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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진료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 논란 “‘의료판 배달의 민족’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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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진료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 논란 “‘의료판 배달의 민족’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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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비대면 진료 플랫폼을 허용하는 안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 관련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이혜인 기자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비대면 진료 플랫폼을 허용하는 안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 관련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이혜인 기자


코로나19 시기부터 한시적으로만 허용해온 비대면진료(원격의료)를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본격적으로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영리 중심의 민간 비대면 진료 시장을 용인해주는 방향으로 쏠려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대면 진료의 과잉처방을 방지하고, 환자 개인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공공플랫폼 도입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정형준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원진녹색병원 대표원장)은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영리 플랫폼 중심 원격의료 법제화, 이대로 괜찮은가’ 토론회에서 “현재까지 시범사업에 참여한 플랫폼들은 영리 목적으로만 사업을 운영하며 각종 문제를 불러일으켜 왔다”고 말했다. 보건의료 시민단체는 “규제 수준은 너무 약하고, 영리 중심의 과잉의료만 부추길 우려가 있는 플랫폼을 인정해주는 법안”이라고 평가했다.

정부는 원칙적으로 불법인 비대면 진료를 코로나19 유행 시기인 2020년부터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감염병예방법상 행정조치에 의해 허용하던 것을 시범사업으로 이어오다가, 지난해 2월부터는 의·정갈등으로 의료공백이 발생할 것을 우려해 대상을 의원급에서 병원급까지 확대해 유지했다. 현재 닥터나우, 나만의닥터 등 비대면 진료 중개 플랫폼을 이용하면 의사를 직접 만나지 않고 전화나 영상 진료를 한 후에 처방전을 발급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의·정갈등 봉합으로 지난 달 20일 보건의료 위기경보 ‘심각’단계가 해제된 이후 한시적 허용의 근거가 약해졌다. 이로 인해 정부와 국회는 이미 형성된 비대면 진료 시장을 법의 테두리 안에 넣어 규제하기 위해 의료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전진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최보윤 국민의힘 의원 등의 발의한 비대면 진료 관련 의료법 개정안이 7건 발의돼있다. 의안별 차이는 있지만 초진은 대면으로, 재진 시 비대면을 원칙으로 하고, 공적 전자처방전을 사용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김선민 조국혁신당 발의안에는 처방 시 의약품안전사용정보시스템(DUR) 확인을 의무화하고 이를 어길 시 처벌하는 조항도 포함했다.

정 위원장은 “비급여 진료가 급여 진료에 더해지는 혼합진료가 만연한 한국 상황을 고려할 때, 이러한 행태가 사실상 의료 비용 상승과 건강보험 재정 부담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비대면 플랫폼이 ‘의료판 배달의 민족’이나 ‘카카오 택시’처럼 사회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내놨다. 그는 병·의원 예약 앱인 ‘똑닥’이 가입자를 모은 후 유료화했던 사례를 언급하면서, “현재의 중개 플랫폼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중개 수수료나 구독비를 매기고 공급자와 수요자에게 중개 비용을 전가할 가능성이 크며, 각종 부대 사업을 연계해 수익성을 극대화하려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장보현 대한약사회 정책이사는 “그간 비대면 진료 앱은 ‘처방 자판기’처럼 이용돼왔다”며 “현재 법안에는 비대면 진료 횟수 제한이나, 대면과 비대면 교차를 하는 방식 등의 제도적 장치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진한 무상의료운동본부 정책위원은 앞서 비대면 플랫폼 제도를 도입한 영국, 캐나다, 미국의 사례를 소개하며 “부유한 사람들은 돈으로 대기 줄을 건너뛰어 쉽고 빠르게 진료를 하고, 취약한 사람들은 의료 접근에서 차단되는 결과를 초래하면서 한국의 보편적 건강보험 체계 자체가 붕괴할 수 있다”고 했다.


실제 탈모·비만치료제 등 미용과 관련된 약제와 향정신성 의약품이 마치 상품처럼 처방되자, 복지부가 뒤늦게 약제 처방을 개별 품목별로 제한하는 일도 있었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대안으로 ‘공적 플랫폼’ 도입을 제안했다.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데이터 관리의 주체가 되는 플랫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 대표는 “의료정보는 공공재인데, 광고 추천이나 보험심사에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도 공공플랫폼 중심의 비대면 진료 체계 설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영리 플랫폼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지고 운영하는 공공 플랫폼을 구축한다면, 의료비 증가와 지역 보건의료 붕괴, 환자 개인정보 유출 등 역기능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창현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장은 “공공 플랫폼 도입에 대해서도 필요하다면 검토해볼 수 있다고 생각은 하나, 그렇다고 해서 민간 서비스를 완전히 금지하는 것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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