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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컷] 살아남은 사람들의 아름다운 풍경

조선일보 조인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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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컷] 살아남은 사람들의 아름다운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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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한 장 26. 한영수의 다섯 번째 책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과일 노점상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손수레에 과일을 파는 상인이 바로 옆에 사과 한 박스를 그대로 놓고 파는 여자를 노려보자 여자는 고개를 돌리고 있다. 손수레 상인은 무섭게 노려보며 칼을 들고 있지만 실은 과일을 깎아 한입 물고 있다. 살아 남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했던 시대, 하지만 볼 수록 웃음이 난다. 이들 뒤로 걸어가는 멋지게 차려입은 신사와 부녀자가 그당시 빈부 격차도 느끼게 한다. /©한영수_서울 1956-1963

과일 노점상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손수레에 과일을 파는 상인이 바로 옆에 사과 한 박스를 그대로 놓고 파는 여자를 노려보자 여자는 고개를 돌리고 있다. 손수레 상인은 무섭게 노려보며 칼을 들고 있지만 실은 과일을 깎아 한입 물고 있다. 살아 남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했던 시대, 하지만 볼 수록 웃음이 난다. 이들 뒤로 걸어가는 멋지게 차려입은 신사와 부녀자가 그당시 빈부 격차도 느끼게 한다. /©한영수_서울 1956-1963


사진가 한영수의 다섯 번째 책이 나왔다. 작가를 소개하자면 한영수는 1970, 80년대 화장품, 의약품, 전자제품 등 수많은 광고 사진을 촬영한 우리나라 1세대 광고 사진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는 한편으로 1950년대 사실주의 사진을 표방한 최초의 사진가 집단인 ‘신선회’ 작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사진가는 생전에 당대 시민들의 일상을 촬영한 ‘삶’과 풍경을 담은 ‘우리 강산’ 두 권을 냈다. 사진가가 직접 제작한 두 권을 합치면 이번 책이 일곱 번째이지만 ‘한스 그래픽’ 출판사에서 나온 책으론 다섯 번째다.

전쟁 후 부산은 북한 뿐 아니라 전국에서 온 피란민들이 많던 도시였다. 드럼통을 개조한 손수레들 사이로 양복에 흰 고무신을 신고 걸어가는 남자가 인상적이다./©한영수 부산 1956-1963

전쟁 후 부산은 북한 뿐 아니라 전국에서 온 피란민들이 많던 도시였다. 드럼통을 개조한 손수레들 사이로 양복에 흰 고무신을 신고 걸어가는 남자가 인상적이다./©한영수 부산 1956-1963


지난 2014년 처음 ‘모던타임즈’가 나온 후 표지색만 다를 뿐 책의 디자인은 그대로다. 천을 감싼 두꺼운 표지에 눈길을 끄는 흑백 사진 한 장이 책을 펼치게 만든다. 사진가가 세상을 떠난 후 헝가리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던 딸이 돌아와 아버지가 남긴 50박스 분량의 필름들을 보고 책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다.

스뻐가 아니라 뻐스다. 서울에도 대중교통이 아니 자동차도 흔하지 않던 시절이었다./©한영수_서울 1956-1963

스뻐가 아니라 뻐스다. 서울에도 대중교통이 아니 자동차도 흔하지 않던 시절이었다./©한영수_서울 1956-1963


세상을 떠난 사진가를 대신해 아버지 필름들을 본 딸 한선정 대표는 밀착 인화로 남기고 간 흑백 필름들을 처음 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밀착 인화는 필름 한 롤 전체 컷을 인화지 한 장에 모은 프린트) 이렇게 멋진 아버지의 사진들이 묻혀 있다니. 평생을 광고 사진가로 알려졌기에 사진가는 개인 작업들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딸이 본 아버지의 그 시대는 아름다웠다.

충무로가 괜히 한국 영화의 대명사 처럼 된 것이 아님을 이 한 장의 사진으로 알 수 있다. 무려 13개의 극장 포스터가 걸려 있다. 가운데 아래 우미관 포스터도 보인다. /©한영수_서울 충무로 1가 1959

충무로가 괜히 한국 영화의 대명사 처럼 된 것이 아님을 이 한 장의 사진으로 알 수 있다. 무려 13개의 극장 포스터가 걸려 있다. 가운데 아래 우미관 포스터도 보인다. /©한영수_서울 충무로 1가 1959


전쟁이 끝나고 폭격으로 망가진 국토, 1950년대와 60년대 우리가 살던 곳은 어디를 둘러보아도 초라하고 텅 빈 모습들이었다. 당대 많은 사진가는 당연히 가난한 모습 그대로를 적나라하게 사진으로 찍고 보여주었다. 그러나 한영수는 달랐다. 사진가의 눈에 비친 당시 모습은 오히려 놀라울 만큼 살아야 한다는 의지로 활기찬 한국 사회였다. 한영수의 사진집 ‘삶 Korean Lives: after the war 1956-1960’에는 이런 글이 있다.

“그 참담한 기억들이 생생한 가운데 나는 군 복무를 마치고, 전화의 그을음이 채 가시지도 않은 생활의 한복판에 서게 되었다. 그러나 이보다 더 놀랍고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사람들은 살아간다’는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한 사실이었다.”


자전거 점포 수리점에서 한 여성이 신문을 읽고 있다. 한영수는 신문이나 책을 읽던 여성의 모습을 많이 찍었다./©한영수_대구 1960

자전거 점포 수리점에서 한 여성이 신문을 읽고 있다. 한영수는 신문이나 책을 읽던 여성의 모습을 많이 찍었다./©한영수_대구 1960


고통스러운 현실에서도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았고 한영수는 이런 모습들을 찾아다니며 찍었다. 한영수의 이전 책들을 보고 50년대에도 거리엔 멋쟁이가 많았음을 알았다. 트렌치코트의 옷깃을 세우고 비닐우산을 파는 남자, 한복에 고무신을 신고 열심히 신문을 읽는 젊은 여자 등 매일 아침 세수한 예쁜 얼굴로 기분 좋게 집을 나서는 평범한 시민들을 사진으로 찍었다.

중장비 기계 없이 사람들이 직접 철거 작업을 하고 있다. 사선 구도로 철거되는 건물이 엇갈리고 가운데 지점마다 노동자들을 포착했다. 한영수가 얼마나 구도에 철저한 신경을 기울이는지 볼 수 있는 사진 중 하나다./©한영수_서울 1956-1963

중장비 기계 없이 사람들이 직접 철거 작업을 하고 있다. 사선 구도로 철거되는 건물이 엇갈리고 가운데 지점마다 노동자들을 포착했다. 한영수가 얼마나 구도에 철저한 신경을 기울이는지 볼 수 있는 사진 중 하나다./©한영수_서울 1956-1963


1950년대 서울 청계천 주변은 전쟁을 피해 고향을 떠난 피란민들이 모여 살았다. 판자로 만든 가건물에서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바라며 이름 붙인 소규모 봉제 공장들이 오늘날 평화시장이 되었다. 천변에 염색한 옷들이 널려 있다./©한영수_서울 청계천 1958

1950년대 서울 청계천 주변은 전쟁을 피해 고향을 떠난 피란민들이 모여 살았다. 판자로 만든 가건물에서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바라며 이름 붙인 소규모 봉제 공장들이 오늘날 평화시장이 되었다. 천변에 염색한 옷들이 널려 있다./©한영수_서울 청계천 1958


사진가의 이번 책엔 사람들의 일하는 모습이 많다. 망치와 곡괭이를 들고 건물을 철거하는 사람들, 과일을 파는 노점상들의 경쟁, 큰 짐을 등에 지고 서울의 산동네를 오르는 1950년대 풍경도 있다. 그런데 이 산동네는 현재 100억원이 넘는 고급 주택이 많은 용산구 한남동이다. 부산 항구에 정박한 대형 선박의 도장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아찔하게도 보호 장구 하나 없이 밧줄에 묶인 나무에 앉아서 일하고 있다. 후손들이 오늘날 세계적인 조선 기술을 갖게 된 사실을 이분들이 안다면 어땠을까.

부산의 한 대형 선박에 도장 작업을 하는 사람들. 작업자들이 보호 장구 하나 없이 밧줄에 달린 임시 비계에 앉아 칠을 하고 있다./©한영수_부산 Busan 1956-1963

부산의 한 대형 선박에 도장 작업을 하는 사람들. 작업자들이 보호 장구 하나 없이 밧줄에 달린 임시 비계에 앉아 칠을 하고 있다./©한영수_부산 Busan 1956-1963


사진은 통계나 역사책에 없는 보통 사람들의 생활과 정서적 디테일을 고스란히 시각적으로 남겨 놓는다. 한영수의 오래된 사진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빛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진집 출간에 맞춰 전시회도 연다. 책 제목과 같은 이름의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전시회는 오는 10일부터 내년 1월 31일까지 서울 종로구 백아트에서 열린다.


사진 = 한영수문화재단

얼마나 무겁고 힘들까, 일꾼들의 고된 노동의 모습 만큼 황량한 서울의 풍경이 아련한 마음이 들게 한다. 그런데 이곳은 현재 100억원이 넘는 초고가 주택들이 있다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이다. ./©한영수_서울 한남동 1956-1959

얼마나 무겁고 힘들까, 일꾼들의 고된 노동의 모습 만큼 황량한 서울의 풍경이 아련한 마음이 들게 한다. 그런데 이곳은 현재 100억원이 넘는 초고가 주택들이 있다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이다. ./©한영수_서울 한남동 1956-1959


[조인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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