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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칼럼] 비전은 없고 반대만 하는 국민의힘은 낡았다

조선일보 한석호 한국노동재단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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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칼럼] 비전은 없고 반대만 하는 국민의힘은 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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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여인형·이진우·곽종근·고현석 중징계 처분
노란봉투법 국면에서
국힘은 ‘대안 없는 무능’
성난 반대와 규탄뿐이다

노조가 마음에 안 든다고
노동을 팽개치는 정당을
어떻게 지지하겠나
새는 좌·우·꼬리 세 날개의 균형으로 난다. 어느 날개든 망가지면 못 난다. 정치도 진보·보수·중도의 균형이 필요하다. 그래야 국가가 튼실하게 전진하고 국민의 삶이 평안해진다. 안타깝게도 작금 상황은 정치 균형이 무너졌다. 민주당 지지자 눈에는 흡족할지 몰라도, 국가와 국민 측면에서는 위태로운 형국이다. 그것은 민주당 책임이 아니다. 민주당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자기 정치를 충실하게 펼치고 있을 따름이다.

정치 운동장이 크게 기울어진 것은 전적으로 국민의힘 책임이다. 황당무계한 계엄과 국민의힘 행보는 거론하지 않겠다. 민주당은 내란 척결 국면을 길게 끌어가고 싶겠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가 구속된 뒤 시중 술자리에서 계엄 국면은 끝났다. 시중의 주요 관심과 근심은 경제와 민생이다. 밑바닥에서 느끼는 민생 문제는 무척 심각하다.

대한민국은 트럼프의 관세 충격에다 국제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대기업 임금 상승, 청년 고용 악화, 무너지는 소상공인, 노동시장 이중 구조, 지방 소멸과 저출생 등 난제가 수두룩하게 쌓여 있다. 정치는 난제를 붙잡고 누가 잘 해결하나 경쟁하는 통치 행위다. 그 점에서 민주당은 정책이 있고 논리가 있다. 동원 전략도 있다. 그러나 눈을 씻고 봐도 국민의힘은 없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성난 반대와 규탄뿐이다. 더 큰 문제는, 반대하더라도 정책과 논리가 있어야 하는데 국민의힘엔 그것이 없다는 점이다.

예를 들겠다. 노란봉투법 국면에서 드러난 국민의힘 모습은 ‘대안 없는 무능’ 그 자체였다. 노란봉투법을 반대했다고 해서 무능하다는 것이 아니다. 국민은 3년 전 거제도 대우조선 하청 노동자가 사방 1m 쇠창살에 스스로를 가둔 채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라며 절규하던 장면을 생생히 기억한다. 하청 노동자가 더 힘들게 일하면서도 원청 정규직보다 형편없는 임금을 받는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원청 대기업이 하청 단가에 하청 노동자 임금을 적절하게 반영하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었다.

하청 노동자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점에 국민은 세대와 진영을 가리지 않고 공감했다. 민주당은 그 대안으로 노란봉투법을 밀어붙였다. 그에 비해 국민의힘은 하청 노동자 처우를 어떻게 개선하겠다는 대안 없이 무작정 반대만 했다. 하청 노동자 처지에서 보면, 민주당은 괜찮은 정당이고 국민의힘은 대기업 편만 드는 야속한 정당이다. 국민의힘을 지지할 마음이 생길 리 없다. 국민의힘이 그렇게 했다고 대기업 경영계가 적극 지지하는 것도 아니다. 노조로 묶인 대기업 정규직 다수는 민주당을 지지한다. 국민의힘은 동원 전략에서도 빵점이었다.

그것 아는가. 미국 부통령 J D 밴스, 국무장관 마코 루비오, 트럼프 싱크탱크의 한 축 아메리칸 컴퍼스(American Compass)는 노동운동 강화를 지지한다. 유럽 극우를 상징하는 프랑스 국민연합(RN) 대표 마린 르펜은 페미니스트다. 독일을 위한 대안(AfD) 공동 대표 알리체 바이델은 레즈비언 성소수자다. 유럽 불평등은 한국보다 양호하다. 그럼에도 이들은 반이민 탓에 극우 딱지가 붙었을 뿐 앞장서 불평등 개선에 목소리 높이고 있다. 지지율이 상승하는 요인이다.


세계 불평등 연구자 토마 피케티는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 노예제 정당이던 미국 민주당이 어떻게 뉴딜 정당에서 민권운동 정당을 거쳐 흑인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이 되었는지 궤적을 살펴야 한다고 했다. 세상은 21세기를 맞아 25년이 흘러가고 있다. 그런데도 국민의힘은 국민 다수, 특히 청년층에게 노동·인권·환경·여성·안전 등 보편 가치조차 무시하고 위협하는 정당으로 인식된다. 내 눈에 국민의힘은 노동과 노조도 구별하지 못하는 정당, 노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노동을 내팽개친 정당이다. 미국 공화당과 유럽 극우 정당과 비교하면 국민의힘은 철학도 비전도 없다. 자체 실력이 안 되면 정책이든 현장이든 네트워크든 뭐라도 풍부해야 하는데, 자기들만의 구중궁궐이다. 한마디로 국민의힘은 낡았다.

한 청년이 있다. 586세대의 불평등과 불공정, 내로남불에 잔뜩 화난 청년이다. 그가 보기에 586세대가 주도하는 정당은 민주당이다. 민주당을 한 번도 찍지 않았다고 했다. 계엄과 탄핵 이후, 그가 붉으락푸르락 구겨진 얼굴로 말했다. “세상 변화를 못 읽고 20세기에 멈춰 있는 국민의힘을 보면 갑갑해서 속에서 천불이 터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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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호 한국노동재단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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