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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주 소각법 앞두고 처분 급증…3400억원 돌파, 전년 대비 2.6배 증가 [투자360]

헤럴드경제 홍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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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주 소각법 앞두고 처분 급증…3400억원 돌파, 전년 대비 2.6배 증가 [투자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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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증권시장 내 자사주 처분 급증
의무 소각 앞두고 분주해진 기업들
자사주 의무 소각 두고 찬반도 팽팽
“주주가치 환원” vs “경영권 침해”
정치권의 자사주 소각 의무화 법안이 속도를 내는 상황 속에서 연내 자사주 처분 규모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코스피 5000 특별위원회 출범식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는 오기형(오른쪽 두번째) 위원장 [헤럴드DB]

정치권의 자사주 소각 의무화 법안이 속도를 내는 상황 속에서 연내 자사주 처분 규모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코스피 5000 특별위원회 출범식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는 오기형(오른쪽 두번째) 위원장 [헤럴드DB]



[헤럴드경제=홍태화 기자] 유가증권시장 내 자사주 처분 규모가 3400억원을 돌파해 지난해 대비 2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권이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추진하는 가운데 이를 의식한 선제 조치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5일 한국거래소 등에 따르면 연초부터 지난 4일까지 코스피 시장에서 누적된 자사주 처분 규모는 3410억원으로 집계됐다. 아직 12월이 전부 지나지 않았지만 이미 지난해 처분 규모 1310억원와 비교하면 2.6배가량 증가한 것이다.

엘앤에프(1230억원), 삼양식품(990억원), 비에이치(300억원), 광동제약(220억원) 등 굵직한 거래도 연내 많았다.

자사주 처분이 늘어난 배경을 두고 일각에서는 정치권의 자사주 소각 의무화 움직임을 꼽는다. 더불어민주당은 연내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핵심으로 3차 상법 개정안을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이 가지고 있는 자사주는 권리가 없는 ‘자본’이라는 점이 명확하게 법적으로 규정되고, 기업이 자사주를 취득할 경우 1년 이내 소각해야 한다. 기존에 보유한 자사주는 법 시행일 이후 일정한 사유 발생일로부터 1년 이내 소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6개월 추가 유예 기간을 부여한다. 이는 처분 자유가 큰 현행과 비교해 상당한 활용 제약을 초래할 것이란 전망이다.

통상적으로 기업들은 자사주를 경영권 방어 등을 위한 카드로 활용해온 만큼, 자사주 소각이 의무화되면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시장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이 자사주 소각 의무화 법안에 대비한 처분이나 교환사채(EB) 발행에 나서는 것이 당연하다고 지적한다.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법안 자체가 기업의 자율경영권을 옥죌 수 있고, 또 꼭 법이라는 형태로 강제하는 것이 맞느냐는 비판이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자사주 소각이라는 것은 일회성이고 사실상 자기 주식을 사서 불태우라는 것인데 만약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자사주의 매입 자체가 사라질 것”이라며 “자사주는 주가 부양, 임직원 동기부여, 재무구조 개선 등 각종 상황에 맞춰 쓸 수 있는 도구인데 이 근간 자체가 사라지게 되고 자율적 경영 활동에 제약이 걸린다”고 지적했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지난달 27일 국회 토론회에서 “자기주식 소각 강제는 글로벌 스탠다드가 아닌 과도한 규제”라며 “(자사주) 강제 소각시 경영권 방어 수단이 사라져 적대적 M&A 등 경영권 공격에 무방비가되고, 회사가 적대적 M&A에 대해 아무런 방어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는 것은 오히려 경영에 대한 비효율성을 낳을 수 있다”고 했다.


김윤경 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학부 교수도 “자기주식 취득과 보유 자체가 자본시장에 부정적 신호라고 해석할 수 없다”며 “사전적으로 기업의 전략적 재무 수단을 원천 차단하기 보다는 불공정 거래 등을 사후 처벌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미국은 자사주를 당연히 소각해서 주주 환원을 하는 것이 기본 상식인데 우리나라가 지금 그렇게 안 하고 있으니 법을 만들겠다는 것이라서 충분히 이해가 가는 상황”이라면서도 “법이라는 것은 열거주의라서 유연성이 너무 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예컨대 정말 특수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고, 기업 경영이라는 것은 한 치 앞을 모르기 때문에 탄력적으로 운영할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일각에서는 기업의 자사주 처분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자사주를 소각하면 기존 주식의 지분가치가 올라가 주주환원 효과가 있지만 자사주를 처분하면(내다팔면) 주가가 오히려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자사주 소각 의무화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을 가능성이 높아지니 다른 생각을 가진 기업들의 자사주 매각이 생기고 있다”며 “자사주는 사는 순간 다시 시장에 나올 수 없는 자기자본의 차감계정이라는 점을 인식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투자라는 명목이 있는 상황이라도 꼭 자사주 처분만이 방법인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며 “현금흐름이 충분하고 차입이 가능하다면 주주 가치를 훼손하는 자사주 처분을 선택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특히 올해 일어난 몇몇 처분 거래의 경우 주주들 사이에서 논란이 제기된다. 예컨대, 삼양식품은 공장 증설을 위한 투자를 위해 자사주를 매각했는데, 자사주 처분 규모가 투자 예상 비용에 비해 과도하게 크다는 지적이다. 삼양식품은 앞서 자사주를 매입할 때 주주가치 제고라는 명분을 내세웠는데, 이번 처분으로 오히려 자사주가 주가 하락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생겼다는 주장이다.

이 회장은 “삼양식품은 현금흐름이 매우 양호하고 재무건정성도 뛰어나 투자자금이 많이 필요하다고 해도 굳이 자기주식을 시장에 매각하면서 현금을 조달할 필요가 없고, 자사주를 취득할 때 공시로 주주가치 제고를 말했는데 지금 와서 처분하는 것은 명백한 허위 공시”라고 지적했다.

광동제약의 거래도 자사주를 우호적인 제3자에게 넘게 사실상 우호 지분 확보 카드로 쓰려고 했던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있다. 광동제약은 약 220억원의 자사주를 처분하면서 상대사로 협력사인 삼양패키징·금비·삼화왕관을 선택했다. 동시에 금비와 삼화왕관의 자사주도 받았다. 협력사와 자사주가 사실상 교환되면서 우호적 지분으로 남게 됐다.

광동제약은 여기에 자사주를 대상으로 한 EB 발행도 추진하다 취소했다. EB 발행은 사실상 처분과 같은 효과를 지니기 때문에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대비한 대표적 움직임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