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경주박물관, 더위를 피해 역사 속으로 떠난다. 시원한 전시실을 거닐며 조상의 삶을 들여다본다. 유물은 과거의 잔재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삶을 비추는 기억의 거울이다. 천마총 신라 금관이 전시된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런데 금관 앞에 길게 줄이 늘어서 있다. 살펴보니 저마다 휴대폰을 꺼내 들고, 절묘한 각도로 얼굴과 금관이 겹치도록 연출하고 있다. 마치 왕관을 쓴 것처럼 보이도록 ‘착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이 사진을 남기기 위해 유물 앞에 온 순서대로 줄을 서고 있었다. 먼저 온 사람을 배려해야 자신도 방해받지 않고 인생 샷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 박물관 관리인이 다가왔다. “그냥 구경하세요. 줄 서지 마세요.” 특정 전시물 앞에만 줄이 길어져 동선을 막을 수 있을 듯하여 관리인이 나선 듯했다. 사람들이 점점이 흩어진다. 그러나 관리인이 자리를 뜨자,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곧 다시 제자리를 찾아 줄을 선다.
우리는 오랫동안 ‘차례를 지켜야 한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공공질서를 지키는 일은 언제나 옳다고 배웠다. 질서라는 이름으로 내면화된 습관이 무의식적으로 몸을 움직이게 만들어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달리 행동할 수 있는 일도 쉽게 떠올리지 못한다.
그때 박물관 관리인이 다가왔다. “그냥 구경하세요. 줄 서지 마세요.” 특정 전시물 앞에만 줄이 길어져 동선을 막을 수 있을 듯하여 관리인이 나선 듯했다. 사람들이 점점이 흩어진다. 그러나 관리인이 자리를 뜨자,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곧 다시 제자리를 찾아 줄을 선다.
우리는 오랫동안 ‘차례를 지켜야 한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공공질서를 지키는 일은 언제나 옳다고 배웠다. 질서라는 이름으로 내면화된 습관이 무의식적으로 몸을 움직이게 만들어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달리 행동할 수 있는 일도 쉽게 떠올리지 못한다.
익숙한 것은 비판 없이 당연하다고 믿는다. 무심코 다른 사람 뒤에 줄을 서는 행위는 바로 그 당연함의 세계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 아닐까.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다른 가능성을 가려버린다.
나 또한 점이었다가 줄이 되기를 되풀이하자니, 역사 드라마 ‘허준’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역병이 창궐하는 시기, 명의 허준에게 먼저 치료받으려 백성이 몰려들어 다툼을 벌인다. 여기에서 배우 임현식이 등장해 익살스러운 표정과 능청스러운 대사로 상황을 수습한다. “줄을 서시오!”
그런데 박물관 신라 금관 앞에서는 줄을 서지 말라니, 어느 것이 순리인지 헷갈린다. 시대를 건너뛰어 마주 보는 역설(逆說)이 재미있다. 익숙한 줄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선을 갖게 되는 순간, 비로소 당연했던 질서가 질문으로 다가온다. 박물관에서 얻은 또 다른 깨달음이었다.
[한승남 2025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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