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신정선 기자입니다. ‘그 영화 어때’ 173번째 레터는 17일 개봉하는 영화 ‘담뽀뽀’입니다. 1980년대 일본 영화의 에너지였던 이타미 주조 감독의 대표작으로 많이들 알고 계시죠. 역대 음식 영화 리스트에 늘 들어가는 영화인데 이번에 국내 최초로 개봉합니다. 1985년 영화이니 40년 만이네요. 저도 이번에 시사회로 처음 봤어요. 일본 영화 정식 개봉이 어려웠던 까마득한 시절의 영화, 너무 고색창연하지 않을까 싶으시죠. 의외로 그렇지 않더군요. 많은 일본 음식영화의 원형이 들어있고, 무엇보다, 20대의 야쿠쇼 코지와 와타나베 켄이 나옵니다. 야쿠쇼 코지는 위아래 양복과 구두까지 하얗게 빼입고 나오고, 와타나베 켄이 몸에 달라붙는 하얀 스키니 진을 입고 나온답니다. 등급은 청소년관람불가. 라멘 먹는데 무슨 일이 벌어지기에 청불 등급을 받았을까, 아래에 말씀드리겠습니다.
담뽀뽀는 일본어로 민들레라는 뜻인데, 이 영화 여주인공의 이름이에요. 이 여주인공이 최고의 라멘집을 만들기 위해 분투하는 이야기가 영화의 기본 줄거리입니다. 그런데 이게 전부가 아니에요. 큰 이야기 기둥을 세우고 사이사이 꿈처럼 바람처럼 스쳐가듯 흘러가듯 지나가는 이야기가 끼워져 있습니다. 담뽀뽀의 라멘집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고, 음식과 인간, 음식과 사회, 음식과 태도에 대한 비유와 풍자가 들어있어요.
그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우리의 야쿠쇼 코지, 방년 29세의 그가 등장합니다. 영화 첫 머리에 하얀 양복, 하얀 중절모, 하얀 구두를 차려입은 신사가 영화관으로 들어서는데요, 전 처음에 못 알아봤습니다. 신사는 젊은 여성을 대동하고 있는데, 그가 들어서자 주변 사람들이 나서서 테이블을 차려주는 등 아주 부산해요. 신사는 접대에 익숙한 듯 여성과 함께 영화관 앞줄에 앉더니 제4의 벽을 깨고 갑자기 관객에게 말을 겁니다. “그쪽도 영화 보러 왔나? 뭐 먹고 있나? 영화 시작하고 소리내면 죽을줄 알아. 알람시계 소리도 거슬려.” 위협하는 그 얼굴을 보는 순간, 영화 줄거리 생각은 잠시 사라지고, 아, 야쿠쇼 코지가 이토록 노안이었구나, 생각이 번뜩. 20대인데 30대로 보여요. 세월이 새겨진 ‘퍼펙트 데이즈’의 얼굴이 더 잘생겨보인 건 저만의 생각일까요.
영화 '담뽀뽀'에서 주인공 담뽀뽀가 조리한 라멘을 먹고 있는 사람들. 과연 담뽀뽀는 목표대로 최고의 라멘 맛을 만들어냈을까./디스테이션 |
담뽀뽀는 일본어로 민들레라는 뜻인데, 이 영화 여주인공의 이름이에요. 이 여주인공이 최고의 라멘집을 만들기 위해 분투하는 이야기가 영화의 기본 줄거리입니다. 그런데 이게 전부가 아니에요. 큰 이야기 기둥을 세우고 사이사이 꿈처럼 바람처럼 스쳐가듯 흘러가듯 지나가는 이야기가 끼워져 있습니다. 담뽀뽀의 라멘집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고, 음식과 인간, 음식과 사회, 음식과 태도에 대한 비유와 풍자가 들어있어요.
그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우리의 야쿠쇼 코지, 방년 29세의 그가 등장합니다. 영화 첫 머리에 하얀 양복, 하얀 중절모, 하얀 구두를 차려입은 신사가 영화관으로 들어서는데요, 전 처음에 못 알아봤습니다. 신사는 젊은 여성을 대동하고 있는데, 그가 들어서자 주변 사람들이 나서서 테이블을 차려주는 등 아주 부산해요. 신사는 접대에 익숙한 듯 여성과 함께 영화관 앞줄에 앉더니 제4의 벽을 깨고 갑자기 관객에게 말을 겁니다. “그쪽도 영화 보러 왔나? 뭐 먹고 있나? 영화 시작하고 소리내면 죽을줄 알아. 알람시계 소리도 거슬려.” 위협하는 그 얼굴을 보는 순간, 영화 줄거리 생각은 잠시 사라지고, 아, 야쿠쇼 코지가 이토록 노안이었구나, 생각이 번뜩. 20대인데 30대로 보여요. 세월이 새겨진 ‘퍼펙트 데이즈’의 얼굴이 더 잘생겨보인 건 저만의 생각일까요.
야쿠쇼 코지는 따로 이름은 없고 ‘흰 양복’으로만 크레딧에 나오는데, 관객에게 소리 내지 말라고 엄포를 놓은 후에 말합니다. “인간은 죽기 직전에 짧은 영화 같은 걸 본다고 하잖아, 그 영화를 기대하고 있어.” 이타미 주조 감독 본인의 선언같네요. 그런 후에 화면이 흑백으로 전환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본편, 담뽀뽀의 라멘 이야기로 들어갑니다.
영화 '담뽀뽀'의 주연인 미야모토 노부코(오른쪽)은 이타미 주조 감독의 아내입니다. 그의 모든 작품에 출연했어요./디스테이션 |
담뽀뽀 역의 배우는 미야모토 노부코. 바로 이타미 주조의 아내입니다. 이타미 주조가 연출한 영화 10편 모두에 출연했어요. 여기서 이타미 주조(1933~1997) 감독 얘길 잠시. 이타미 주조 감독하면 동시에 떠오르는 인물이 있죠.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가 그의 매제입니다. 고등학교 때 친구였던 오에가 이타미 감독의 여동생과 결혼했습니다.
이타미 감독이 첫 장편 영화를 선보인 때가 51세. 지금 51세로 데뷔해도 늦었다고 할텐데 그 당시엔 “아니 할아버지 왜 지금 와서?”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아마도 그전에 배우로 일했고, 디자이너로도 유명했고, 잡지 편집자 등등 다방면에서 일했기 때문에 재능 많은 사람이 또 뭔가를 하나부다 했을 듯 합니다. ‘담뽀뽀’에서도 드러나지만 아이디어와 감각이 넘치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그만큼 비판 의식도 날카로웠는지 야쿠자를 정면 비판한 영화도 만들었는데, 그래서 야쿠자한테 습격도 당했습니다. 이른바 칼침을 맞아서 병원 신세를 졌는데도 기세가 꺾이지 않았다고 하는데 요즘 같았으면 훨씬 더 논란이 됐겠지요.
영화에나 들어갈 일화 같은데, 더 영화 같은 건 그의 죽음입니다. 빌딩에서 투신 자살한 걸로 결론이 났다는데, 오에 겐자부로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그렇게 믿지 않았대요. 복잡한 여자 관계를 황색 언론이 폭로하려고 하자 죽음으로 결백을 증명하겠다며 자살했다는 결론이 의심스러웠다는거죠. 남긴 유서도 그의 손글씨가 아니었고 차기작도 줄줄이 대기하고 있었고, 여러 정황상 자살이라고 보기엔 미심쩍은 부분이 너무 많았다고 하네요. 야쿠자의 공작이었을까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을 살다 가셨네요.
영화 '담뽀뽀'에서 '흰 양복'와 '건'으로 출연하는 야쿠쇼 코지와 와나타베 켄. 지금과 같은 명성을 얻기 전 두 배우의 연기를 보실 수 있습니다./디스테이션 |
‘담뽀뽀’는 그의 두번째 장편인데, 주인공 담뽀뽀가 최고의 라멘을 만들기 위해 주변 인물의 도움을 받으며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꽤 익숙한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 이후로 비슷한 영화가 많이 나와서 그렇기도 하겠고요. 일본 영화 특유의 과장된 연기와 전형적인 캐릭터, 짐작가는 결론인데도 익숙한 코미디에 만화 같은 전개가 오히려 편안하게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청불 부분은 야쿠쇼 코지 이야기에서 나와요. 영화 초반에 동반한 여성 말고 굴 따는 소녀도 나오는데, 식욕과 성욕에 대해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의 캐릭터가 풀어나갑니다. (라멘으로는 식욕과 성욕 묘사가 어렵죠, 아무래도.) 아쿠쇼 코지와 여성들의 이야기에 노골적으로 성적인 은유를 집어넣었습니다. 나중에 멧돼지 순대 얘기 나올 때 함 보세요. 아주 비장한 장면인데 야쿠쇼 코지의 대사 때문에 웃음이 터질 수도 있습니다.
전 ‘담뽀뽀’의 라멘 이야기보다 중간중간 보여주는 다른 음식 이야기가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담뽀뽀’가 현재의 위상을 가진 것은 단지 라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이야기 중 하나. 어느 집에서 한 여성이 사경을 헤맵니다. 아내이자 엄마인 여성은 숨이 끊어지기 직전에 “밥해줘”라는 말을 듣고 벌떡 일어납니다. 여기서부터 코미디 같은 비극. 그녀는 대파를 꺼내들더니 썰기 시작해서 볶음밥 조리 시작해요. 후라이팬에 담아서 내놓은 밥을 세 아이와 남편이 먹기 시작하고 그녀는 “정말 맛있어”라는 말을 듣고 그제야(?) 숨을 거둡니다. 남편은 아이들에게 “어서 먹어, 엄마가 해준 마지막 밥이야”라고 권하고애들은 울면서 먹고요. 그 시대 가족에게, 여성에게, 음식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보여주는 웃을수도 울수도 없는 이야기였어요.
서구 식문화를 모르면서 알은체 하는 허위의식을 풍자한 대목도 재치있어요. 어느 대기업 회사원들이 전무님 상무님 높은 분들 모시고 불란서 레스토랑에 갑니다. 메뉴판을 받아들지만 땀만 삐질. 전무와 상무는 체면이 있으니 모른다고 말은 못하고 “가벼운 게 좋겠어”라고 퉁칩니다. 부장쯤 돼보이는 사람이 서대 뫼니에르를 시킵니다. 아마도 오기 전에 공부 좀 했나보네요(뫼니에르는 프랑스 생선 요리). 그 후로 모두가 이제 살았다는듯 같은 메뉴를 주문합니다. 메뉴판이 게면쩍어지는 복붙 주문으로 끝나려나 싶던 찰나, 서열상 제일 마지막, 대리나 평사원쯤 돼보이는 사람이 “이거 타유뱅 레스토랑에 있던 거 아니냐”는 말을 던집니다. 주문을 받던 매니저의 환해지는 얼굴. 그가 부댕풍 크넬과 양송이 버섯을 퐁드보로 우린 에스카르고를 메인으로, 1981년 코르통 샤를마뉴를 곁들여 주문을 마치자 전무와 상무의 얼굴이 시뻘개집니다. 얼굴색 변화를 특수효과를 써서 보란 듯이 과장되게 마무리하는데, 워낙 만화같아서 웃겨요.
영화 '담뽀뽀'에서 주인공 담뽀뽀가 라멘 국물의 비결을 알아내기 위해 이웃 맛집 주인에게 탐색 질문을 던지는 장면입니다. 웃겨요./디스테이션 |
와타나베 켄은 영화 초반부에 트럭 운전사의 조수로 등장합니다. 담뽀뽀를 도와 최고의 라멘맛 찾기에 나선 주변 인물 중 한 명이에요. 하얀 스키니진을 너끈히 소화하는 청년 와타나베는 시식에 나선 라멘 도사에게 “라멘 먹을 때 국물부터 먹어야 하나요, 면부터 먹어야 하나요?”라는 정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마치 “붕어빵은 꼬리부터 먹어야 하나요, 머리부터 먹어야 하나요?”에 비견할 만한 심각한 질문이죠. 답은? 영화 초반에 와타나베 켄이 라멘 대가에게 이 질문을 하자, 라멘 연구에 40년을 바쳤다는 선생님께서 답하십니다. “우선 라멘을 제대로 감상해주세요”라고요. 라멘 대가의 답을 옮겨볼게요.
“전체적인 형태를, 라멘의 향기를 음미하면서 찬찬히 즐겨야 합니다. 국물에서 반짝이는 무수한 기름 방울부터, 기름에 젖어 빛나는 죽순, 국물을 빨아들여 빛나는 김, 잠길 듯 말 듯한 둥글게 썬 대파. 무엇보다 고명의 주역이면서도 겸손하게 국물에 잠겨있는 차슈 세조각까지요. 자, 이제 젓가락 끝으로 라멘 표면을 고르게 펼친다고 할지, 살살 쓰다듬듯이 움직여주세요.”
“왜 이러는 건가요”
“라멘에 애정을 표현하는 행동입니다. 다음으로 젓가락이 향할 곳은 차슈입니다.”
“고기부터 먹나요?”
“아니요, 아직은 젓가락으로 만질 뿐입니다. 젓가락 끝으로 차슈를 살짝 눌렀다가 그릇 오른편 국물에 살짝 담가두는 겁니다. 여기부터 중요합니다. 이때 마음 속으로 진심을 담아 인사하세요. ‘나중에 봐’라고요.”
‘나중에 봐’로 끝나는 라멘 대가의 긴 설명이 끝나자 와타나베 켄이 한마디 하는데 그 말이 뭔지는 영화를 직접 보시고 확인을. 라멘 한 그릇에 저럴 일인가 싶으신 관객이라면 공감하실수도요. 이번 레터에서 담뽀뽀의 메인 스토리인 최고 라멘맛 찾기가 어떻게 전개되는지는 자세하게 말씀 안 드렸어요. 영화 보시고 즐겨보세요. ‘이런 영화도 개봉하나’ 싶은 영화가 자꾸 나오는 요즘에 익숙하고 편안한 재미를 드릴 작품이랍니다. 다음에 라멘 드실 땐 ‘나중에 봐’라고 말하고 싶어지실지도 몰라요. 그럼, 저는 다음 레터에서 뵐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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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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