상자위대 페이스북 |
다카이치 정부는 올 10월 출범 후 군사력 강화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달 12일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郎) 방위상은 핵잠수함 도입과 관련해 “한국과 호주가 보유하게 되며, 미국과 중국은 갖고 있다”며 “우리의 억지력, 대처력을 향상하려면 (잠수함의) 새로운 동력에 대한 논의가 당연하다”고 했다. 그는 같은 달 23일엔 대만에서 111km 떨어진 요나구니섬을 방문해 지대공미사일 배치 계획을 밝혔다.
도쿄=황인찬 특파원 hic@donga.com
베이징=김철중 특파원 tnf@donga.com
김보라 기자 purp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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