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 파리보다 카페 많은 한국 조명
"한국의 커피 사랑, 카페시장 경쟁과열 불러"
[파이낸셜뉴스]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카페를 여는 거 말고 다른 무엇이든 뭐든지 하겠다."
서울의 인구 밀집 지역 중 한 곳으로 꼽히는 곳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고장수씨는 이렇게 말했다. 이유를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평일 아침 그의 카페 안은 텅 비어 있었다. 그의 매장 근처에는 50개가 넘는 경쟁 카페들이 있었다.
뉴욕타임스(NYT)는 3일(현지시간) '한국은 커피숍 문제가 있다(South Korea Has a Coffee Shop Problem)'는 제목으로 한국의 커피 사랑과 과열된 카페 시장의 현주소를 진단했다.
"한국의 커피 사랑, 카페시장 경쟁과열 불러"
지난 2024년 7월 서울 시내에 위치한 저가 브랜드 커피 매장 앞에서 시민들이 줄지어 커피를 구매하고 있다. /사진=뉴스1 |
[파이낸셜뉴스]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카페를 여는 거 말고 다른 무엇이든 뭐든지 하겠다."
서울의 인구 밀집 지역 중 한 곳으로 꼽히는 곳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고장수씨는 이렇게 말했다. 이유를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평일 아침 그의 카페 안은 텅 비어 있었다. 그의 매장 근처에는 50개가 넘는 경쟁 카페들이 있었다.
뉴욕타임스(NYT)는 3일(현지시간) '한국은 커피숍 문제가 있다(South Korea Has a Coffee Shop Problem)'는 제목으로 한국의 커피 사랑과 과열된 카페 시장의 현주소를 진단했다.
샌프란시스코보다 카페가 많은 서울 강남
커피 뉴욕타임스 |
NYT는 고씨의 사례가 한국에서는 드문 일이 아니라고 했다. 서울의 카페 밀도가 파리에 버금갈 정도라는 내용도 부연했다.
그러면서 통계수치를 가져와 "한국인은 이제 쌀보다 커피를 더 자주 마신다"며 한국인의 커피 사랑을 소개했다.
NYT는 한국인들이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쳇바퀴 돌 듯 일하는 일상에서 벗어나 돈을 벌고 싶다는 환상을 가지면서 "나만의 카페를 열어보는 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트렌드가 한국에서 빠르게 퍼져 나갔고 매년 수천 개의 커피숍이 문을 열었다고도 했다.
서울에 문을 연 1만여개의 카페들을 주황색으로 표기한 지도. 종로와 마포, 강남에 카페가 몰려 있는 게 보인다. /자료=한국지역정보개발원, 사진=뉴욕타임스 |
그러면서 문을 여는 카페의 수 만큼 사라지고 있다는 점을 짚으며 고씨의 사례를 소개했다.
NYT는 신림동을 관악구가 아닌 강남이라 표기하며 지난 2016년 고씨가 이 지역에 카페를 열었을 때만 해도 경쟁이 그렇게 치열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때만 해도 고씨의 카페 인근엔 또다른 카페가 두 곳에 불과했다.
그러다 한국에서 카페 창업 열기가 확산되면서 지난 6년간 전국적으로 카페의 수가 두 배나 증가했다. 인구 5100만명인 한국에서 카페 수는 8만개나 됐다. 그 중 8분의 1인 1만개의 카페가 서울에 있었다. 특히 강남과 종로, 마포에 집중적으로 자리했다.
NYT는 미국에서 커피 문화가 강한 샌프란시스코의 상황과 서울의 강남구를 비교했다. 강남은 물론 서울의 거리를 걷다 보면 양쪽으로 퍼레이드 하듯 줄지어 선 카페들을 만날 수 있다고 표현했다.
NYT가 샌프란시스코와 서울 강남에문을 연 카페들을 주황색으로 표기한 지도. /자료=SF오픈데이터·구글맵스·한국지역정보개발원, 사진=뉴욕타임스 |
한국의 카페 사장들은 NYT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카페 붐은 힘든 취업 시장에서 대안을 찾는 한국인들의 욕구와 트렌드를 선도하는 음료라는 이미지가 더해져 창업을 유도했다고 한결같이 말했다.
"카페, 부자 되려고 창업하지 마라"
NYT는 이런 상황을 설명하면서 "그들이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는 조금은 위협적인 지적을 했다.
이어 NYT는 한국에 19세기 후반 커피가 소개돼 사치품이었다가 한국전쟁 이후 미군을 통해 인스턴트 커피 가루를 접하면서 모든 사람이 즐기게 됐다고 전했다. 한국이 자체 인스턴트 믹스를 생산해 현재까지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얘기도 했다.
1990년대 후반 스타벅스가 한국에 진출한 뒤 한국어로 '아아'라고 불리는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비공식적인 국민 음료가 됐다고도 했다.
최근 한국 사람들에게 카페는 카페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고도 했다.
NYT는 "많은 사람들이 작은 아파트에 살고 가족과 함께 지내는 경우가 많아 사람들을 초대하기 어렵다. 카페는 저녁 식사 후 연인들이 시간을 보내고 오랜 친구들이 담소를 나누며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곳"이라고 전했다.
이런 카페 문화가 카페에 대한 오해를 만들었다는 점도 짚었다.
NYT는 "한국에서 침체된 고용 시장과 냉혹한 사무실 문화는 자신의 가게를 여는 게 독립으로 가는 길이라 여기고 있다. 카페는 술집이나 레스토랑 같은 다른 인기 있는 장소보다 창업 비용이 저렴하고, 특별한 자격증도 필요하지 않다"면서 "특히 SNS를 통해 인기 매장에 사람들이 몰려드는 걸 보면서 카페를 하면 쉽게 돈을 번다는 환상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11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24회 서울카페쇼'는 13만명이 방문하면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하며 성공적으로 마쳤다. 서울카페쇼 제공. /사진=뉴스1 |
전국 카페사장협동조합 회장이기도 한 고씨는 "사람들은 다른 카페 앞에 긴 줄이 늘어선 것을 보고 카페 운영이 간단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은 고되고 수익은 적다"고 했다.
1000개가 넘는 카페 창업을 도운 카페 컨설턴트 최선욱씨도 "사업에 뛰어드는 사람들 대부분은 준비가 돼 있지 않다. 커피숍을 운영해 본 적이 없고 그나마 있는 경력도 바리스타 아르바이트 정도"라며 "많은 업주들은 월 400만원 정도의 매출을 올리는데 이는 최저임금을 약간 넘는 수준인데 그마저도 하루 13시간 이상 일해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최씨는 또 "많은 커피숍들이 첫 임대 계약이 만료되자마자 1~2년 만에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커피숍의 수명도 점점 짧아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암울한 시장 상황에서 NYT가 주목한 건 카페 창업을 막는 유튜브 영상들이다. 그중 하나가 넷플릭스 요리 경연 프로그램 '흑백요리사'에서 우승한 권성준 셰프다. 권씨는 이 프로그램에서 카페 사업에 실패를 겪은 걸 회고한 뒤 사람들에게 카페 창업을 권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NYT의 기사는 텅빈 카페 안에 앉아 고씨가 전한 조금은 아픈 조언이다.
"카페는 부자가 되는 곳이 아닙니다. 그냥 가서 커피를 마시는 곳일 뿐입니다."
y27k@fnnews.com 서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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