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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육아∙살림하던 여성, 홀로 여행 가더니…“일주일 다녀오니 7개월 살 수 있었다” [여책저책]

매일경제 장주영 매경 디지털뉴스룸 기자(semiangel@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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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육아∙살림하던 여성, 홀로 여행 가더니…“일주일 다녀오니 7개월 살 수 있었다” [여책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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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는 것에 무슨 준비가 필요할까요. 그 답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습니다. 만반의 준비를 해야한다는 쪽과 무작정 일단 출발하자는 쪽이죠. 오로지 여행, 그 본연의 의미에 집중하자는 것입니다. 여행만이 주는 쾌감과 힐링, 낭만이 그것입니다. 여행을 ‘콩은 어디든 굴러간다’는 것에 비유한 동명의 책을 여책저책이 만납니다.

킬리만자로 / 사진 = 이른비

킬리만자로 / 사진 = 이른비


콩은 어디든 굴러간다
정정엽 | 이른비
사진 = 이른비

사진 = 이른비


책 제목 한 번 그럴싸하다. 아니 재밌다. ‘콩은 어디든 굴러간다’. 상식 같은 문장이지만 그 속에 어떤 이야기가 들어있을지 궁금해지는 말이기도 하다. 저자 정정엽은 30년 동안 세계를 다니며 그림을 그렸다. 이중섭 미술상, 고암 미술상 등 국내 내로라하는 미술상을 받을 만큼 실력파이기도 하다. 그가 주로 그린 소재는 주로 팥과 콩. 씨앗이자 열매인 곡식을 통해 우리에게 근원적인 이야기를 건네왔다. 화면 가득히 한 알 한 알 수행적으로 그려낸 팥과 콩은 여성의 반복하는 노동을 표현하고, 작은 존재들의 고유함과 응집된 생명력을 보여준다.

​책은 저자가 30년 동안 수많은 나라를 여행하며 가는 곳마다 한 장씩 풍경을 그려온 스케치북 40여권을 집약했다. 주로 킬리만자로와 데스밸리, 남미 등 쉽게 떠날 엄두를 내지 못하는 나라들의 이야기를 골라 담았다. 그리고 그곳들이 생각보다 멀지 않다고, 나이와 상관없이 접근할 수 있는 여행 방식이 있다고 말한다.

​데스밸리 / 사진 = 이른비

​데스밸리 / 사진 = 이른비


그가 처음 여행을 시작했던 90년대 중반은 우리나라에서 아직 해외여행이 보편화하지 않았던 시기이다. 더구나 결혼해서 아이가 있는 여성이 혼자 여행을 간다는 일은 사회적으로 이해받기 어려웠다. 하지만 여행은 작업과 육아, 살림을 병행하며 살아가던 그에게 숨 쉴 구멍과 같은 것이었다. 사흘 다녀오면 3개월을, 일주일 다녀오면 7개월을 살 수 있었다고 저자는 추억했다.

​여행스케치는 오랜 세월 저자가 남긴 풍경의 기록이다. 그는 스케치하는 일이 ‘처음 그리기 감각을 즐기던 그림일기’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독자에게 여행 스케치를 해보라고 권한다. 잘 그려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의 시선에 조금만 뻔뻔해진다면 그리기의 즐거움을 만날 수 있다. 틀린 그림이란 없다. 선을 잘못 그으면 다시 그리려도 좋고, 겹쳐 그려도 좋다. 그림은 사진보다 기억을 더 잘 불러온다. 그리기 위해 유심히 보았던 풍경은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는다.

우즈베키스탄 / 사진 = 이른비

우즈베키스탄 / 사진 = 이른비


책은 크게 2장으로 구성한다. 1장에서는 그가 설산과 사막, 황무지를 찾아가 고요하지만 뜨거운 마음으로 홀로 지냈던 시간을 적었고, 2장에서는 오래전, 동료 작가들과 퍼포먼스 비엔날레에 참여하기 위해 남미로 날아가 한국의 예술을 알리기 위해 하며 좌충우돌했던 날들을 들려준다. 빠른 필력으로 그린 드로잉은 시원스러운 맛이 살아있다. 간소한 필기구로 그려 친근한 느낌을 자아낸다. 작가는 현지에서 스케치북을 구입하는데, 크기와 재질이 제각각인 노트에 그리다 보니 나라마다 그림이 다르다. 각 나라의 고유한 분위기를 조금씩 다르게 표현하는 점이 재미있다.

※ ‘여책저책’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세상의 모든 ‘여행 책’을 한데 모아 소개하자는 원대한 포부를 지니고 있습니다. 전문적인 출판사도 좋고, 개별 여행자의 책도 환영합니다. 여행 가이드북부터 여행 에세이나 포토북까지 어느 주제도 상관없습니다. 여행을 주제로 한 책을 알리고 싶다면 ‘여책저책’의 문을 두드려주세요.



[장주영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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