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조진웅. 한국일보 자료사진 |
배우 조진웅(49·본명 조원준)이 '소년범 전력'이 드러난 뒤 은퇴를 선언하자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다. 방송계와 영화계에서는 사실상 퇴출 요구에 가까운 여론에 밀려 선 긋기에 나서는 한편 미성년 시절의 잘못에 대한 비난이 소년법 취지에 맞느냐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조진웅은 지난 6일 소속사 사람엔터테인먼트를 통해 "과거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저를 믿고 응원해 주신 모든 분들께 실망을 드린 점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면서 "모든 질책을 겸허히 수용하고, 오늘부로 모든 활동을 중단, 배우의 길에 마침표를 찍으려 한다"고 밝혔다. 고교 시절 저지른 범죄로 소년보호처분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지 하루 만의 입장 표명이었다.
여론이 급속도로 악화하면서 방송계는 곧바로 조치를 취했다. KBS는 조진웅이 출연한 '국민특사 조진웅, 홍범도 장군을 모셔오다'의 영상을 자사 유튜브 채널에서 비공개로 전환했고, SBS는 현재 방송 중인 다큐멘터리 '갱단과의 전쟁'의 내레이터를 교체하고 이미 방송된 분량도 수정에 나섰다.
tvN 드라마 '시그널'(2016)의 속편인 '두 번째 시그널'은 현재 촬영을 마친 상태로 제작진은 당초 내년 상반기 공개 예정이었다. 100억 원 이상의 제작비가 투입된 작품으로 김혜수, 이제훈과 주연을 맡은 조진웅의 비중이 적지 않아 출연 분량을 줄이는 것으로는 해결이 어려운 실정이다. tvN과 티빙을 통해 공개 예정이었던 CJ ENM 측은 주연 배우 교체 등 여러 방안을 놓고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큐멘터리 영화 '독립군: 끝나지 않은 전쟁'. 블루필름웍스 제공 |
조진웅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급속도로 확산한 것은 그가 단역 배우로 데뷔한 이래 주연급으로 성장하기까지 별다른 스캔들 없이 20년 넘게 연기자 생활을 이어 왔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지난 2021년 KBS 다큐멘터리 '국민특사 조진웅, 홍범도 장군을 모셔오다'에 출연하고 지난여름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독립군: 끝나지 않은 전쟁'에 내레이터로 참여하는 등 독립운동가 홍범도 재조명에 앞장서 왔다. 올해 제80회 광복절 경축식에서 국기에 대한 맹세문을 대표 낭독하기도 했다.
방송가와 영화계에선 여론을 뒤집을 만한 계기가 있지 않는 한 앞으로 조진웅의 연예계 복귀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국내에선 미성년 시절이라고 해도 학교 폭력 등으로 연예계에서 퇴출된 이들이 있듯 연예인의 도덕성에 대한 대중의 기준이 높은 데다 시청자가 감정 이입을 하게 되는 배우라는 직종의 특성상 조진웅을 다시 캐스팅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와는 별개로 처벌을 마친 미성년자의 과거를 다시 문제 삼는 것이 과도한 '여론 재판'이라는 반론도 제기된다.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청소년범죄에 대해서는 처벌을 하면서도, 교육과 개선의 가능성을 높여서 범죄의 길로 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소년사법의 특징"이라면서 "소년(조진웅)이 어두운 과거에 함몰되지 않고, 수십 년간 노력해 사회적 인정을 받는 수준까지 이른 것은 지금도 어둠 속에 헤매는 청소년에게 지극히 좋은 길잡이고 모델일 수 있다"고 역설했다. "수십 년 전 과거사를 끄집어내어 현재의 성과를 생매장시키려 든다면, 사회적으로 준엄한 비난을 받아야 할 대상은 그 연예인이 아니라 언론"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한 중견 영화 제작자도 "청소년 시절의 잘못이 중범죄가 아니라면 전과 기록을 남기지 않는 것이 소년법의 취지인데 오래전 처벌을 받은 미성년 시절 잘못을 다시 끄집어내서 매장시키는 것이 건강한 사회를 위한 건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