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조선일보 언론사 이미지

DVD 대여에서 출발한 넷플릭스… 102년 된 워너브라더스 삼키다

조선일보 백수진 기자
원문보기

DVD 대여에서 출발한 넷플릭스… 102년 된 워너브라더스 삼키다

서울맑음 / 2.8 °
美 메이저 영화사 106조원에 인수
넷플릭스의 대표작 ‘오징어 게임’(왼쪽)과 워너브라더스의 인기 시리즈 ‘해리포터’(오른쪽)가 한 식구가 될 예정이다. 넷플릭스는 5일(현지 시각) 102년 역사의 할리우드 스튜디오 워너브라더스를 약 106조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그래픽=김현국

넷플릭스의 대표작 ‘오징어 게임’(왼쪽)과 워너브라더스의 인기 시리즈 ‘해리포터’(오른쪽)가 한 식구가 될 예정이다. 넷플릭스는 5일(현지 시각) 102년 역사의 할리우드 스튜디오 워너브라더스를 약 106조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그래픽=김현국


세계 최대 OTT 넷플릭스가 해리포터와 슈퍼맨까지 집어삼켰다. 5일(현지 시각) 넷플릭스는 워너브라더스의 영화·TV 스튜디오와 HBO 채널, 스트리밍 서비스 HBO 맥스를 720억달러(약 106조원)에 인수하는 최종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1923년 설립된 워너브라더스는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 슈퍼맨, 배트맨 등 수많은 글로벌 히트작을 보유한 할리우드의 상징적인 스튜디오다. 미 규제 당국의 승인을 받는다면, 초거대 공룡 미디어의 탄생으로 영화·TV 산업 전반에 걸친 대규모 지각 변동이 불가피해 보인다.

미국 LA 할리우드에 있는 넷플릭스 스튜디오. /AFP 연합뉴스

미국 LA 할리우드에 있는 넷플릭스 스튜디오. /AFP 연합뉴스


◇DVD 대여로 출발, 102년 할리우드 스튜디오 삼키다

넷플릭스 공동 CEO 테드 서랜도스는 “워너브라더스와의 결합은 장기적으로 더 강한 넷플릭스를 만들 것”이라며 “콘텐츠 소비 방식이 급변하는 시대에 멈춰 있을 수 없다”고 인수 소식을 알렸다. 이번 인수전은 컴캐스트, 파라마운트와의 치열한 경쟁 끝에 성사됐다. 넷플릭스는 인수·합병이 마무리되기까지 1년~1년 6개월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넷플릭스가 이처럼 대규모 인수에 나선 것은 전례가 없다”면서 “그동안 인수 대신 독자적으로 성장해온 테크 기업의 할리우드 정복이 사실상 완성되는 순간”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인수를 통해 넷플릭스는 ‘카사블랑카’ ‘시민 케인’ ‘오즈의 마법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같은 고전 명작부터 ‘해리포터’‘반지의 제왕’‘슈퍼맨’‘배트맨’ 시리즈, HBO의 대표작 ‘왕좌의 게임’ ‘석세션’, HBO 맥스에서 스트리밍되는 ‘프렌즈’까지 방대한 영화·TV 콘텐츠를 확보하게 된다. 1997년 DVD 대여 서비스로 출발한 넷플릭스는 코로나 기간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가입자 3억명을 보유한 세계 최대 OTT로 자리 잡았다. 2010년대부터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도 뛰어들며 콘텐츠 산업의 판도를 바꿔 온 넷플릭스가 100년 넘는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까지 손에 넣게 되면서 또 한 번 업계에 충격을 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이번 인수에 CNN·TNT·디스커버리 등 케이블 TV 관련 자산은 포함되지 않았다. 워너브라더스는 내년 3분기까지 이들 TV 채널 등 방송 사업 부분을 기업 분할해 떼낼 예정이다.

2022년 '아바타2'로 방한한 제임스 카메론 감독. /뉴스1

2022년 '아바타2'로 방한한 제임스 카메론 감독. /뉴스1


◇제임스 카메론 “영화 산업에 재앙” ... 할리우드 거센 반발

넷플릭스는 워너브라더스 영화의 극장 개봉 전략을 유지하겠다고 밝혔지만, 할리우드에선 반발이 터져 나왔다. NYT에 따르면, 익명의 영화 제작자들은 4일 미 의회에 서한을 보내 깊은 우려를 표했다. 이들은 “넷플릭스는 극장에서 영화 보는 시간을 자사 플랫폼에서 보내지 않는 시간으로 여긴다. 그들에겐 극장 상영을 지지할 이유가 없다”고 호소했다.

‘아바타’ 감독 제임스 카메론도 이번 합병이 영화 산업에 “재앙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카메론은 인수 발표 전 한 팟캐스트에 출연해 넷플릭스 공동 최고경영자(CEO) 테드 서랜도스가 “극장 영화는 죽었다”고 공공연히 말해온 점을 지적했다. 극장 개봉을 유지하겠다는 넷플릭스의 주장에 대해서도 “엉터리 미끼일 뿐”이라며 “(넷플릭스의 극장 개봉은) ‘일주일만 걸겠다’ ‘아카데미 출품 자격만 갖추면 된다’는 식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극장용으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이끄는 미국감독조합(DGA)은 인수 발표 직후 넷플릭스와 긴급 회동을 갖고 업계의 “심각한 우려”를 전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국작가조합(WGA)도 성명을 통해 “이번 합병은 일자리를 없애고, 임금을 낮추며, 소비자 가격을 올리고, 시청자가 접할 수 있는 콘텐츠의 양과 다양성을 줄이게 될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버뱅크에 있는 워너브라더스 스튜디오. /AFP 연합뉴스

미국 캘리포니아주 버뱅크에 있는 워너브라더스 스튜디오. /AFP 연합뉴스


◇규제 당국 ‘공룡 탄생’ 승인할까

다만, 인수가 성사되려면 미국·유럽 규제 당국의 승인이라는 관문이 남았다. 넷플릭스와 HBO 맥스를 합치면 미국 스트리밍 시장의 약 30%를 차지하게 된다. 미 법무부 지침에 따르면 합병 이후 기업의 시장 점유율이 30%를 넘을 경우, 경쟁을 저해할 우려가 크다고 본다. 넷플릭스는 유튜브·틱톡 등 무료 영상 플랫폼도 스트리밍 시장에 포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경우 시장의 범위가 확대돼 점유율 비율이 줄어들 수 있다. 만약 정부 승인을 받지 못하면 넷플릭스는 워너브라더스에 58억달러(약 8조5000억원)의 위약금을 지불해야 한다.

미 법무부는 초대형 인수·합병이 시장에 미칠 영향을 이미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제 넷플릭스는 트럼프 행정부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면서 “트럼프는 파라마운트의 CEO 데이비드 엘리슨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으며, 규제 당국에 워너브라더스를 파라마운트에 넘기도록 압력을 행사할 가능성도 제기된다”고 보도했다.

[백수진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