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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년 집권’ 벨라루스 독재자, 美 요구 수용… 개과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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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년 집권’ 벨라루스 독재자, 美 요구 수용… 개과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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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총기 난사 사망자 11명으로 늘어…29명 부상" < AP>
노벨평화상 수상자 등 수감자 123명 석방
“트럼프와 합의”… 美는 제재 일부 해제
벨라루스·러시아 관계 균열 생길지 ‘관심’
지난 10월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선정하지 않자 분통을 터뜨린 국가 정상이 있다. 동유럽 벨라루스의 알렉산드르 루카셴코(71) 대통령이다. 1994년부터 31년간 철권 통치를 해 ‘유럽 최후의 독재자’로 불리는 그는 “(트럼프에게 상을 주지 않은 것은) 전적으로 어리석인 짓”이라며 노벨위원회를 겨냥해 “세계 평화에 해악만 끼친다”고 비난했다.

1994년부터 31년 넘게 집권 중인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 ‘유럽 최후의 독재자’로 불린다. 로이터연합뉴스

1994년부터 31년 넘게 집권 중인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 ‘유럽 최후의 독재자’로 불린다. 로이터연합뉴스


독재자 루카셴코가 개과천선이라도 한 걸까. 13일(현지시간) BBC 방송에 따르면 벨라루스 정부는 이날 자국의 노벨평화상 수상자 등 정치범과 외국인을 포함해 수감 중인 123명을 전격 사면한 뒤 석방했다. 벨라루스 대통령실은 성명에서 “트럼프 대통령과의 합의와 그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인도주의 원칙과 보편적 인류·가족의 가치에 기반한 결정”이라며 “파트너 국가들과의 관계 발전과 유럽 지역 전체의 상황 안정화에 기여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트럼프는 비록 노벨평화상 수상에 실패했으나 이번 조치로 커다란 외교적 승리를 거둠과 더불어 ‘국제 인권을 실질적으로 개선시킨 지도자’라는 평가를 얻게 됐다.

풀려난 123명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인물은 단연 알레스 비알리아츠키(63)다. 벨라루스 인권 활동가인 그는 2022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하지만 ‘반체제 운동을 선동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혀 있어 정작 그해 시상식에 참석조차 하지 못했다.

13일(현지시간) 벨라루스 감옥에서 풀려난 2022년도 노벨평화상 수상자 알레스 비알리아츠키가 이웃 나라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 도착하며 시민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13일(현지시간) 벨라루스 감옥에서 풀려난 2022년도 노벨평화상 수상자 알레스 비알리아츠키가 이웃 나라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 도착하며 시민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비알리아츠키는 루카셴코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1996년 ‘뱌스나’라는 단체를 설립하고 루카셴코 정권의 억압에 맞섰다. 뱌스나는 수감 중인 정치범들을 돕기 위해 후원금을 모았는데, 2011년 벨라루스 당국은 여기에 탈세 혐의를 적용해 비알리아츠키를 체포한 뒤 재판에 넘겼다. 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그는 약 2년 6개월 동안 투옥 생활을 했다. 이후로도 비알리아츠키의 언행을 철저히 감시하던 벨라루스 정부는 그가 루카셴코 정권의 부정선거 정황을 폭로하자 2021년 7월 다시 붙잡아 감옥에 가뒀다.

이번에 풀려난 비알리아츠키는 이웃 나라 리투아니아로 이동해 망명 절차를 밟을 것으로 알려졌다. 그와 함께 사면을 받고 석방된 인사 중에는 미국, 영국, 일본, 우크라이나,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그리고 호주 국적의 외국인들도 포함돼 있다고 외신은 전했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오른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두 사람은 절친한 사이로 러시아와 벨라루스는 군사 동맹이나 다름없는 관계다. AP연합뉴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오른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두 사람은 절친한 사이로 러시아와 벨라루스는 군사 동맹이나 다름없는 관계다. AP연합뉴스


벨라루스는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며 독립국이 된 후 소련의 후신인 러시아와 가깝게 지냈다.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로는 국제사회에서 러시아의 입장을 적극 옹호하며 맹방의 지위를 굳혔다. 러시아는 그런 벨라루스에 자국 핵무기를 배치하며 확실한 안전보장을 약속했다. 루카셴코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수시로 만나며 형제 같은 우애를 드러내왔다.

하지만 그로 인한 미국의 제재는 벨라루스 경제에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미 행정부는 벨라루스 국적 항공사의 미국 내 비행을 금지했으며 벨라루스산 칼륨의 해외 판매도 차단했다. 비료의 핵심 성분인 칼륨은 벨라루스의 가장 중요한 수출품이다.

트럼프는 지난 9월 벨라루스 항공사에 대한 제재 조치를 해제했다. 이번에는 벨라루스의 칼륨 산업을 겨냥한 제재도 풀었다. 벨라루스의 정치범 석방과 미국의 제재 완화를 서로 맞바꾼 셈이다. 이를 두고 ‘트럼프가 악당과 거래를 하는 나쁜 선례를 남겼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하지만 일각에선 그간 미국 등 서방을 겨냥해 철통같은 결속을 과시해 온 벨라루스와 러시아 간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타낸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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