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밤’ 속 치과의사 오영제 이미지
자기중심성·독점욕 가득 찬 의사 표상
의사의 권위, 책임 의식 전제될 때 성립
영화 ‘7년의 밤’에서 치과의사 오영제(장동건)는 자기중심적이고 독점욕 가득 찬 인물로 그려진다. 씨제이이엔엠(CJ ENM) 제공 |
의료인문학이라는 분야를 접하면서 제가 문학에 관심을 두게 된 데에는 여러 영향이 있을 거예요. 여러 기억을 꼽아볼 수 있겠지만,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을 읽었던 일은 중요한 요인 중 하나입니다. 작품을 읽어 보신 분들은 의아해하실 것 같습니다. 스릴러로 분류되는 작가의 작품인데다, 의학적인 요소는 별로 등장하지 않으니까요.
저에게 이 작품이 의미 있는 이유는 최종 악역인 인물 오영제가 치과의사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인물의 직업은 배경일 뿐이고 소설의 진행에는 아무런 상관도 없으며, 작품에는 치과와 관련된 공간이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직업으로 설정한 것을 가지고 너무 예민하게 구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어요.
하지만, 다른 사람의 작품이 아닌 정유정 작가의 작품이기에 문제가 됩니다. 작가의 작품들은 주로 등장인물의 심리를 그려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 그리하여 작품에 등장하는 “이상한” 인물들의 선택이 그의 사정과 상황, 심리를 이해하면 그래서 저렇게 행동했을 수도 있겠다는 마음이 들게 만든다는 점에서 강점을 지닙니다. 그렇다면 작품에서 인물의 배경과 성격은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지요.
작품에서 대립 구도를 형성하는 인물은 최현수와 오영제입니다. 최현수는 전직 야구선수로 선수 생활을 망친 뒤 무능한 가장으로서 엉망진창으로 살아가고 있지요. 겨우 경호업체 자리에서 경비 근무를 서던 그는 음주 운전을 하다가 그만 학생을 치게 됩니다. 범죄를 은폐해야겠다는 생각이 앞선 최현수는 아직 살아 있는 학생을 살해한 뒤 강에 유기하고, 이를 덮기 위해 댐 수문을 여는 더 큰 사고를 치게 되지요. 결국, 애초 범행을 들키지는 않았으나, 댐 방류 탓에 사람들이 사망하게 되면서 살인자가 되는 인물입니다.
살해된 아이의 아버지인 오영제는 치과의사로 마을에서 영향력을 지닌 인물입니다. 자기중심적이고 통제욕이 극도로 강한 사람으로, 그런 성격을 보여주려고 목칠공예로 정밀한 작품을 만들어 내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하지요. 그는 아내와 딸을 옭아매고 폭력을 휘두르는 것도 서슴지 않아요. 최현수에게 딸이 살해당했다는 것을 눈치챈 오영제는 딸의 복수가 아닌 자신의 것을 빼앗겼다는 분노에 사로잡혀 최현수의 아들을 집요하게 괴롭히지요.
범죄를 가리기 위해 더 큰 범죄를 어설프게 저지르거나, 분노 때문에 7년 동안 집요하게 누군가를 괴롭히는 행동은 일반적이지도 않고, 쉽게 이해할 수도 없어요. 자칫하면 에이,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지겠어, 라는 느낌을 주기 쉬운 위태로운 서사입니다. 여기에서 작품의 승패는 둘의 행동을 얼마나 “그럴듯하게” 만드느냐에 달렸지요.
작품은 두 사람의 내면 또는 외면을 정밀하게 묘사해 내어 성공을 거둡니다. 거듭되는 최현수의 악수는 불행했고 불운했던 과거로 설명됩니다. 그렇다면 오영제의 끔찍한 악의는? 소설은 오영제의 내면을 묘사하지 않아요. 오로지 제시되는 것은 그의 행동과 외부의 평가입니다. 그리고 그가 “치과의사”인 것은 그를 그럴듯하게 만드는 핵심 요소 중 하나가 됩니다.
그런데, 치과의사는 어떤 이미지이길래 소설의 최종 악인에게 설득력을 부여하는 직업이 되었던 걸까요.
이 소설을 처음 읽던 당시 수련의였던 저는 앗, 최종 흑막이 치과의사라니 슬프다,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제는 그 마음을 “외적 직업 정체성과 내적 직업 정체성의 괴리”로 정리합니다. 쉽게 써 보면 집단으로서 의사가 이해되는 방식과 의사가 하는 일에 대한 개인적 이해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건데요.
개인으로서 의사는 훌륭한 일, 적어도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요. 사람을 치료하고 살리는 일은 숭고하다고 표현해도 이상하지 않은 작업이지요. 환자의 눈에도, 의사 자신의 눈에도 나름 좋은 일을 하며 살고 있는 것으로 그려질 거예요. 소수의 예외가 있기는 하겠지만요.
하지만 집단으로서 의사는 상당한 문제가 있는 직업군으로, 심지어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사회 문제로까지 그려져요. 사회 구성에서 의사 전문직 집단은 주로 환자 치료와 관련된 여러 책임을 부여받고, 대신 그에 상응하는 권리를 누리는 계층입니다. 사회의 병자를 치료할 것을 다른 무엇보다 우선할 책무에 상응하여 독립성과 독점권을 부여받은 이들이라는 거예요.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직군에 대한 책임 부여는 흔치 않기에, 사람들은 이런 책임-권리의 교환이 전제되었다는 것을 잊고 한쪽만 강조합니다. 따라서 사회가 보기엔 의사들은 사람의 건강을 다른 무엇보다 우선해야 하는 책임 있는 위치에 놓인 자이고, 의사가 보기에 자신은 독립과 독점의 권리를 누리는 사회의 특수 계층이지요.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교환으로 해석하기보다, 능력에 부여된 특징으로 이해합니다. 즉, “공부 잘해서” 현재 상태에 놓였다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능력에 대한 강조 또는 환상이 권리를(또한 책임을) 뒷받침하기에 의사 집단은 이상한 집단이 됩니다. 사회가 봤을 땐 건강과 질병이라는, 다른 집단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전문가에게 맡겨 놓은 거예요. 반면, 이들은 자신이 실력으로 현재의 위치를 쟁취했다고 굳게 믿어요. 게다가 자신은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지요. 따라서, 밖에서 이런 상황을 건드리는 이들은 모두 적이자 악입니다. “내가 얻은 것을 빼앗기는” 일로 오해하기 때문에, 또 내 노력을 알아주지 못하는 사회에 대해 분노해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 텐데요. 2024년 의-정 갈등 상황은 이를 비극이자 희극으로 보여준 극명한 사례였지요.
‘7년의 밤’에 등장하는 의사는 집단으로서 의사가 어떻게 사람들의 인식에서 문제로 표상되고 있는지 보여주지요. 왜 그의 내면이 자기중심성과 독점욕으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그려지는지, 독자는 그런 “의사”를 어째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지 말입니다.
이 양쪽의 간극 속에서, 무엇이 서로에 대한 오해인지 점검하는 것부터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김준혁 연세대 교수·의료윤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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