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건강 지도]
최상위권 휩쓴 수도권 부촌
최상위권 휩쓴 수도권 부촌
그래픽=이철원 |
한국의 지역별 건강 지도는 ‘부(富)의 지도’와 상당 부분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 건강문화사업단이 산출한 한국 건강 지수에 따르면 건강 점수 상위 지역은 이른바 ‘경부 라인’(수도권 경부고속도로 라인)이 휩쓸었다. 공기 좋고 물 맑은 시골 지역이 ‘건강 마을’로 통하던 기존 공식을 깬 것이다.
이번 조사에서 안정된 소득과 탄탄한 건강 관련 인프라를 갖춘 수도권 부촌들이 ‘건강 1번지’를 차지했다.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는 1위 경기 과천시에 이어 2·3·4위였다. 성남 분당구(5위)와 용인시 수지구(6위) 등 ‘제2의 강남’이라 불리는 경기 남부권 지역이 뒤를 이었다.
과거엔 도심에서 멀고 자연에 가까울수록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더 건강하다는 인식이 강했다. 건강 수치를 지역별로 매긴 과거 조사를 봐도 전남 고흥군이나 경북 경산시 등 농어촌 지역이 상위권이었다. 그러나 이번 건강 지수 조사에선 농어촌 지역 상당수가 중하위권으로 밀려났다.
건강 전문가들은 “이번 조사는 건강 패러다임이 ‘자연 환경’에서 ‘건강 관리’로 이동했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규칙적인 신체 운동과 금연·금주, 식습관 개선 등으로 평소에 건강을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뜻이다. 강남 3구와 분당, 수지 같은 지역들은 근력 운동 등 격렬한 신체 활동을 뜻하는 ‘고강도 신체 활동’을 하는 비율이 전국 평균의 배 수준이었다. 고강도 신체 활동은 달리기와 헬스, 수영, 테니스 등으로 시간·비용을 비교적 많이 투입해야 한다.
그래픽=이철원 |
질병관리청의 ‘2023 국민건강영양조사’에서 일주일간 고강도 신체 활동을 1시간 15분 이상 한 사람의 비율은 소득에 따라 차이가 났다. 생계 활동에 쫓기는 저소득층일수록 운동하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소득 수준별 5분위로 나눴을 때 가장 낮은 집단의 운동 비율은 48.3%이지만 가장 높은 집단은 57.2%로 8.9%포인트 높았다. 근력 운동을 최근 일주일간 이틀 이상 실천한 비율 역시 고소득 집단이 32.8%로 저소득 집단(21.4%)보다 11.4%포인트 높았다.
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박성철 교수 연구팀이 지난 7월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저소득층은 더 많은 의료비를 지출하고도 건강 개선 효과가 가장 작은 것으로 분석됐다. 박 교수는 “저소득층 기초 건강 상태가 상대적으로 열악하고,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제때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며 “예방접종과 기초 진료 인프라 확대 등 소득 격차로 인한 의료 불평등을 줄일 수 있는 형평성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서울대 건강문화사업단이 가장 가중치를 높게 뒀던 ‘생활 습관’ 지수에서도 서울·경기권의 고소득 지역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다른 지역과 비교해 비만율이 낮고, 흡연과 음주를 덜 한다는 뜻이다. 서울 강남구는 이 항목에서 100점 만점에 78.88점으로 최하위 지역(70~71점)보다 훨씬 높았다. 전국 평균은 74.7점이었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지역 간 건강 격차를 줄이기 위한 ‘핀셋 정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경제 수준에 따른 지역별 건강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본지는 전국 지자체 사례를 전수 분석해 강남과 같은 부촌이 아니더라도 주민들을 건강하게 만든 지자체들의 ‘건강 비결’을 소개할 예정이다. 운동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민들의 신체 운동을 유도하고, 주민들이 신체·정신 건강 관리에 더 신경 쓰도록 하는 정책들을 추진해 건강 수치가 눈에 띄게 향상된 곳들이다. 서울대 건강문화사업단장인 윤영호 의대 교수는 “지역별 상황에 맞는 건강 정책 수립을 위해 정부와 지자체는 물론 기업·대학들도 발 벗고 나서야 한다”고 했다.
[안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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