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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우전쟁에 정신이 번쩍, 유럽이 깨어난다…“결속 다지는 EU, 한중일과도 밀착”

매일경제 진영태 기자(zi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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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우전쟁에 정신이 번쩍, 유럽이 깨어난다…“결속 다지는 EU, 한중일과도 밀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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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미셸 전 EU정상회의 상임의장 인터뷰

에너지 무기화한 러에 맞서
유럽 공동 인프라 확대나서
경제 위기에도 EU 부활 자신

강해지는 미국 우선주의에
인태·신흥국과 협력 더 중요
韓과 국방 넘어 AI 협력 원해
中통해 러 종전 압박 가할것


샤를 미셸 전 EU정상회의 상임의장. 사진은 2023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한-EU 정상회담 공동 언론발표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샤를 미셸 전 EU정상회의 상임의장. 사진은 2023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한-EU 정상회담 공동 언론발표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제26회 세계지식포럼에 참석하는 샤를 미셸 전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전 벨기에 총리)은 한국과 유럽의 협력을 거듭 강조했다. 러시아의 위협과 미국의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으로 위기에 몰린 유럽이 다자주의를 필두로 한국과 일본, 나아가 중국과도 전략적인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올해 세계지식포럼 연사로 참석하는 그를 매일경제가 단독 인터뷰했다.

미셸 전 의장은 전쟁 위협부터 경고했다. 그는 “전쟁 발발 전부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소통해왔다”며 “러시아의 위협이 허세가 아님을 인지했고, 실제 전쟁이 일어났을 때는 놀라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유럽은 지금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큰 위험에 직면했다”며 “우크라이나 침공은 유럽 대륙, 나아가 전 세계에 대한 위협”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유럽 동진에 따른 예방전 성격이라는 러시아의 가짜뉴스를 경계하고 휴전에 대한 원칙론도 제시했다. 미셸 전 의장은 “크렘린궁이 허위 주장을 퍼뜨리고 있다”면서 “전쟁 발발 전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은 논의 대상도 아니었으며, 전쟁 발발 후 스웨덴과 핀란드가 신속하게 NATO에 가입하고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EU의 확대 전략을 가속화하게 했다”고 전했다. 그는 “평화협정은 우크라이나 국민의 자유로운 주권적 선택과 유엔 헌장 원칙에 기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방비용 부담과 에너지 위기에 몰린 유럽이 이번 전쟁을 계기로 다시 강력해질 것이라는 주장도 내놓았다. 그는 “러시아가 에너지를 무기로 유럽을 분열시키려 했지만 이 같은 시도는 결국 실패할 것”이라면서 “유럽은 공동 에너지 인프라스트럭처 프로젝트를 확대하고 있으며, 이는 향후 강력한 경제적·지정학적 도구가 될 것”이라 전했다.

또 유럽 역내 경제 양극화와 브렉시트 논란 속에도 EU가 부활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미셸 전 의장은 “EU 가입 의지는 더 큰 자유, 법치 존중, 경제적·사회적 기회를 갈망하는 국가·국민들로부터 나온다”며 “서부 발칸 지역, 우크라이나, 몰도바, 조지아 등 신규 회원국 후보들의 경제적 역량도 강화될 것”이라고 전했다. 과거 EU에 가입한 국가들이 경제원조를 통해 성장한 전례가 다시금 재현될 것이라는 믿음이자 지난 75년간 이어져온 유럽 통합의 역사가 지속될 것이라는 시각이다.

미셸 전 의장은 “유럽에서는 2차 대전 종전 이후 선견지명을 가진 지도자들이 뭉쳐 용기 있는 결정을 내렸다”며 “이견보다는 공통점이 많다는 확신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1950년 쉬망 선언을 보면 경제적 협력을 정치적 화해, 평화 구축, 초국가적 기관 창설의 도구로 활용한 점이 놀랍다”며 “이는 단순한 경제 프로젝트를 뛰어넘는 야심 찬 구상이었다”고 강조했다.


1950년 5월 9일 로베르 쉬망 프랑스 외무장관이 발표한 쉬망 선언은 유럽 통합의 시초로 거론되는 유럽 내 석탄·철강 공동 관리 제안이다. 전쟁 물자를 공동 관리해 분쟁을 막고 유럽이 경제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었던 단초를 제공했다. 이후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가 출범하며 EU의 모태가 됐다. 1985년 유럽이사회는 5월 9일을 ‘유럽의 날’로 지정했다.

유럽은 스스로 뭉치고 한국과 일본, 중국에까지 다자주의를 기반으로 나아갈 전망이다. 미셸 전 의장은 “EU는 본질적으로 경제적·사회적 복지 가치에 기반하며, 안보는 NATO와 미국에 의존했다”면서 “중국의 야망, 러시아의 전쟁, 미국 우선주의 등으로 한국과 일본 등 인도·태평양 국가들과의 협력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브릭스(BRICs) 국가와의 추가적인 협력 의사도 내비쳤다. 미셸 전 의장은 “우리는 다극화된 세계에 살고 있고 효과적인 다자주의 체제가 필요하다”며 “우리는 중국이 러시아에 압력을 가해 전쟁을 종식시키길 촉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전승절 행사를 예로 들면서 미국이 관세전쟁을 초래해 동맹국과의 관계가 약화되는 과정에서 적대국들이 더욱 결집하고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미셸 전 의장은 “EU는 신흥국들과 협력을 강화할 것이며 중국과는 인권, 민주적 가치, 경제관계 조정, 안보 등을 기반으로 관계를 재설정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셸 전 의장은 한국과는 보건, 국방, 에너지에 이어 인공지능(AI) 분야에서의 협력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AI라는 경이로운 혁명을 경험하고 있고, 이 혁신은 생산성에 막대한 잠재력을 부풀리고 있지만 동시에 자유 등 인간 사회에 심각한 도전을 야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데이터와 알고리즘은 권력의 도구이자 하이브리드 무기이기도 하다”며 “AI 혁명이 제공하는 기회를 활용하면서도 데이터를 보호하고 인간성을 보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AI는 유럽과 한국이 함께 해결할 수 있는 핵심 과제”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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