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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시평] 한일 전력망 연결, 다시 추진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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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시평] 한일 전력망 연결, 다시 추진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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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주요 권역들 중 국가 간 전력망 연결이 되지 않는 곳이 별로 없다. 북미, 유럽, 아프리카, 동남아, 호주 등에서 지상, 지하 또는 해저로 전력망이 국경을 넘는다. 개별 국가만으로는 전력 수급이 불안하거나 전기료가 폭등하는 상황에 대해 보완·완충 역할을 해왔다. 세계에서 그 유일한 예외가 중국, 한국, 일본으로 구성되는 동북아 권역이다. 역동적인 경제 활동으로 전기를 제일 많이 쓰는 제조업 국가인데도, 3국 간 망 연결이 없이 전력 자급 섬처럼 살아왔다.

지난 10여 년간 전력망 연결에 관한 논의는 무성했다. 정부 간에서도 동북아 지역 협력의 중요 어젠다가 돼 오곤 했다. 그런데 대체로 일본 정부가 미온적이었다. 특히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는 우선적 관심 사항이 미·일 관계였고, 도널드 트럼프의 환심을 사는 데 전력을 다했다. 동북아 전력망 연결이 일본에 무슨 도움이 되느냐는 것이었다.

그래도 일본에서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열정으로 이 프로젝트가 추진돼 왔고 나중에는 이 논의에 러시아와 몽골까지 끼어들어 왔다. 다양한 전력망 연결 루트가 그려지고 4국 간 전력 거래 시장이 그려졌다. 한국은 중·러·몽골 등에서의 저렴한 전력을 일본에 파는 중개 무역이 가능해 지정학적으로 유리한 면까지 있다. 그러나 그 후 미·중 관계 등 동북아 정세가 급격히 냉각되고 한일 관계도 불편해지면서 동북아 슈퍼그리드 구상은 사실상 추진되기 어려웠다. 그래도 손 회장은 한전 측과 한마음으로 한일 간이라도 해저 전력망을 연결하고자 했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 2019년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그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진도가 나가지는 못했다.

당분간 동북아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전력망 연결은 인내심이 필요할 듯하다. 그러나 새로운 환경과 여건 속에서 한일 슈퍼그리드는 오히려 힘을 받을 수 있다. 첫째, 한일 관계가 밀접해지고 새 정부에서도 인공지능(AI) 시대, 탄소중립 시대에 맞는 미래 지향적 한일 관계를 원하고 있으며 일본 정부도 이에 공감하고 있다.

또 트럼프의 독단, 중·러·북 반미 연대 형성 등 제반 국제 여건 속에서 한일은 경제 연대를 형성하지 못하면 국제사회에서 존재감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는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이럴 때 한일 슈퍼그리드는 상징성·실효성 면에서 최고의 주제가 될 수 있다. 특히 친한적이었던 일본의 이시바 시게루 총리 체제가 바뀐다 해도 먹혀들어갈 어젠다다.

둘째, 양국은 탄소중립 선도국의 위치에서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비중을 더욱 높여야 하는데,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으로 인해 보완적 시스템이 절실하다. 국내에서는 가스 발전이 그 역할을 하지만 가격이 너무나 불안정하다. 독일이나 스페인과 같이 재생에너지 공급이 부족하거나 넘쳐서 생기는 대정전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웃 국가 간 전력 교류를 통해 이를 보완하고 위기 상황을 예방해 나갈 필요성이 커졌다.


셋째, 송전 기술의 혁신이다. 과거의 전류형 변환 체제에서 전압형으로 바뀌고 직류송전이 상용화되면서 좀 더 많은 양의 전력을 빠르고 유연하게 송전할 수 있게 됐으며, 해저 케이블 제작과 건설에 관련된 기술도 발전했다. 그래서 한국도 서해안과 한반도 에너지 고속도로를 추진하는 것이다.

AI 시대에 전력 수요는 급증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이러한 면에서 동병상련을 안고 해결책에 부심하고 있다. 한일 간은 초고속 정보통신망도 구축됐다. 한국과 일본의 젊은 세대 간 문화적 교류도 눈부시다. 한일 간 전력망 연결은 건설비만 약 3조원 정도에 달하는 대형 한일 협력 사업이 될 수 있다. 각 분야로의 파급효과도 크다. 결코 지체할 수 없는 사업이다. 조속히 논의가 재개되길 바란다.

[조환익 국민대 교수·전 한국전력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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