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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영 진화위원장 “사북 사건, 광부도 경찰도 모두 피해자”

조선일보 장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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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영 진화위원장 “사북 사건, 광부도 경찰도 모두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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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년 전 기자로 찾은 사북 탄광…위원장으로서 첫 진실규명한 사건이 사북 사건이라 더 애틋해"
박선영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이 7일 저녁 다큐멘터리 영화 ‘1980 사북’가 상영되는 서울 이화여대 아트하우스 모모를 찾았다./장윤 기자

박선영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이 7일 저녁 다큐멘터리 영화 ‘1980 사북’가 상영되는 서울 이화여대 아트하우스 모모를 찾았다./장윤 기자


“광부도, 경찰도 모두가 피해자입니다. 모두의 상처가 아물길 바랍니다.”

7일 오후 7시, 박선영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은 다큐멘터리 영화 ‘1980 사북’가 상영되는 서울 이화여대 아트하우스 모모를 찾았다. 기자였던 그는 사북 사건이 일어난 지 1년 뒤인 1981년 사북 탄광촌을 취재하며 광부들의 열악한 생활 환경에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박 위원장은 “광부 남편을 둔 내 또래 젊은 부인들의 얼굴은 다 터 있었고, 그들이 살던 7~8평짜리 집은 제대로 된 지붕도 없이 얇은 양철 슬레이트로 덮여 있었다”고 떠올렸다.

사북 사건은 1980년 4월 21일부터 나흘간 회사 측의 임금 소폭 인상과 열악한 노동 환경 등에 반발한 동원탄좌 광부들이 정선군 사북읍 일대에서 일으킨 총파업 사건이다. 광부들은 경찰과 대치하는 과정에서 사북지서와 회사 사무실을 부쉈고, 진압 경찰들에게 돌을 던졌다. 유혈 사태로 번지면서 경찰 1명이 사망하고 70명 가까이 다쳤다. 당시 계엄사령부는 81명을 계엄포고령 위반 등 혐의로 구속했다.

박 위원장은 “‘사북 1980’은 그간 국가폭력의 피해자로 주목받던 동원탄좌 광부들뿐 아니라, 진압에 나섰던 경찰들까지 피해자로 조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현장에 투입됐다가 광부들이 던지는 돌에 맞아 두개골이 골절됐던 진문규(72)·광부들이 던진 돌이 헬멧을 뚫고 머리를 때려 뇌진탕을 일으켰던 최병주(85)·광부들에게 얻어맞아 목뼈가 부러지고 팔이 빠졌던 이종환(75) 전 영월경찰서 순경들의 인터뷰를 담고 있다.

박 위원장에 따르면 진실화해위는 피해자나 유족이 직접 진실규명을 신청한 사건을 중심으로 조사를 진행하기 때문에, 경찰 등 공무원들의 피해는 신청이 없어 드러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는 “그동안 ‘진압 경찰’이라는 틀에 갇혀 자신의 상처를 털어놓지 못했던 이들이 이번 인터뷰를 통해 조금이나마 치유받았길 바란다”고 했다.

1980년 4월 강원도 정선군 사북 탄광 광부들이 열악한 근로 환경과 임금 등에 반발해 총파업을 벌였다. 사진은 ‘사북 사건’ 당시 광부들과 주민들이 몰려다니고 있는 모습./조선DB

1980년 4월 강원도 정선군 사북 탄광 광부들이 열악한 근로 환경과 임금 등에 반발해 총파업을 벌였다. 사진은 ‘사북 사건’ 당시 광부들과 주민들이 몰려다니고 있는 모습./조선DB


그는 “작년 12월 위원장으로 취임해 처음 진실규명한 사건이 사북 사건이라 더 애틋하다”고 했다. 2기 진실화해위는 작년 제 93차 위원회에서 사북 사건을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판단하고, 국가에 유족 사과와 명예 회복·재심 지원·기념사업 추진 등을 권고했다. 1기 진실화해위도 2008년 고문과 가혹행위 사실을 인정했지만, 개별 피해자의 인권침해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은 작년 12월이 처음이다.


지난달 29일 전국 영화관 30여 곳에 개봉한 ‘1980 사북’은 균형 잡힌 시각과 철저한 취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올해 EBS국제다큐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 지난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한국경쟁 장편 대상 등을 받았다. 박봉남 감독은 지난 5년 반 동안 광부들과 당시 부상 경찰, 피해자 가족들을 일일이 접촉해 당시 사건의 이면을 파헤쳤다. 박 감독은 “(광부·경찰들의) 편을 들지 않고 각자의 입장과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들려주고, 이 사건이 남긴 상처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려 했다”고 했다.

[장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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