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경북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 현장에서 목줄에 묶인 채 피하지 못한 동물들이 동물단체들의 구호를 받고 있다. 동물보호단체 위액트 제공 |
"하나도 안 시급한 게 없는데요…. 꼭 하나만 골라야 하나요?"
지난 18일, 서울 반포한강공원. 서울시와 한국일보가 주최한 '제2회 동물행복페스타'(동행페스타)를 찾은 시민들은 한국일보와 반려문화·콘텐츠기업 ㈜동그람이가 마련한 부스에서 고민을 감추지 못했다. 시민들을 고민에 빠지게 한 부스의 질문은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동물 문제'였다.
지난 18일 서울 반포한강공원에서 열린 '제2회 동물행복페스타'에 참가한 시민이 동그람이 부스에서 설문조사에 응하고 있다. 동그람이 정진욱 |
지금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동물 문제는 무엇인가요?
① 불법 번식장 근절
② 동물학대범 강력 처벌
③ 재난 시 반려동물 동반 대피소 마련
④ 펫숍 금지 및 유기동물 입양 활성화
① 불법 번식장 근절
② 동물학대범 강력 처벌
③ 재난 시 반려동물 동반 대피소 마련
④ 펫숍 금지 및 유기동물 입양 활성화
지난 10년 사이 반려문화는 큰 폭의 성장세를 보였다. 농림축산식품부가 2월 내놓은 '제3차 동물복지 종합계획'(2025~2029)에 따르면 지난 2015년 전체 가구 중 21.8%가 반려동물을 키우던 데 비해 약 10년만인 2024년에는 28.6%에 달했다. 이제 열 가구 중 세 가구가 반려동물을 양육하고 있다는 뜻이다.
양적으로 성장하는 동안 동물과 관련된 사회 문제는 얼마나 해결됐을까. 수년 전부터 제기된 '동물학대범 엄벌'과 같은 시민들의 요구는 얼마나 해소됐을까. 동그람이는 시민들이 변화된 사회를 체감하고 있는지, 앞으로 동물과 더 잘 공존하기 위해 어떤 과제가 필요한지를 확인하기 위해 설문조사를 준비했다.
조사 문항은 시민들의 폭넓은 의견을 담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문제를 담았다. 2017년부터 동그람이가 8년간 전한 동물 뉴스 2,163건 중 높은 비율을 차지한 키워드 '동물학대'(1,037건), '불법 번식장'(140건), 펫숍(127건), '유기동물'(935건) 등이 포함된 의제를 선정했고, 최근 들어 주목받기 시작한 '재난 시 동반 대피'와 같은 문항도 선정했다.
'동물학대범 처벌', '불법 번식장 폐쇄'가 대세지만…
"모두 해결돼야 할 문제" 한목소리
설문에 참여한 498명의 시민들은 신중하게 설문에 응했다. 비록 스티커로 붙이는 간단한 설문이었지만, 모두 동물과 공존하기 위해 한국 사회가 해결해야 할 중요한 주제인 만큼 쉽게 결정하지 못하며 깊이 고민했다. 결국 일부 시민들은 기권을 선택하며 설문 문항 가운데에 스티커를 붙이기도 했다.
치열한 고민 끝에 시민들이 가장 많이 선택한 문항은 '동물학대범 강력 처벌'(268명·53.8%)이었다. 경기 성남시에서 온 김현재 씨는 동물학대범 대다수가 여전히 벌금형에 그치는 실태를 지적하면서 "동물도 말을 못 할 뿐 생명체인데 학대만큼은 안 하도록 처벌을 지금보다 강하게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불법 번식장 근절을 택한 시민들도 141명(28.3%)에 달했다. 서울 강남구에서 온 송주미 씨는 "아무래도 동물을 통해 이윤을 얻으려는 생산업에서 동물이 더 많이 고통받지 않겠느냐"라며 "불법 번식장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동물학대를 비롯해 유기동물 등 다른 문제들도 같이 해결될 것 같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2021년 경기 광주시에서 적발된 불법 번식장의 모습. 동물자유연대 제공 |
펫숍에서 반려동물을 구매하기보다 유기동물 입양을 더 활성화하도록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의견도 68명(13.7%)의 선택을 받았다. 반려견 '보리'와 동행페스타를 찾은 보호자 김소윤 씨(경기 남양주시)는 "보리도 과거 펫숍에서 분양된 뒤, 사육 포기 상황에 처해 우리 가족이 입양했다"라며 "보리 같은 피해가 없도록 펫숍 분양보다 유기동물 입양을 더 독려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3월, 경북권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을 언급하며 '재난 시 반려동물 동반 대피소 마련'을 주목한 시민도 있었다. 재난이라는 다소 특수한 상황에 주로 언급되는 문제라는 특성상 19명(3.8%)의 선택을 받는 데 그쳤지만, 그 선택의 이유만큼은 진지했다. 서울 서초구에서 온 초등학교 6학년 김재헌 군은 "산불 현장에서 대피하지 못한 동물들이 목줄에 묶인 채 화상을 입은 모습을 TV로 본 게 기억난다"라며 이 문제 해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지난 3월 경북권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로 인해 화재 현장을 벗어나지 못한 개의 모습. 동물보호단체 위액트 제공 |
"바뀐 것 있지만, 여전히 갈길 멀어"
한국 동물 문제 현주소는…
시민들의 인식은 명확했다. 동물학대범 강력 처벌이나 불법 번식장 철폐처럼 10년 넘게 언급된 주제들도 여전히 더 나아졌다고 보기 어려웠고, 새롭게 인식된 문제에도 대응이 늦은 까닭에 현안이 산적해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시민들이 이렇게 느끼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불법 번식장 문제, '반려동물 이력제'로 막을 수 있을까
물론 제도권에서도 동물 문제에 대한 나름의 해결책을 모색해왔다. 불법 번식장 근절과 관련해서 정부는 이미 관련 대책을 마련했고, 곧 시행도 앞두고 있다. 2023년 정부는 동물생산업 허가를 받은 업장에서 사육하는 부모견을 비롯한 모든 개를 동물등록하도록 제도를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2020년 경기 고양시의 한 공터에서 발견된 불법 번식장에서 사육되던 개 '다슬이'의 모습. 동물자유연대 제공 |
이 같은 '반려동물 이력제'가 시행되면, 정부는 불법 번식장에서 태어난 개체 유통이 차단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박정훈 동물복지환경정책관은 이에 대해 "반려동물 영업의 책임성과 투명성이 제고되어 영업장 내 동물의 보호·복지 수준이 실질적으로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개정 동물보호법 시행령은 지난 6월 공포되어 오는 2026년 6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다만, 이 문제의 원인이 '대량 생산과 판매'에 몰두하는 시장 구조에 있다고 보는 정책 전문가들은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의 이형주 대표는 "시장에 유통되는 개체 수가 줄지 않으면 아무리 관리를 강화해도 영업자들의 불법행위를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물학대범 양형기준 설정'…
"법 취지 맞는 양형기준인지 되돌아봐야" 전문가 지적도
"법 취지 맞는 양형기준인지 되돌아봐야" 전문가 지적도
국내 동물보호법 법정 처벌 수위는 최대 징역 3년으로, 해외의 법제에 비해 뒤떨어지는 수준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실제 법정 최고형을 받은 사례가 극히 드물다는 점에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대법원에서는 형량을 규정하는 양형기준을 만들어 지난 7월부터 적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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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양형기준 중 일부 내용이 실제 동물학대범 처벌에 부적합하다는 지적도 있다. 동물보호단체 '동물자유연대' 법률지원센터장을 맡고 있는 한재언 변호사는 보호자의 처벌불원 의사가 감경기준에 포함된 점을 지적했다. 그는 "동물보호법은 보호자가 아닌 동물을 보호하는 법"이라며 "입법 취지와 맞지 않는 감경기준을 삭제해 달라는 의견서를 제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여기에 더해 동물학대 문제를 해결할 방법으로 언급되는 '동물학대범 사육금지 법제화'도 아직 도입 가능성이 높지 않다. 농식품부가 지난 2월 '제3차 동물복지 종합계획'(2025~2029)를 내놓으며 제도 도입 추진 의사를 밝혔지만, 2022년 논의되던 비슷한 법안에 법무부가 반대 의사를 밝힌 바 있기 때문이다.
'재난 시 반려동물 동반대피'는 국회서 공전…
유기동물은 여전히 보호소에서 절반 넘게 죽는다
유기동물은 여전히 보호소에서 절반 넘게 죽는다
재난 시 반려동물 동반 대피소를 만들어달라는 최근의 요구에 대해서도 아직 제도권에서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다. 지난해 6월,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관련 내용을 담은 재해구호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이 법안은 1년이 지나도록 소관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현행법상 동물판매업이 존재하는 만큼 펫숍 근절에 대해서는 법제화가 지지부진한 상태다. 게티이미지뱅크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입니다. |
'펫숍 금지' 또한 구호에 그치고 있다. 현행법상 동물생산업 · 판매업이 존재하는 만큼 직접적으로 펫숍을 금지하자는 제도가 추진되지는 않고 있다. 유기동물 입양도 아직 갈 길이 멀다. 농림축산검역본부가 내놓은 '반려동물 보호·복지 실태조사'(2024)에 따르면 전국 지방자치단체 동물보호소에 들어온 동물 10만6,824마리 중 보호소에서 죽은 동물(안락사, 자연사 포함)은 모두 4만9,080마리(46%)에 달했다.
동물보호단체 '비글구조네트워크' 김세현 대표는 이에 대해 "자연사로 기록된 동물들이 실제로는 안락사된 사례도 있는 만큼, 사실상 안락사와 자연사 구분은 무의미하다"라며 "지자체 동물보호소에 들어가는 건 동물 입장에서 입양 기회 없이 죽으러 들어가는 것과 다름없는데, 현실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촉구했다.
한국일보X동그람이 공동기획 설문조사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동물 문제는 무엇인가요?"
설문조사 기간 : 2025.10.18~19
설문조사 장소 : 서울 반포한강공원 일대(제2회 동물행복페스타 현장)
설문조사 참여인원 : 498명
정진욱 동그람이 에디터 leonardo@hankook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