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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희토류 횡포, 곧 역풍 맞는다”

조선일보 최유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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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희토류 횡포, 곧 역풍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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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의 반격 시작됐다




프랑스 서부 라로셸에 있는 솔베이 희토류 정제 공장의 내부. 이 공장은 환경 오염 없이 희토류를 정제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갖고 있다. /솔베이

3줄 요약
  • 중국의 희토류 수출 금지 조치에 시달려온 미국과 유럽이 반격에 나섰다.
  • 90% 이상 중국에 집중된 공급망을 조정하기 위해 과거 희토류 명가 기업을 다시 불러냈다.
  • 중국의 덤핑 공세에 밀려 문을 닫았던 희토류 기업과 광산이 정부 지원 속에 다시 공장을 돌리며 회춘기를 맞고 있다.


대서양을 바라보는 프랑스 서부 항구 도시 라로셸에 있는 벨기에 화학 회사 솔베이의 희토류 공장은 지난 4월부터 영구 자석에 들어가는 네오디뮴(Nd)과 프라세오디뮴(Pr) 생산을 시작했다. 중국이 미국의 관세 폭탄에 맞서 희토류 수출 통제에 들어간 시점이었다.

솔베이의 라로셸 희토류 공장은 1990년대 세계 최대 희토류 정제 공장이었다. 세계 희토류 정제 제품의 30%가 이곳에서 생산돼 이 공장 생산량에 따라 희토류 국제 가격이 결정됐다. 많을 때는 세계 시장 비율이 48%까지 올라간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공장은 2000년대 들어 내리막길을 걸었다. 희토류 채굴, 정제 과정에서 발생하는 방사선 누출 등 환경오염 문제를 아랑곳하지 않은 중국이 서방 업체보다 훨씬 싼 가격의 제품을 국제 시장에 쏟아내면서 솔베이는 막대한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점차 생산량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라로셸 공장은 차량용 촉매제 등으로 사용되는 희토류 제품을 연간 4000t가량 생산해 근근이 명맥만 유지해 왔다. 작년 한 해 세계 희토류 정제 제품 생산량이 39만t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이 공장의 비율은 1% 정도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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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베이 “유럽 수요 30% 감당 가능”

그랬던 솔베이 라로셸 공장이 요즘 유럽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다. 전 세계 희토류 정제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한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를 무기로 미국 등 서방을 압박하는 일이 수시로 벌어지면서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 발등의 불이 됐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희토류 정제 시설이었던 솔베이 라로셸 공장은 17종의 희토류를 모두 정제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 솔베이는 16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적인 화학 회사로 희토류 정제 기술 분야에서는 중국보다 한 수 위라고 할 수 있다. 지금도 중국 상하이에 연구소를 두고 최신 희토류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솔베이는 수백만 달러인 현재의 투자 규모를 1억1000만달러까지 끌어올리면 2030년까지 유럽이 필요로 하는 희토류 정제 제품의 30%를 조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중국 외 지역에서 희토류 원광을 수입하고, 희토류가 들어간 영구자석 등을 수거해 재활용하면 중국의 횡포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연주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연주




미 국방부, MP 머티리얼즈에 4억 달러 투자

미국의 희토류 기업 MP머티리얼즈도 요즘 몸값이 상한가이다. 중국이 희토류 수출를 발표한 지난 4월말 주당 24달러 수준이었던 이 회사의 주가는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 강화 방안을 발표한 직후인 10월10일 장중 주가가 84.92달러까지 치솟으면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중국의 희토류 통제 강화에 따른 반사이익을 누릴 것이라는 기대 속에 주가가 250%나 오른 것이다. 이 업체는 미국 내 유일한 희토류 광산인 캘리포니아주 마운틴패스 광산을 소유하고 있고, 희토류 정제 공장도 운영한다.


미 국방부는 지난 7월 이 업체가 미국 내 희토류 정제 시설을 대폭 확장할 수 있도록 4억달러의 자본을 투자해 15% 지분을 확보했다. 1억5000만달러의 저리 융자도 제공했다. 애플도 자사의 스마트폰과 오디오 장비 등에 들어가는 희토류를 확보하기 위해 이 회사와 5억달러 규모의 장기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JP모건과 골드만삭스는 이 회사에 총 10억달러 규모의 자금 대출을 약속했다.

희토류는 전기차 모터, 스마트폰, 풍력 터빈 등에 들어가는 영구자석의 핵심 재료이지만, 전투기 엔진과 레이더, 미사일 등 첨단 군사 무기를 개발하는 데도 빼놓을 수 없는 물질이다. 중국은 미국과 관세 협상을 시작한 이후 영구자석용 희토류는 수출 통제를 풀었지만, 군사 무기 개발에 들어가는 중(重) 희토류는 여전히 수출을 막고 있다. 이른바 민간과 군사용으로 모두 쓰이는 이중용도 품목이라는 이유로 해제 대상에서 제외한 것이다.

미 국방부가 대규모 자금을 들여 MP 머티리얼즈의 지분을 사들인 것은 이 업체를 통해 군사용 희토류 정제 제품을 자급하겠다는 뜻이다.








中 덤핑 공세 막을 ‘가격 보장’이 관건

미국과 유럽 기업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중국이 자국의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헐값에 국제시장에 희토류 정제 제품을 쏟아낼 수 있다는 점이다. 덤핑 가격으로 희토류 정제 제품을 풀기 시작하면 2000년대에 그랬듯이 서방 희토류 기업은 다시 경영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미국은 이를 막기 위해 MP 머티리얼즈가 생산하는 희토류 정제 제품에 대해 최저 구매가를 보장해주기로 했다. 국제시장에서 희토류 시세가 하락해도 이 회사가 공급하는 물량은 그보다 높은 가격에 사준다는 것이다.

솔베이도 유럽연합(EU)에 수요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솔베이가 1억달러 이상을 투자하면 유럽의 자동차 회사나 대규모 기술회사가 필요로 하는 희토류 정제 제품을 공급할 수 있는데, 수요 업체들이 사전에 어느 정도의 물량을 어느 정도 가격에 사겠다고 장기 공급 계약을 체결해 달라는 것이다. 필리프 케렌 솔베이 최고경영자는 “우리는 환경오염을 일으키지 않고 희토류를 정제할 기술을 갖고 있다”면서 “다만 비용이 더 들어가기 때문에 그만큼 더 지불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했다.

“중 희토류 지배력 약해질 것”

중국은 2010년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 열도) 영유권 분쟁 당시 일본에 대해 희토류 수출 중단 조처를 한 적이 있고, 이번 관세 전쟁에서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에 같은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희토류 정제 기술은 반도체와 달리 진입 장벽이 그다지 높지 않아 희토류 무기화가 제 발등을 찍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희토류 정제는 환경오염 문제가 클 뿐 첨단 반도체 공정처럼 기술적으로 복잡하지 않고 매장량도 전 세계적으로 풍부하다”면서 “서방이 공급망 재편을 통해 대응에 나서면 중국의 희토류 지배력만 약화할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일본은 2010년 중국의 희토류 보복 이후 호주·베트남 희토류 광산 지분 확보, 폐기물 재활용, 대체품 개발 등을 통해 90%에 이르렀던 희토류 대중 의존도를 60%까지 낮췄고 올해 말에는 그 수치가 50% 아래로 떨어질 것이라고 블룸버그통신이 8월 30일 보도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권혜인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권혜인




희토류

독특한 화학·전기적 특성을 갖는 17가지 원소를 통칭하는 것으로 국방, 항공, 전기차,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첨단 신산업에 꼭 필요한 핵심 물질이다. 희토류는 ‘희귀한 토양 물질’이라는 뜻이지만 실제로는 지표면에 많은 양이 존재한다. 다만 워낙 소량으로 포함돼 있어 추출이 쉽지 않다. 추출 과정에서 유독 화학물질을 사용하다 보니 토양과 지하수가 오염되고, 방사성 물질이 배출된다. 이 때문에 미국 등은 그동안 채굴한 희토류 원광을 모두 중국에 보내 정제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중국의 희토류 매장량은 올해 기준 4400만t으로 전 세계 확인된 매장량 9000만t의 49%가량이다. 브라질(2100만t)과 인도(690만t), 호주(570만t), 러시아(380만t), 베트남(350만t) 등도 매장량이 적잖다. 미국은 확인된 매장량이 190만t인데, 희토류 탐사 작업이 본격화돼 이 숫자는 늘어날 수도 있다.

[최유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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