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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석의 남자의 물건] [26] 어부의 직물에서 지성의 상징으로

조선일보 김교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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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석의 남자의 물건] [26] 어부의 직물에서 지성의 상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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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드 코트
트위드 코트는 소재, 패턴, 색상 등 다채롭게 믹스 앤 매치를 구사할 수 있어 매력적이다.  @핀터레스트

트위드 코트는 소재, 패턴, 색상 등 다채롭게 믹스 앤 매치를 구사할 수 있어 매력적이다. @핀터레스트


이 추위를 기다렸다. 살을 에는 한파는 두렵지만 매서운 바람이 주는 묘한 설렘도 있다. 드디어 ‘겨울다운 겨울’, 묵직하고 두꺼운 트위드 코트를 꺼낼 시간이다. 물론 코오롱, 아크테릭스, 골드윈부터 유니클로까지 갖가지 하이테크 패딩의 압도적인 효율을 부정할 순 없다. 그러나 트위드 코트는 단순한 방한복이 아니다. 격식과 낭만, 그리고 겹쳐 입기와 같은 옷 입기의 즐거움을 누릴 기회다.

해리스 트위드의 상징인 ‘Orb Mark’ 마케팅 차원에서 이 원단 마크를 겉면에 노출시키기도 한다.  @핀터레스트

해리스 트위드의 상징인 ‘Orb Mark’ 마케팅 차원에서 이 원단 마크를 겉면에 노출시키기도 한다. @핀터레스트


트위드의 특별한 멋은 오랜 시간 전통을 지키며 살아남은 고풍스러움에서 비롯된다. 스코틀랜드의 거친 자연과 켈트족의 역사에 기인한 해리스 트위드를 보자. 세계에서 유일하게 별도의 국가법으로 보호받는 직물이다. 영국 의회가 제정한 법에 따르면, 스코틀랜드 서쪽 아우터헤브리디스 제도 사람들이 가정에서 오직 사람의 발로 페달을 밟아 짜야만 그 유명한 ‘오브 마크’를 받을 수 있다. 바다 건너 아일랜드 최북단 야생의 땅에서 온 도네갈 트위드도 독특한 미학으로 유명하다. 보통의 울 소재와 달리 이곳 장인들은 자연을 패턴이 아니라 실에 담았다. 회색 바위, 노란 꽃, 검은 흙, 푸른 이끼의 색 등 자연에서 가져온 여러 색상의 작은 섬유 덩어리를 섞어 만든 실로 옷을 짓는다. 불규칙한 색점이 가득한 도네갈 트위드는 아일랜드의 거칠고 광활한 풍광을 담은 점묘화인 셈이다.

도네갈 트위드는 18세기 말 아일랜드의 도네갈 주의 지역 농가에서 그 역사가 시작됐다.  @도큐먼트

도네갈 트위드는 18세기 말 아일랜드의 도네갈 주의 지역 농가에서 그 역사가 시작됐다. @도큐먼트


북해의 어부, 농부들이 생존을 위해 입던 트위드가 지성의 상징이 된 건 100년 전쯤부터다. 미국 아이비리그 학생들이 동경하던 영국 상류층의 캐주얼 패션을 참고해 캠퍼스에서 입기 시작하면서 강인함에 지성과 교양까지 더해졌다. 이후 켜켜이 시간을 쌓아간 트위드는 얄팍함 따위에 흔들리지 않는 꼿꼿한 기품과 여유를 품은 연륜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 만큼 트위드는 익을수록 매력이 풍부해지는 소재다. 뻣뻣하고 거친 원단이 체형에 맞춰지고, 생활감에 원단이 닳아도 낡아진다기보다 깊어진다. 그래서 질 좋은 트위드 코트를 한 벌 장만하면 매해 겨울 평생 입을 수 있고, 아들에게 물려주면 그 풍미가 배가된다. 편리함에 몸을 의탁하는 대신, 세월의 거친 풍파를 견뎌낸 트위드 코트를 꺼내자. 갑자기 들이닥친 추위조차 반가워진다. 묵직한 트위드 코트로 몸을 두르고 깃을 세울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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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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