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매일경제 언론사 이미지

"그녀 겨드랑이 속 사과도 좋아"… 인간 역사 속 사랑 이야기

매일경제 정주원 기자(jnwn@mk.co.kr)
원문보기

"그녀 겨드랑이 속 사과도 좋아"… 인간 역사 속 사랑 이야기

서울맑음 / -3.9 °
사랑으로 읽는 세계사
에드워드 브룩 히칭 지음, 신솔잎 옮김
현대지성 펴냄, 2만8000원

사랑으로 읽는 세계사 에드워드 브룩 히칭 지음, 신솔잎 옮김 현대지성 펴냄, 2만8000원

왼손 약지의 반지나 새빨간 장미꽃으로 사랑을 약속하는 게 새삼 편리하게 느껴진다. 남태평양의 섬나라 피지에선 젊은 남성이 결혼하려는 여성의 아버지에게 고래 이빨을 선물한다. 19세기 오스트리아엔 남녀 구혼자가 모여 사과로 청혼을 하는 독특한 풍습이 있었다. 여성들이 겨드랑이에 사과 조각을 끼운 채 춤을 추고, 마음에 드는 남성에게 젖은 사과 조각을 베어 물게 했단다. 저자는 이 이야기를 접하고선 사랑에 관한 인류의 기묘한 흔적을 집대성하기로 결심했다.

인간이 있는 곳 어디에나 사랑이 있기에, 사랑에 관해선 수많은 유물이 남아 있다. 저자는 1만년이 넘는 세월에 걸쳐 형성된 이 신비로운 자취를 고르고 다듬어 50가지 이야기로 펼쳐 보인다. 책에 삽입된 이미지만 300여 장이다. 영국왕립지리학회 회원이자 논픽션 베스트셀러 작가인 그의 방대한 자료 조사가 돋보인다.

사랑은 한때의 불꽃으로 덧없이 사라진다고도 하지만, 이 역사학자에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긴 인류의 원동력이다. 책에 실린 가장 오래된 사랑에 관한 유물은 기원전 9000년 전 선사시대 조각상인 아인 사크리 연인상. 껴안은 인간을 표현한 가장 오래된 조각이라고 한다. 저자는 이어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그리스와 중국의 가장 오래된 사랑 예술품들을 소개한다. 역사는 흘러흘러 20세기 오스트리아 작가 클림트가 그린 황금빛 '키스' 등으로 이어진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랑 노래, 밸런타인데이 문화, 사랑의 상징이 된 '하트' 문양 등도 이야기의 주제다.

낭만과 환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랑에 내포된 은밀하고 불편한 진실도 다뤘다. 이를테면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의 그림 '내 머릿속의 디에고'를 통해선 남편 디에고 리베라의 외도, 집착과 자기 파괴에 시달려야 했던 그녀의 삶을 다룬다. 15세기에 부부싸움을 해결하기 위해 남편과 아내가 결투를 치렀다는 기록 등 상식의 틀을 깨는 충격도 선사한다.

[정주원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