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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찬의 피아노에서 재즈의 향기가… 라벨 협주곡 첫 협연

조선일보 김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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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찬의 피아노에서 재즈의 향기가… 라벨 협주곡 첫 협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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伊 명문 산타 체칠리아와 협연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3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지휘 다니엘 하딩) 내한 공연에서 라벨 피아노 협주곡 G장조를 협연하고 있다./빈체로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3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지휘 다니엘 하딩) 내한 공연에서 라벨 피아노 협주곡 G장조를 협연하고 있다./빈체로


피아니스트 임윤찬(21)의 ‘재즈’를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지난 3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이탈리아 명문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지휘 다니엘 하딩)의 내한 공연. 1부 협연자인 임윤찬이 고른 곡이 올해 탄생 150주년을 맞은 프랑스 작곡가 라벨(1875~1937)의 피아노 협주곡 G장조였다.

모차르트의 우아함, 스페인의 열정, 재즈의 흥취가 공존하는 작곡가 말년의 걸작. 임윤찬이 이 협주곡을 국내외 무대에서 연주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2022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당시 결선 곡이었던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의 러시아적 낭만과 우수를 기억한다면, 프랑스적 감각으로 가득한 의외의 선곡이 낯설게 다가올 법하다.

그의 입장과 동시에 객석에선 탄성이 터졌다. 임윤찬은 첫 악장 도입부부터 톡톡 튀는 왼손 스타카토와 현란한 양손 연주로 대담한 박자감을 빚어냈다. 1920~1930년대 파리를 사로잡았던 재즈의 흥겨움과 활력이 건반을 통해서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첫 악장이 감각적인 재즈라면 2악장은 서정적인 모차르트를 닮았다. 언뜻 단순하게 보이는 세 박자의 왼손 반주 위에 오른손 선율이 살포시 얹혔다. 귀밑까지 덮을 정도로 머리를 기른 임윤찬은 건반 앞에서 고개를 푹 숙인 채 소박하면서도 군더더기 없이 우아한 선율을 살짝 밀고 당기면서 들려줬다. 무심하고 덤덤한 듯하지만 환하게 빛나는 선율은 분명 모차르트의 협주곡이나 실내악을 연상시켰다. 불과 2~3분 남짓의 피아노 독주(獨奏)이지만 반복 없이 30여 마디나 지속되는 오른손 선율에 피아노를 제외한 모든 것이 잠시 멈춘 듯했다. 플루트를 필두로 목관 선율이 피아노 독주를 이어받자 자연스럽게 피아노는 오케스트라 전체를 반주하는 것 같았다. 마지막 3악장에서는 악단과 피아노가 다시 무시무시한 속도전을 펼치면서 라벨 특유의 활력과 생기를 공연장에 가득 불어넣었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3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지휘 다니엘 하딩) 내한 공연에서 앙코르곡을 연주하기 위해 돌아오고 있다./빈체로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3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지휘 다니엘 하딩) 내한 공연에서 앙코르곡을 연주하기 위해 돌아오고 있다./빈체로


협연 이후에도 박수가 끊이지 않자, 임윤찬은 직접 편곡한 러시아 옛 노래와 코른골트의 곡 등 즉석에서 앙코르 두 곡을 곁들였다. 멈출 줄 모르는 왕성한 음악적 호기심과 복고풍의 ‘애늙은이’ 취향이 낭만적인 앙코르 두 곡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는 1997~2005년 지휘자 정명훈이 이끌었던 악단으로도 친숙하다. 지난해 이 악단의 음악 감독으로 취임한 영국 지휘자 다니엘 하딩(50)은 불과 21세에 베를린 필을 지휘했던 ‘지휘 신동’ 출신이다. 정식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한 그는 지난 2019년 ‘안식년’으로 지휘 활동을 잠시 중단하고 프랑스 항공사 에어 프랑스의 부조종사로 들어간 이색 경력을 지니고 있다. 100여 명에 이르는 오케스트라를 통솔하는 일은 때로는 비행의 ‘음악적 비유’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날 첫 곡이었던 베르디의 ‘운명의 힘’ 서곡은 이탈리아 악단에는 ‘삼시 세끼’와도 같은 필수 연주곡이다. 알프스 북쪽의 짙고 어두운 음색보다는 지중해 특유의 밝고 투명한 금관이 서곡 첫 소절부터 울려 퍼졌다. 현악 역시 누가 일러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노래하는 것만 같았다. 반면 후반 브람스 교향곡 2번에서는 초반에 서두르지 않고 여유 있게 접근하다가 강약과 빠르기의 대담한 조절을 통해 곡의 굴곡과 깊이를 드러냈다. 특히 마지막 4악장 절정에 들어가기 직전에 한껏 숨죽이다가 막판에 몰아치는 뒷심도 인상적이었다. 관객 박수에 하딩이 무대로 걸어나오면서 악단을 향해 손짓을 보내자 앙코르로 로시니의 ‘윌리엄 텔’ 서곡이 울려 퍼졌다. 역시 ‘지휘대 위의 조종사’다웠다. 임윤찬과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의 협연은 5일에도 열린다.

[김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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