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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 개편 토론회 “사법 개혁인지 사법 통제인지” “법원, 침몰 직전 난파선”

조선일보 김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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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 개편 토론회 “사법 개혁인지 사법 통제인지” “법원, 침몰 직전 난파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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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서울 서초구 법원종합청사 청심홀에서 '국민을 위한 사법 제도 개편' 공청회 종합토론이 열렸다. /대법원

11일 서울 서초구 법원종합청사 청심홀에서 '국민을 위한 사법 제도 개편' 공청회 종합토론이 열렸다. /대법원


대법원이 개최한 ‘국민을 위한 사법 제도 개편’ 공청회 마지막 날인 11일 전직 대법관·헌법재판관 등 법조계 원로들이 모여 토론을 벌였다. 토론회 좌장을 맡은 김선수 전 대법관 등 토론자 6명은 대법관 증원 규모 등과 관련해 세부 내용에 대해선 의견이 갈렸지만 “사법 제도 개편 논의가 정치적 논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내란전담재판부와 법 왜곡죄 도입 등 ‘사법부 압박 법안’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서울대 법대 교수를 지낸 박은정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과거 사법 개혁 때는 사법 독립의 중요성과 전문가 집단에 대한 존중이 깔려 있었는데, 지금은 정치적 갈등이 고조된 시기에 사법부가 일방 압박을 받고 있다”며 “‘사법 개혁’인지 ‘사법 통제’인지 헷갈린다”고 했다. 다만 김선수 전 대법관은 “법원은 3·7 윤석열 전 대통령 구속 취소와 5·1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 공직선거법 사건 파기환송 판결로 암초를 만나 침몰 직전의 난파선이 됐다”며 “법원이 내란 극복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국민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대법관 증원, 4명·8명·12명 갈려

토론에선 대법관 증원 방안을 두고 반대하는 입장과 4명·8명·12명 증원안 등으로 의견이 갈렸다. 조재연 전 대법관은 “단기간 내 대규모 증원은 사실심(1·2심) 약화와 정치적 논쟁 등 여러 문제가 있다”며 “필요하다면 4명 늘려 소부(小部) 하나를 더 만드는 게 적정하다”고 했다.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은 상고 사건을 걸러내는 ‘상고심사제’와 변호사 강제주의 도입을 전제로 대법관 8명을 순차 증원하는 안을 제안했다. 김선수 전 대법관은 3년간 4명씩 12명 증원하는 민주당안에 찬성했다. 김 전 대법관은 “대법관을 두 배 가까이 늘리면 주심 사건이 절반으로 줄어 심층 심리가 가능하다”고 했다.1·2심 강화가 더 중요하다는 주장에 대해선 “똑같은 반박이 20년 전에도 있었다”며 “대법관 증원과 하급심 강화는 충돌하는 게 아니다.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반면, 차병직 법무법인 클라스한결 변호사는 “대법관을 두 배로 늘려도 사건당 심리할 수 있는 시간이 1분 정도 늘어나는 데 그친다”며 “국민의 권리 구제가 두 배 효과를 낸다고 기대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법조 기자 출신인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도 “한정된 자원을 대법관 증원과 하급심 강화 어느 쪽에 쓸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대법원 판결에 헌법소원을 낼 수 있는 ‘재판소원’ 도입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조재연 전 대법관은 “재판소원이 허용되면 헌재가 지금 대법원이 겪고 있는 문제(사건 적체)에 직면할 것”이라고 했고, 차병직 변호사도 “모든 사건이 헌법 쟁점화될 것”이라고 했다. 문형배 전 재판관도 “재판소원 제도가 있는 독일에서도 인용률이 1% 안팎에 그친다”고 했다.


◇“법원행정처 폐지되면 정치적 영향력 노출 위험”

이날 토론에서는 민주당이 추진 중인 내란전담재판부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박은정 전 위원장은 “실제 시행을 염두에 뒀다기보다 현재 비상계엄 관련 사건 재판부에 대한 압박용일 것”이라며 “내 사건 배당에 외부 인사가 관여하거나 정치권 입김이 들어오는 판사가 담당한다고 하면 재판 당사자로서 승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차병직 변호사도 “법안을 수정·보완할 문제가 아니라 설치 자체가 문제”라고 했다. 문형배 전 재판관은 “사건 배당에 외부 인사가 관여하는 건 문제가 있지만, 내란 재판은 예외적 정당성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법 왜곡죄에 대해서는 비판적 시각이 주를 이뤘다. 차병직 변호사는 “정치 형법이 하나 더 생기는 것”이라고 했고 박은정 전 위원장은 “조문이 추상적이고 모호하게 만들어질 수밖에 없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사법행정위원회에 법원 인사·예산을 맡기는 안에 대해 박은정 전 위원장은 “법관이 재판에 집중할 수 있게 행정 업무 부담을 줄여야 한다”면서도 “위원회 체제는 정치적 영향력에 노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방청석에 앉아 토론을 들은 이용우 전 대법관이 “사법부 독립은 외부에서 누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3000여 법관 각자가 그들의 재판에서 용기와 사명감으로 지켜냄으로써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토론이 끝나고 손을 들어 발언권을 얻은 이 전 대법관은 자신을 “사법시험 2회 이용우 변호사”라고 소개한 뒤 “대한민국 사법부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한 저의 소신을 후배 법관들에게 전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고 했다. 이어 “정치권에서 삼권분립과 사법부 독립을 파괴하려는 위헌적 입법이 시도되고 법관들의 재판을 특정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노골적으로 협박과 모욕주기 등 행태가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다”며 “법관이 스스로 온갖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사법부 독립을 꿋꿋하게 지켜 자유민주주의 헌법을 수호해나가야 한다”고 했다.

[김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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