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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자마자 찾아온 네 천사… ‘엄마’ 부를 때 가장 행복”

조선일보 인천=표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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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자마자 찾아온 네 천사… ‘엄마’ 부를 때 가장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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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행복입니다]
[아이들이 바꾼 우리] 네쌍둥이 키우는 최유란·박지민 부부
고운호 기자지난 2일 오후 인천 중구의 자택에서 남편 박지민(뒷줄 왼쪽)씨와 아내 최유란씨가 네 쌍둥이 딸을 안고 있다. 아이들은 왼쪽부터 나봄, 나온, 나예, 나리.

고운호 기자지난 2일 오후 인천 중구의 자택에서 남편 박지민(뒷줄 왼쪽)씨와 아내 최유란씨가 네 쌍둥이 딸을 안고 있다. 아이들은 왼쪽부터 나봄, 나온, 나예, 나리.


지난 2일 오후 인천 중구에 있는 최유란(31)·박지민(30)씨 부부 자택에 들어서자 네 쌍둥이 딸 나리·나온·나예·나봄(2)이가 쪼르르 달려 나와 현관문 앞에 설치된 어린이 안전문을 붙잡고 섰다. 붙임성 좋은 봄이는 배꼽 인사까지 더했다. ‘낯선 사람이 왔는데 아이들이 어떻게 울지도 않고 얌전하냐’고 묻자 아내 최씨가 “덕분에 네 쌍둥이 육아가 생각보다 힘들지 않다”며 웃었다.

최씨와 박씨는 2015년 12월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됐지만 실제 첫 만남은 이듬해 4월 이뤄졌다. 당시 남편 박씨가 육군에 입대해 이등병이었기 때문이다. 첫 휴가 때 최씨를 보고 한눈에 반한 박씨는 군부대에 복귀하기 전 고백을 했다가 차였다고 한다. 군에 복귀하고도 최씨 생각을 떨칠 수 없던 박씨는 몇 달 뒤 일병 휴가 때 다시 최씨를 만나 고백했다. 최씨는 “순박하고 사람 좋아 보이는 남편 모습에 교제를 시작했다”고 했다. 그렇게 부부는 7년을 사귀고 2023년 4월 결혼했다.

부부는 결혼하자마자 자연 임신에 성공했는데, 임신 6주 차 산부인과에서 충격적인 얘기를 듣게 됐다. 나리·나온·나예가 일란성, 나봄이가 이란성으로 네 쌍둥이가 뱃속에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자연 임신으로 네 쌍둥이를 임신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박씨는 아내 건강부터 가장 걱정했다. 인터넷 기사를 뒤져 다태아 분만 권위자라고 불리는 전종관 서울 이대목동병원 산부인과 교수를 찾아갔다. 박씨는 “교수님이 태연하게 네 쌍둥이는 별일 아니라며 ‘아내가 평소처럼 건강하게 잘 먹고 잘 놀게 도와주는 게 핵심’이라고 해 마음이 놓였다”고 했다.

이후 박씨는 최씨만의 ‘돌쇠’가 되기로 마음을 먹고 각종 잔심부름을 도맡았다고 한다. 최씨는 “남편에게 ‘리모컨을 가져오거라’ ‘물을 떠오거라’ 얘기하면 군말 없이 움직이는 게 귀여웠다”며 “걸을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손발이 되어준 남편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출산이 가까워지며 최씨도 육체적·정신적으로 한계를 맞았다. 입덧이 갈수록 심해지며 아예 식사를 하기 어려웠다. 하루에 주스 한 잔을 겨우 마시고 버티는 날도 있었다고 한다. 임신 20주가 지나면서는 임신 중독증이 찾아왔다. 혈압은 180이 넘고 온몸이 부어오르며 몇 주 만에 몸무게가 35㎏ 넘게 늘었다. 결국 24주차에 병원에 입원했다.


다태아 임신부들에게는 ‘27주’가 넘어야 할 고비로 불린다. 임신 27주가 지나 출산하며 아이들의 사망 위험률이 크게 낮아지기 때문이다. 최씨는 “어떻게든 견뎌보자는 마음 하나밖에 없었다”며 “너무 아파서 간호사를 붙잡고 제발 마취라도 해달라고 울기도 했다”고 말했다.

최씨는 임신 28주차인 작년 5월 네 쌍둥이를 출산했다. 첫째 나리가 750g, 둘째 나온이가 910g, 셋째 나예가 890g, 넷째 나봄이가 1.1㎏ 등 모두 미숙아로 신생아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그러나 최씨가 악착같이 아이들을 뱃속에 붙잡고 있었던 덕분일까. 아이들은 의료진 예상을 깨고 동맥관 개존증(동맥관이 정상적으로 닫히지 않고 열려 있는 것) 등 다태아에게 흔한 질환 하나 없이 건강했다.

네 쌍둥이는 3개월 뒤인 작년 8월 모두 퇴원했고 초보 엄마·아빠에게 ‘육아 전쟁’을 선포했다. 육아를 위해 중환자실 간호사로 일하던 최씨는 퇴직했고, 물류업체에서 일하는 남편 박씨도 육아 휴직 10개월을 썼다. 최씨는 “처음에는 아이들이 울고 칭얼댈 때마다 어떻게든 쫓아다니며 달래줬다”며 “그러다 보니 밥도 제대로 먹이지 못하고 저희도 하루 2~3시간밖에 자지 못하며 체력이 금방 고갈됐다”고 말했다.


단 한 번도 싸워본 적이 없던 잉꼬 부부였는데, 서로 언성을 높이는 일까지 생겼다고 한다. 결국 부부는 고민 끝에 ‘한 명씩만 돌보기’라는 육아 원칙을 세웠다. 아이들이 동시에 울든 짜증을 내든 차례를 정해 한 명씩만 돌보고 나머지는 신경 쓰지 말자는 것이다. 이유식도 차례가 지나면 먹지 않더라도 그릇을 치웠다.

박씨는 “아이들이 금세 ‘생떼를 부려봤자 내 차례가 아니면 별 소용 없구나’ 하는 규칙을 깨닫고 얌전해지더라”며 “마음이 아팠지만 다 같이 살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조기에 인내심 교육을 받은 아이들 덕분에 이후 육아는 한결 나아졌다고 한다. 최씨는 “다들 네 쌍둥이를 도대체 어떻게 키우느냐며 걱정하는데 우려했던 것보다는 어렵지 않았다”며 “4명 키운다고 육아가 4배 힘든 건 아니더라”고 했다.

최씨는 네 아이를 출산하고 주변 친구들에게 ‘결혼·출산 전도사’를 자처하고 나섰다고 한다. 최씨는 “출산을 할까 말까 고민하는 친구가 있으면 ‘무조건 해보라’고 얘기한다”며 “내가 낳은 아기가 엄마라고 불러줬을 때, 아이들이 나를 보고 웃을 때 느낄 수 있는 행복은 혼자일 때 누릴 수 있는 행복과는 아예 다른 차원의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부부는 정부와 지자체에서 출산 지원금과 아이돌봄 서비스 등 각종 지원을 받아 경제적으로 도움이 됐다고 한다. 다만 다태아를 겨냥한 정부의 저출생 정책은 따로 없었던 점이 아쉬웠다고 한다. 특히 박씨는 요즘 집 문제로 걱정이 크다고 한다. 정부는 출산 후 2년 내 가정에 저금리로 주택 구입 또는 전세 자금을 대출해주는 ‘신생아 특례 대출’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대출이 가능한 주택 대상을 ‘전용면적 85㎡(약 33평)’ 이하로 제한하고 있다.

박씨는 이 대출 상품이 세쌍둥이 이상을 가진 아빠 모임에서 단골로 나오는 불만이라고 한다. 그는 “대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현재 30평짜리 주택에 사는데 아이들이 곧 자라나면 방도 부족하고 공간이 좁아 걱정이 크다”며 “다둥이 집안에는 제한 면적을 넓혀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와 조선일보가 공동 기획합니다. 위원회 유튜브에서 관련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선물한 행복을 공유하고 싶은 분들은 위원회(betterfuture@korea.kr)로 사연을 보내주세요.

[인천=표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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