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잉 지음|김지민 옮김|글항아리|3만2000원|484쪽
타이베이 고궁박물원에 소장된 북송 화가 곽희의 ‘조춘도(早春圖)’는 중국 회화사의 주요작으로 꼽힌다. 화가는 꽃잎 하나 그리지 않고 이른 봄의 나른한 정취를 담아냈다. 타이베이 의학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저자는 이 그림을 이렇게 말한다. “봄이 왔습니다. 공기가 습윤해져 물기가 뚝뚝 떨어질 것 같네요. 그리하여 필체가 둥글둥글하고 부드러운, 상서로운 구름처럼 생긴 그만의 독특한 ‘권운준(卷雲皴)’이 나왔습니다. 봄이 왔는데도 만물은 소생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나뭇가지에서는 아직 푸르름을 찾아볼 수 없고, 축축한 산석과 수풀 사이에는 게 발처럼 생긴 나뭇가지가 하늘을 향해 쭉 뻗은 채 기다리고 있습니다.”
독자를 연인 삼아 고궁박물원 소장 유물 36점을 러브레터처럼 읊었다. 서정적 문장이 빛바랜 수묵화에 화사한 색채를 입힌다. 동양화는 단조롭고 지루하다 여겼던 독자들에게 권한다. “유물은 동경의 거울 면과 같습니다. 그를 응시하면 그는 단순한 유물이 아니라 그가 겪었던 사연의 축영이 되지요. 그는 단지 그가 아닌, 그가 살았던 시대의 반영이기도 합니다.” 원제 戀物.
[곽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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