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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한 고분군 제대로 보여주려 직접 드론 촬영까지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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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한 고분군 제대로 보여주려 직접 드론 촬영까지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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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에 이어 마한 여행기까지 쓴 정은영 과장이 인터뷰 뒤 사진을 찍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가야에 이어 마한 여행기까지 쓴 정은영 과장이 인터뷰 뒤 사진을 찍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잊혀진 나라 마한 여행기’(율리시즈).



2002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주로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일해온 정은영(55)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기획운영과장이 최근 낸 역사기행 에세이다. 기원전부터 6세기까지 경기와 충청, 전라도 지역에 있었던 작은 나라들의 연맹체인 마한의 흔적을 좇아 그 시대 사람들의 일상과 예술을 보여주거나 상상하는 글들을 담았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대변인실에서 근무하던 2021년 펴낸 ‘잊혀진 나라 가야 여행기’에 이은 저자의 두번째 역사기행서다. 그가 2018년부터 3년 동안 옛 가야 땅을 수십차례 답사해 첫 기행서를 낸 배경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초 밝힌 가야사 연구와 복원에 대한 의지가 있었다.



“전공자로서(그는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89학번이다) 호기심이 생겨, 가야사에 관심이 많은 경주 양동마을 향단의 이난희 선생, 통도사의 성파 큰스님, 박왕희 전 가야문화재연구소장님 등과 답사를 다니기 시작했죠.”



가야 책을 내고는 “마한을 써보라”는 권유를 많이 받았단다. “대학 동기인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와 마한 다큐멘터리를 14편이나 만든 곽판주 전 엠비시 피디 등이 마한을 대중적으로 풀어보라는 말을 많이 했어요. 특히 곽 피디는 여러 마한 연구자를 저에게 소개해주고 답사도 함께해 큰 힘이 되었죠.”



앞으로 탐라의 흔적도 좇아 역사 기행서를 3부작으로 마무리할 계획이라는 정 과장을 지난 22일 광주광역시 동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잊혀진 나라 마한 여행기’.

‘잊혀진 나라 마한 여행기’.

그는 “국내 첫 마한 역사 기행서”인 이번 책을 위해 마한과 교류가 있었던 일본의 규슈와 베트남 하노이까지 찾아 교류 흔적인 옹관과 구슬을 보고 왔다. 책에는 그가 드론으로 직접 찍은 사진도 실렸다. 마한 유적지인 광주 월계동과 함평 예덕리 등의 장고 모양 고분을 잘 보여주기 위해 드론을 구매해 촬영법을 배웠단다.



그는 이번 책을 쓰며 중국 사서인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많이 기댔다. 국내 사서에서는 마한 관련 기록을 찾을 수 없어서다. 집필의 최대 난관인 사료 부족은 마한사의 틀 안에서 이후 변화를 탐색하고, 고분과 옹관, 금동관, 현악기 등 마한 대표 유물을 여러 각도로 살피는 방식으로 돌파했다.



그는 5년 전 국립나주박물관 전시실에서 옹관을 본 순간 마한이 자신의 마음에 들어왔다고 했다. “옹관이 마치 과거에서 살아난 듯한 존재감으로 숭고하면서 두렵기까지 했어요.”



전남에서만 모두 71곳에서 출토된 옹관은 마한의 대표 유물로 큰 것은 3m가 넘고 무게도 1.4톤을 초과한다. 그는 영산강 유역에서 6세기 제작 옹관까지 나온 것은 이 시기에도 마한의 독자 정치 세력이 존재했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마한의 소멸 시점을 두고 학계에서는 백제 근초고왕에게 복속된 4세기와 영산강 유역에서 마한의 전통이 지속하였다는 6세기설이 엇갈린다.





저자가 드론으로 찍은 광주 월계동 고분. 정은영 과장 제공

저자가 드론으로 찍은 광주 월계동 고분. 정은영 과장 제공




저자가 드론으로 찍은 함평 만가촌 고분. 정은영 과장 제공

저자가 드론으로 찍은 함평 만가촌 고분. 정은영 과장 제공


그의 고향은 전남 함평이다. 교사인 아버지 직장을 따라 고교 때까지 신안과 광주에서 살았다. 모두 마한 고분이나 유물이 발견된 지역이다.



책에서 가장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뭘까? “첫째는 영산강 유역 사람들 대부분이 지금껏 백제인으로서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은 기원전 3세기부터 길게 잡으면 기원후 6세기까지 얼추 800년을 마한 사람으로 살았다는 겁니다. 백제인으로 산 시기는 100년 정도이죠. 800년이 뿌리이고 100년은 덤입니다. 둘째는 한국의 한자 한이 우리 역사에서 처음 등장하는 게 마한이라는 거죠. 마한은 삼한(진한 변한 마한) 중 제일 컸고 제일 먼저 역사에 등장해요. 그렇다면 우리 문화의 원류를 알기 위해서라도 이 시대를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요. 제가 책에서 광주 신창동 유적지의 부뚜막과 시루 등 생활 유적을 강조해서 살핀 것도 그 때문입니다.”





2021년 ‘가야 기행서’ 낸 데 이어
최근 발로 뛰어 ‘마한 기행서’도
“우리 문화 원류 알기 위해서라도
삼한 중 가장 큰 마한 역사 알아야
마한 문화유산도 가야고분군처럼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으면”





7년 전엔 ‘블랙리스트 사태’ 살핀 책도







그는 책에서 사람들이 역사적 정체성을 아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왜냐고 하자 그는 자신의 일터가 있는 광주를 예로 들었다. “광주는 5·18의 시간도 있지만 그 전에 광주읍성의 시간도 있고 더 멀리 가면 마한 신창동의 시간도 있어요. 내가 이 시간들과 다 같이 광주에서 사는 거죠. 이를 깨달으면 내가 사는 공간이 조금 더 다채롭게 해석되고, 사는 즐거움도 더 있지 않겠어요.” 그는 아울러 “내가 먼 옛날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역사의 한 점이라는 걸 알게 되면 나의 현재 어려움을 상대화할 수 있는 힘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공무원이 되기 전 그는 ‘김영사’에서 4년 동안 편집자로 일했다. 주로 과학책을 만들었고 ‘나는 왜 사이보그가 되었나’, ‘거울 속의 원숭이’ 등 과학 책 번역도 했다. ‘문과 출신 과학 저술가’를 꿈꾸며 고려대 과학학 대학원에 들어가 공부할 때 아이엠에프(IMF) 구제금융위기가 터져 사실상 출판사에서 내몰린 뒤 대학원 공부와 고시 준비를 병행해 석사 학위와 공직을 함께 얻었다. 2018년에는 박근혜 문체부 최대 흑역사인 ‘블랙리스트 사태’를 내부자 시선으로 살피고 문제점을 짚은 책 ‘블랙리스트가 있었다’를 국회 비서관이었던 김석현 박사(문화예술경영학)와 함께 썼다.





정 과장이 공저한 ‘블랙리스트가 있었다’ 표지.

정 과장이 공저한 ‘블랙리스트가 있었다’ 표지.

마한에 몰입한 지난 몇년, 언제가 가장 좋았을까?



“국립나주박물관과 인접 고분군 사이로 핑크뮬리와 코스모스 등 형형색색의 가을꽃이 피어 어우러졌을 때이죠. 나주박물관 뒷마당은 마한의 무덤과 연결되어 있어요. 9월 말부터 10월 초까지 핑크뮬리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을 때는 너무나 아름다워요. 삶과 죽음의 경계가 허물어져 죽음도 두렵지 않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는 책에서 지금도 마한 역사가 고구려와 백제, 신라의 삼국 시대적 관점에 갇히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어떻게 해야 하냐고 하자 우선 발굴이 중요하단다. “지금 전남도는 발굴에 관심이 많아요.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노력도 하고 있고요. 이런 움직임이 광주시나 전북도로도 확장해야 결실을 볼 수 있어요.” 덧붙였다. “마한은 우리 고대사에 남은 사실상 마지막 미지의 땅입니다. 가야 고분군처럼 마한 문화유산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으면 합니다. 이를 위해 중앙정부와 광주, 전남·북이 힘을 합쳐야죠.”



그는 이번 책을 낼 때 “우리가 사는 지역을 새롭게 즐기는 관점을 제시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고 했다. “기후위기 시대에 멀리 해외로 가기보다는 가까운 소도시 여행을 하나의 새로운 생활문화로 만드는 정책이 필요해요. 여기에는 마한 등 지역의 역사문화유산을 잘 정비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이는 관광 진흥에 더해 탄소 감축과 지역 균형 발전, 문화 다양성 보존을 동시에 이룰 수 있는 길이기도 합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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