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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백서] 제보자 사냥, 사상 검증... 광풍의 중심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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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백서] 제보자 사냥, 사상 검증... 광풍의 중심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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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청래 "당원 1표제, 재부의 어려워…지선 룰은 수정안 낼 것"
<10>적대적 정파성, 언론의 타락
황우석 사태 때 조선일보는 정보가 많았다. 특종도 많았다. 열심히 달렸다. 그러나 잘못된 방향으로 열심히 달렸다. 황우석 편들기라는 방향이 너무 확고했다. 사실 보도라는 언론의 본령을 팽개칠 만큼.

조선일보는 당시 YTN과 함께 가장 비판받은 언론매체였다. 언론학자, 미디어 전문지들은 원인 진단은 조금씩 달랐으나 황우석 보도가 '광풍'이었고 보수지들이 그 주역이라는 데에 동의했다. 진중권(현 동양대 교수)은 문제 사례들을 적시하며 'YTN과 조선일보는 어물쩍 넘어가선 안 된다'(오마이뉴스 2005년 12월 24일)고 썼다. 미디어오늘은 '줄기차게 황우석 감싸던 조선일보 맞나'(2005년 12월 16일)라고 비판했고, 세월이 흐른 뒤 '황우석의·황우석에 의한·황우석을 위한 그 이름, 언론'(2017년 7월 2일)에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YTN과 KBS에 책임을 물었다. 오마이뉴스는 '조선은 황우석의 '입'이었다'(2005년 12월 28일)고 표현했다.

조선일보 보도엔 국익우선론, 과학성역화, 사이언스 권위주의 등 문제적 프레임이 다 있었다. 가장 나쁜 기사는 색깔론을 동원한 'PD수첩' 공격과 제보자 사냥이었다.

제보자 사냥, PD 사상 검증


2005년 11월 14일 섀튼의 결별 선언 기사가 일제히 종합일간지 1면을 장식했을 때 조선일보엔 다른 신문에 없는 기사가 있었다. “팀원 자격을 잃은 연구원이 모방송사에 황교수 팀 연구 성과 자체를 부인하는 내용을 제보했다는 소문도 나오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엔 허황된 소문쯤으로 넘겼지만, 돌이켜 보면 어느 매체보다 앞선 정보였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제보 내용을 파지 않았다. 취재력을 제보자 사냥에 발휘했다. 이런 기사들을 줄줄이 썼다.

黃교수 연구팀서 탈락 연구원이 제기 의혹 -11월 14일 자

PD수첩 제보자는 전직 연구원 -11월 29일 자


PD수첩에 제보 前연구원 결혼때 황우석 교수가 주례 맡았다 -11월 30일 자

PD수첩 제보자는 누구인가 -12월 5일 자

조선일보는 집요했다. “논공행상 과정에서 불만” "다른 연구원들과 계속 마찰" 등 제보자를 흠 많은 인물로 그렸다. 전형적인 메신저 공격이다. YTN의 김선종 인터뷰로 대중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한 12월 5일 자에는 제보자 성(姓)과 출신 대학, 직장까지 공개했다. 굶주린 사자들에게 사냥감을 던졌다. 사생활 폭로로 수익 내는 유튜버들은 그 방식을 언론에서 배웠을 것이다.


'PD수첩' PD들의 사상을 검증한 조선일보 2005년 12월 5일 자 기사. 제보자와 'PD수첩'에 대한 공격적 보도는 적대주의가 강한 정파적 보도의 전형이었다.

'PD수첩' PD들의 사상을 검증한 조선일보 2005년 12월 5일 자 기사. 제보자와 'PD수첩'에 대한 공격적 보도는 적대주의가 강한 정파적 보도의 전형이었다.


‘PD수첩’ PD들에 대해선 사상 검증을 했다. ‘스타 PD와 노조위원장 출신 CP의 과욕’(12월 5일 자)에서 한학수가 “학창시절 총학생회 등에서 일하며 PD(민중·민주) 계열 운동권으로 활동했고, 최근엔 민주노동당에 관심을 가져온 것으로 알려졌다”고 썼다. 최승호는 “MBC 노조위원장으로 재직”한 적이 있어서 역시 노조위원장 출신인 최문순 사장과 코드가 맞는 인물이라고 했다.

운동권이 DNA 검사를 하면 DNA가 바뀌기라도 한단 말인가? 제보자를 비난하기 앞서 제보의 신빙성은 확인해 봐야 하는 것 아닌가? 메신저에 따라 메시지를 달리 받아들이는 건 인간의 흔한 오류지만 언론이 이를 이용하는 건 선동이 된다. YTN 보도와 마찬가지로 고발자를 공격해 진실을 덮는 것이다. 우리 편 승리를 위해 적을 공격하는 기사다. 언론이 관찰자 아닌 플레이어로 뛴 셈이다.

단독 보도한 오보들


2006년 석사논문 '불확실성 사건에 대한 언론사의 보도 전략'을 쓰려 2005년 11월 14일 자~2006년 1월 13일 자 6개 일간지(경향신문 동아일보 중앙일보 조선일보 한겨레 한국일보)를 조사했을 때 황우석 관련 기사 1,887건 중 단독 스트레이트·인터뷰는 42건이었다. 이 중 16건(38%)이 조선일보의 것이었다. 압도적이다. 그런데 특종의 다수가 오보였다.


12월 6일 '황교수 휘청하는 사이… ‘세계 첫 논문’ 일본에 선수 뺏겨'는 ‘PD수첩’ 때문에 최초 논문을 못 썼다는 분노 유발 기사였다. 그러나 일본의 논문 제출은 ‘PD수첩’이 취재를 시작하기도 전이라는 사실이 곧 밝혀졌다. 12월 8일 ‘섀튼 교수팀 파견 연구원 “美영주권 신청 움직임”’ 기사도 다음 날 피츠버그대에 의해 반박됐다.

세 차례의 황우석 단독 인터뷰는 결과적으로 거짓말만 확성한 기사였다. "너무 힘들어서 다 접고 싶었다"(12월 6일 자)는 심경 토로는 황우석 동정과 'PD수첩' 비난 여론을 키웠다. 줄기세포가 없다는 폭로 뒤에도 "일부 문제 있지만 기다려 달라"(12월 16일 자), "나는 떳떳... 말하고 싶은 건 많지만..."(12월 20일 자)이라는 인터뷰로 줄기세포가 있다는 듯 진실을 호도했다.

2005년 12월 8일 자 조선일보 1면에 실린 단독 기사는 다음 날 피츠버그대의 공식 부인으로 오보가 됐다. 황우석 사태 때 조선일보의 많은 특종이 오보였다.

2005년 12월 8일 자 조선일보 1면에 실린 단독 기사는 다음 날 피츠버그대의 공식 부인으로 오보가 됐다. 황우석 사태 때 조선일보의 많은 특종이 오보였다.


12월 13일엔 ‘세계적 과학자 2인의 ‘황우석 위로’’란 문패 아래 ‘복제 양 돌리 아버지’ 이안 윌머트가 “나도 돌리 진위를 의심받아 고생했다”고 위로했다는 기사, 논문 공저자 제럴드 섀튼이 “논문의 진정성을 300% 신뢰한다”고 말했다는 기사를 단독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스스로 단독 기사를 반박했다. 다음 날 섀튼이 “논문에서 내 이름을 빼라”고 사이언스에 통보했다는 기사를 냈다. 그다음 날엔 윌머트 등 세계 연구자 8명이 줄기세포 DNA 검증을 촉구하는 편지를 사이언스에 보냈다고 보도했다. 촌극이었다. 상황을 전혀 모르는 외국 과학자를 인터뷰해 "황 교수 연구 의심할 어떤 근거도 없다"(12월 10일 자)고 썼다. 팩트를 날조하지는 않았지만 일부만 취사선택해서 교묘하게 사실을 왜곡한 기사들이었다. 꼭 특종이 아니어도 팩트로 거짓말하는 기사들이 널렸다.

방향 정해놓고 달린 조선일보


왜 이렇게 '단독 오보'가 많았는지 이유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황우석 쪽만 취재하고 황우석에 유리한 팩트만 골라 썼기 때문이다. 이런 식이다. 윌머트가 황우석 팀과 사이언스에 보낸 이메일은 ‘나도 돌리 복제를 의심받았지만 DNA 검사로 돌파했다. 당신도 검증을 받아라’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황우석 팀에서 앞부분만 전해듣고 썼다. 섀튼의 “300% 신뢰” 발언도 안규리의 전언이었을 뿐 섀튼에게 확인하지 않았다. 특종은 황우석 팀이 주장이었고 조선일보는 주장을 검증하지 않았다. 편향적으로 취재했다.

내가 인터뷰했던 조선일보 C 기자(인터뷰할 때 익명을 약속했다)는 황우석 실험실에서 고생스럽게 뻗치기해서 특종을 했다고 말하면서 ‘PD수첩’을 한 번도 취재하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과학·의학 기자와 미디어 기자가 정보를 공유하거나 기사를 협의한 적도 없다고 했다. 나로선 놀랄 일이었다.

더 충격적인 사실도 있다. 11월 28일 ‘PD수첩’은 아이디진에서 분석한 줄기세포 DNA 불일치 결과를 들고 이윤성 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교수를 찾아갔다. 한학수는 이윤성의 판독 의견을 인터뷰한 뒤에 그것이 황우석 팀 줄기세포라고 밝혔다. 그래서 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은 외부인 중에선 조금 일찍 진상을 알았다. 나는 이를 모른 채 12월 1일쯤 이윤성을 찾아갔는데 그는 내게 정보를 주지 않았다. 그러나 같은 교실의 이정빈 교수는 DNA 불일치 사실을 고교 동문인 송희영 조선일보 편집국장에게 알려줬다. 이런 제보가 때때로 이뤄졌다. 이정빈이 나중에 이런 사실을 기자들에게 말해 나도 알게 됐다. 나는 경악했다. 이렇게 중요한 정보가 제발로 걸어들어왔는데도 신문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나는 조선일보 내에서 이 정보가 어떻게 처리됐는지 확인하려 했다. 처음엔 C가 "(취재 지시 등) 딱히 들은 이야기는 없다"고 해서 황우석에 불리한 정보를 윗선에서 묵살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줄기세포가 몇 개는 있다고 판단하고 황우석을 밀었다'에 가깝다.

송희영은 2025년 12월 3일 통화에서 "이정빈 교수의 메시지는 문제는 있으나 완전히 맹탕은 아니라는 메시지였다"고 말했다. 그래서 "양쪽 주장을 다 써라, 나는 그런 입장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PD수첩'은 "신뢰도가 높은 취재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취재할 필요가 없었다. (...) 다른 과학자들, 알 만한 사람들한테 물어보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생각에)도 황우석 교수 연구가 완전히 맹탕은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C는 자신의 추측이라면서 "(이정빈이) 다 말을 안 했을 것이다. MBC가 (DNA) 검사를 했고 검사가 이상하게 나온다(였을 것)"이라고 일치하는 말을 했다. 그러나 C는 "(DNA가) 이상하게 나온다는 건 알아도 (줄기세포가) 가짜나 엉터리라는 생각은 안 했다. ○○(기자)나 나나 '뭔가 문제가 있다. 다 (진짜가) 아닌가 보다. (줄기세포가) 3개로 줄 수도 있다'(정도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완전 맹탕'은 아니니 황우석을 옹호해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했던 것이다.

양쪽 입장을 쓰라고는 했지만 그럴 수가 없는 언론사였다. 'PD수첩'을 취재 대상으로 여기지도 않았다. DNA 불일치 정보를 일찍 입수했지만 그 의미를 파악하려 들지 않았다. 검사가 이상하다는 황우석 쪽만 열심히 취재했다. 그러니 어떻게 옳은 판단을 하겠는가. 어떻게 진실을 알겠는가.

조선일보 기자들은 타 언론사와의 경쟁뿐 아니라 내부 경쟁도 치열했다. 조직 전체가 '팔리는 뉴스' '눈에 띄는 단독'을 위해 뛰었고 그 방향은 당연히 황우석 편이었다. 사실 검증과 뉴스가치 판단을 압도할 만큼 방향성이 뚜렷했다. 이견이 없었다. 그랬으니 줄기세포가 없다는 폭로가 나온 12월 15일 밤 편집국 분위기가 "(2002년) 대선 개표가 끝난 직후처럼 침울"(조선노보 2005년 12월 22일 자)했다.

2005년 12월 1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한국언론재단과 한국언론정보학회 주최로 '황우석 신드롬과 PD수첩, 그리고 언론보도의 문제'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5년 12월 1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한국언론재단과 한국언론정보학회 주최로 '황우석 신드롬과 PD수첩, 그리고 언론보도의 문제'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사실을 압도하는 언론의 정파성


조선일보의 황우석 보도는 문제 많은 정파적 보도의 표본이다. 박영흠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한국 언론 정파성의 고유한 특징으로 적대주의를 꼽는다(논문 '한국 언론 정파성의 기원과 형성'). 언론매체들이 그저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는 정도가 아니다. "지지하는 정파에 대한 옹호보다 반대하는 정파에 대한 적대”가 강하다. 상대를 공격하느라 사실 왜곡과 선별 등 “객관주의 원칙과 저널리즘의 기본 규범마저 포기”한다. 언론의 본질을 해칠 지경이다.

그러한 정파적 보도의 원형이 황우석 보도에 다 있다. 조선일보는 이념과 무관한 과학 사기 고발을 좌파 인사와 좌파 매체의 문제로 규정(김대중 칼럼 2005년 12월 6일 자)해 정치화했다. 그러고는 저쪽 진영을 상징하는 인물들(제보자와 ‘PD수첩’ PD)을 거세게 공격했다. 우리 진영(황우석) 지키기에 맞춰 취재하고 판단했다. 그에 부합하는 팩트만 골라쓰는 식으로 사실을 왜곡했다.

팀만 취재했던 조선일보에는 오보로 밝혀진 단독 기사, 황우석에 유리한 사실만 취사선택해서 쓴 기사, 사실을 잘못 판단한 기사들이 많았다. 2005년 12월 6일 자 4면.

팀만 취재했던 조선일보에는 오보로 밝혀진 단독 기사, 황우석에 유리한 사실만 취사선택해서 쓴 기사, 사실을 잘못 판단한 기사들이 많았다. 2005년 12월 6일 자 4면.


2025년 독자들은 보수 매체와 진보 매체가 상대 진영을 공격하는 기사를 매일 보고 있다. 색깔론을 이용한 낙인도 흔하다. 차라리 가치 전쟁이라면 낫겠다. 조선일보가 계엄 이후 전한길 강사, 손현보 목사 등을 인터뷰해 계엄을 옹호하는 목소리를 싣는 것은 법·제도 수호라는 보수의 가치에도 반한다.

2005년에도 무시무시했던 정파적 보도는 20년 동안 더 격화했다. 디지털화 이후 신문사들의 경영 위기가 깊어지면서 정파성을 강화하는 것으로 대응했기 때문이다. 상대 진영을 시원하게 공격하는 것으로 독자(시장)를 사로잡았다. 언론사와 정당이 발맞추는 정치 병행성은 강해졌고 유권자의 정치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언론사 경영진과 뉴스룸 간부들은 이것이 살 길이라 믿었을 것이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정파성에 압도돼 무리하게 쓴 기사들이 쏟아지는 현실에서 언론은 불신받고 있다. 언론의 비판은 무게를 잃는다. 사실과 거짓의 경계가 흐릿해졌다. 뉴스이용자들도 정파적 기대에 따라 뉴스를 소비하고 해석한다. 이제 이용자들은 더 정파적이고 더 자극적인 유튜브로 넘어간다. 언론사들은 제 무덤을 팠다.

민주적이고 토론이 활발한 조직


황우석 보도에 대한 연재를 몇 차례 쓰며 언론 실패의 원인으로 기자 개인의 신념과 자질, 시장(뉴스이용자)의 압박, 언론사 조직의 대응 전략(정파성)을 모두 언급했다. 시장의 압박과 조직의 대응이 뻔한 것을 생각하면 불편한 진실 보도는 늘 실패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황우석 보도에서도 언론사마다 차이가 있었다. 그 차이를 낳은 요인은 무엇일까. 마지막으로 언급할 것이 뉴스룸 문화다.

동아일보 기자 출신 이성주(현 코메디닷컴 CEO)는 책 ‘황우석의 나라’에서 동아일보 현장 기자들이 황우석의 문제를 보고했지만 기사에 반영되지 않았고 방향을 바꿔야 한다는 일부 부장 의견도 번번이 묵살됐다고 밝혔다. 동아일보 역시 편파적이었다. 편집국장을 중심으로 인촌상(동아일보 창간자 인촌 김성수를 기리는 상)을 받은 황우석을 지켜야 한다는 방향이 뚜렷했다. 이성주는 다른 언론사들과 비교해 뉴스룸의 문화가 경직적이고 관료적이냐, 수평적이고 민주적이냐가 황우석 보도를 갈랐다고 썼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상명하복이 강한 언론사 조직은 열심히 달려 성과를 내기도 하지만 방향을 잘못 잡으면 함께 손잡고 망하는 길로 간다.

황우석 사태 얼마 전 조선일보 내부에선 토론이 없고 경직된 조직문화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다. 2004년 3월 조선일보 노보에 실린 기고문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말하고 싶었다’는 “상급자의 일방통행식 발언이 반복되다 보면 아랫사람은 입을 닫게 되고 상향식 의견개진이 무반응으로 일관되면 편집국은 공동묘지가 된다. ‘국장회의’나 ‘6층회의’(임원회의)에서 나온 말은 삽시간에 퍼져도 사회 현안에 대한 선후배 동료기자의 생각에 대해서는 모를뿐더러 관심도 없다”고 썼다. C가 정보 공유나 기사 협의를 하지 않았다고 말한 것은 그런 조직문화의 단면이다. 그것이 조선일보 황우석 보도 실패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YTN이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조선일보는 반성하는 사설이나 기사를 낸 적이 없다. 독자권익보호위원의 지적만 있었다. 최보식 컨텐츠업그레이드실장이 황우석 보도에 대해 쓴 ‘조선일보 지면비평’ 칼럼은 나가지도 못했다. 최보식은 이 사실을 2006년 1월 2일 자 지면비평 칼럼에서 고백하고 몰고된 칼럼 일부를 소개했다. “차마 건드릴 엄두도 못 냈던 성역(聖域)의 벽을 향해 방송이 처음 돌진하는 동안, 조선일보를 비롯한 신문은 어디에 있었는가. (…) 진실 쪽에 서려는 용기, 의혹을 검증하려는 이성(理性), 집요하게 추적하는 열정이 과연 사건 초반에는 신문의 것이었을까.” 반성에 못 미치는 소회 정도인데 조선일보에선 이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노보에서 '황우석-우린 과연 냉철했나'(2005년 12월 22일 자)라고 비판하면서 '조선일보를 못마땅해하는 세력이 공격 강도를 높일 것에 대비해야 한다'고 정리한 것도 애석한 일이다.

조선일보 노보 2005년 12월 22일 자.

조선일보 노보 2005년 12월 22일 자.


외부의 비판도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한국일보 미디어 담당 이희정(현 미디어오늘 대표) 기자는 2005년 12월 14일 자에 ‘황우석 보도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전면 기획기사를 쓰고 조선일보의 문제 기사들을 언급했다. 해당 기자가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친분 있던 다른 조선일보 기자는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다. “너도 1등 신문 조선일보를 비판한 걸로 이름값 좀 높여 보려는 부류냐?”

목표의식이 강한 조직에서 이를 향해 열심히 뛴 기자는 과오에 대한 책임이나 부끄러움을 면제받는다. 작은 실수가 아닌데도 '열심히 하다가 생긴 일'로 여기는 기자들을 많이 봤다. 부끄러움은 오히려 평소 예민한 윤리의식을 갖고 기사를 잘 쓰는 기자들에게 돌아가기 십상이다.

20년 사이 나아진 언론사도 있고 나빠진 언론사도 있다. 어쨌거나 뉴스룸 문화가 뉴스에, 언론의 성공과 실패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여전히 사실이다. 조직문화는 오너십의 지배를 받지만 동시에 기자들이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기자들이 과거의 실패 사례를 곱씹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이 글을 그저 다른 언론사 저격 글로 읽지 않기를 바란다. 그나마 처참한 실패를 막을 수 있는 건 진실과 사회 변화에 대한 열정을 가슴에 품은 기자들이 있어서다. 광풍에 휩쓸려 갈 때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의견을 내는 기자들이 있어서다. 이견과 토론을 허용하는 뉴스룸이 실패를 피할 수 있다. 민주주의와 다양성은 뉴스룸을 강하게 만든다.

‘황우석 백서: 왜 우리는 선동에 무력한가’ 11회는 12월 9일(화)에 계속됩니다.

목차별로 읽어보세요

  1. ① 2025, 왜 다시 황우석인가
    1. • [황우석 백서] 거짓은 왜 이토록 성실한가... 진실은 기록되고 기억되어야 한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11917260002506)
  2. ② 난자 파문: 형제, 결별을 선언하다
    1. • [황우석 백서] 황우석에 돈 받고 논문 로비한 섀튼, 대혼란의 막 올리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11918180003626)
  3. ③ 영웅은 죽지 않는다
    1. • [황우석 백서] 절대 영웅 황우석... 비난은 고발자 MBC를 향했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12013240005298)
  4. ④ 만들어진 신화
    1. • [황우석 백서] 기적을 예언한 과학자 황우석, 세계 1등 갈망을 채우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12610470002239)
  5. ⑤ 제보자는 왜 'PD수첩'을 찾아갔나
    1. • [황우석 백서] 거짓으로 쌓은 성... 류영준 "제보 말고 다른 선택지 없었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12014410004406)
  6. ⑥ 노무현이 불붙인 진위 논란
    1. • [황우석 백서] 줄기세포 DNA 다른데도 황우석 옳다는 기자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12015390000163)
  7. ⑦ 시약 논란: 팩트의 힘
    1. • [황우석 백서] "어휴, 그 시약은 쓰면 안 돼요" 과학적 거짓말이 대중을 속였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12016430000223)
  8. ⑧ 황의 반격: YTN 청부 취재
    1. • [황우석 백서] "PD가 협박" 보도에 뒤집어진 세상... YTN 치욕의 특종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12518560001117)
  9. ⑨ 세계적 특종, 탐사 전말
    1. • [황우석 백서] "어떻게 이런 사기를..." 충격과 분노로 밤샌 한학수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13020010005219)
  10. ⑩ 적대적 정파성, 언론의 타락
  11. ⑪ 진실의 응전: 12월 4일 밤(계속)

김희원 뉴스스탠다드실장 hee@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