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모텔과 나방’ 낸 유선혜 시인
올해 문지문학상 받은 라이징 스타
올해 문지문학상 받은 라이징 스타
“어두운 마음을 원했다”는 유선혜 시인은 “밝고 재밌는 이야기는 문학이 아닌 곳에 많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장경식 기자 |
“아주 대담하게, 고통스러운 시를 써냈던데? 앞으로 사는 게 쉽지 않겠어.”
시인 유선혜(27)의 두 번째 시집 ‘모텔과 나방’(현대문학)을 읽고 등단 경력 30년이 훌쩍 넘은 한 여성 시인이 이런 평을 했다. 사는 게 쉽지 않겠다는 건, 시인에겐 칭찬이다. 시적 사유가 그만큼 깊고 치열하다는 뜻. 심연에 가닿으려는 노력이 보인다는 말로도 들렸다.
2022년 등단 후 평단과 대중의 사랑을 동시에 받아온 문단의 ‘라이징 스타’를 이달 초 만났다. 작년 10월 출간된 첫 시집 ‘사랑과 멸종을 바꿔 읽어보십시오’(문학과지성사)는 15쇄(3만5000부)를 넘기며 장기 흥행 중이다. 20대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시 ‘모텔과 인간’ 외 3편으로 문학과지성사가 주는 올해 문지문학상도 받았다. 수상작인 ‘모텔 연작 시’가 두 번째 시집에 실렸다.
첫 시집이 나온 지 1년 만이다. 이 속도감은 뭘까. 유 시인은 “냉장고 털이 같은 느낌”이라며 웃었다. 그러나 ‘냉장고 털이’로 정찬을 제대로 차려냈다. 작년 11월부터 마감 직전인 올해 10월까지 딱 1년에 걸쳐 쓴 시를 모았다. 쏟아지는 청탁을 거절하지 않고 쓴 결과물이다. 그는 “1년 만에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없다 보니 유년기나 청소년기 등 과거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한층 더 내밀해졌다”고 했다.
지난 8일 두 번째 시집 '모텔과 나방'을 펴낸 시인 유선혜를 서울 중구 조선일보사에서 만났다. /장경식 기자 |
내밀함은 어둠으로 향한다. 시인은 “끔찍한 면이 있는 어두운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했다. “왕따당하는 아이”나 “혼자 방에 남은 여성” 등이 시적 화자로 등장한다. 이들과 자신의 거리를 떨어뜨린 것이 첫 시집과 비교했을 때 달라진 점이다. 시인은 그 거리감이 “가면이 되어주었다”고 했다. 모텔에 대해선 ‘이 방은 세계의 축소판 같다’(‘모텔과 냉장고’)고 쓴다. 그는 “뛰쳐나가지 못하고 너저분한 공간을 견뎌야 한다는 점, 최소한의 것들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곳이란 점에서 우리가 사는 세상과도 비슷하다”고 했다.
모텔을 세상이라 생각하면 해석의 여지가 풍부해진다. 작품 해설을 쓴 최다영 문학평론가는 ‘젠더 권력의 불평등’에 초점을 맞췄다. ‘나는 원한 적이 없었던 건지도 몰라’(‘모텔과 나방’), ‘그건 완전한 합의에 의해 순조롭게 진행된 사건이었지.’(‘모텔과 리모컨’) 같은 구절은 이런 독해를 가능하게 한다.
유선혜가 그리는 여성은 단순한 피해자는 아니다. ‘배우같이 몸을 흔드는 자신의 모습을 관찰하고자 하는 열망’(‘모텔과 거울’)을 가진 남성 파트너를 ‘같은 종이라는 사실이 다소 절망스러웠’(‘모텔과 인간’)다며 신랄하게 조롱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들은 “한국 뉴 제너레이션의 시”(하재연 시인)로도 읽힌다.
[황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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