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조선일보 언론사 이미지

[단독] “중수청이라 쓰고, 무법자 재판소라 읽는다“... 검찰 간부들도 반발

조선일보 이민준 기자
원문보기

[단독] “중수청이라 쓰고, 무법자 재판소라 읽는다“... 검찰 간부들도 반발

서울맑음 / -3.9 °
검사장 이어... 與 추진 검찰개혁 반대
정유미 법무연수원 연구위원(검사장)이 지난 1일 검찰 내부망에서 강도 높은 검찰 개혁을 주장하는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을 비판한 뒤, 2일 하루에만 중간 간부(차장·부장검사) 3명이 수사·기소 분리와 검찰청 폐지 등을 골자로 하는 검찰 개혁에 반발하는 입장을 낸 것으로 확인됐다.

◇“수사-기소 분리가 선진적 제도? 실체 없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김성훈 청주지검 중요경제범죄조사단(중경단) 부장은 이날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중수청이라 쓰고 무법자 재판소라 읽는다>는 게시글을 올리면서, “지금 한국에는 ‘수사-기소 분리론’이라는 유령이 떠돌고 있다”며 “수사-기소 분리가 영미법계의 선진적 제도라는 주된 논거는 자세히 살펴보면 실체가 없다”고 했다. 영미법계에선 한국식 수사-기소 분리를 가리켜 ‘괴물 같은(monstrous) 제도’ ‘무법자 재판소’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대검찰청./뉴스1

대검찰청./뉴스1


구체적으로 김 부장검사는 우선 영미법엔 판사는 물론 수사기관이 피고인이나 피의자를 신문하는 절차가 없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20세기 초반 미국에서는 경찰이 피의자의 자백을 받기 위해 밀실에서 피의자를 폭행하고 굶기는 등의 고문 수사가 횡행했다는 점을 짚었다. 당시 미국에서 이러한 고문 수사가 사회적 문제가 되자, 예심(豫審) 제도를 도입해 경찰이 아닌 판사가 피의자를 신문하게 해야 한다는 대안까지 제시됐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1954년 형사소송법을 제정할 당시 예심제도를 폐지하고, 그 기능을 준사법기관인 검사에 부여했다는 게 김 부장검사 설명이다. 예심제도의 경우 판사가 피고인을 신문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가 채택한 대륙법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으나, 형이 확정되지 않은 채 장기간 구금될 수 있다는 우려 등 부작용도 크다는 것이다. 김 부장검사는 “우리나라 외에도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 대륙법 국가들에서 우리나라와 같이 검사에게 피의자 신문권이 부여된 시스템이 채택됐고, 대륙법 수사 시스템의 한 방식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했다. 준사법기관인 ‘검사’의 수사 통제는 정당한 사법적 안전장치라는 얘기다.

이런 가운데 검찰청을 폐지한 뒤 중수청을 설치하는 것은 “인권보장 장치를 제거하는 입법”이라는 게 김 부장검사의 지적이다. 첫 수사를 맡는 경찰 단계에서의 인권 침해 등 부작용을 견제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없애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김 부장검사는 “이미 우리나라는 2020년 형사소송법을 개정해 경찰이 독자적으로 피의자를 신문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20세기 초반 미국에서 있었던 ‘무법자 재판소’가 이미 열리고 있는 것”이라며 “일반 행정기관인 경찰과 중수청에서 열리는 무법자 법정이 형사 사건을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檢 적개심만 가득한 사람이 마이크 잡아"

한편, 강수산나 서울서부지검 중경단 부장도 이날 오전 내부망에 <언어가 다를 때 생기는 에피소드>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강 부장검사는 프로이센 왕국의 프리드리히 대왕이 야간 불침번을 서는 병사들에게 ‘나이는 몇 살인지’ ‘근무한 지는 얼마나 되는지’ 물었던 일화를 소개했다.

어느 날 궁 주변을 둘러보던 왕이 매우 어려 보이는 병사를 보고, ‘여기 근무한 지 얼마나 되나’라고 물었더니 독일어를 모르는 병사는 평소 암기한 대로 “Twenty years”라고 대답했다. 깜짝 놀란 왕은 ‘그럼 도대체 자네는 몇 살인가?’라고 묻자 병사는 “Two years”라고 씩씩하게 대답했다는 것이다. 어이가 없는 답에 왕은 마지막으로 병사에게 ‘자네가 바보인가, 내가 바보인가’라고 묻자 병사는 “Both, Sir”라고 힘주어 답했다.

임은정 (가운데)서울동부지검장이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검찰개혁의 쟁점은 무언인가 : 국민이 바라는 검찰개혁의 속도와 방향'을 주제로 열린 검찰개혁 긴급 공청회에 참석해 토론하고 있다 . 연합뉴스

임은정 (가운데)서울동부지검장이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검찰개혁의 쟁점은 무언인가 : 국민이 바라는 검찰개혁의 속도와 방향'을 주제로 열린 검찰개혁 긴급 공청회에 참석해 토론하고 있다 . 연합뉴스


강 부장검사가 이 일화를 소개한 것은,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한 검찰 개혁의 토론장에 검찰 입장이 반영될 여지가 없다는 점을 에둘러 비판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검찰 개혁 공청회에는 마땅히 검찰의 입장에서 개혁안이 가져올 파장과 부작용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참석해야 마땅할 것”이라며, “검찰에 적개심만 가득한 사람이 마치 검찰을 대표하는 전권이라도 부여잡은 듯 마이크를 잡고 있다. 같은 시대에 살고 같은 언어를 말하면서도 상대방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고 했다. 근무 기간 중 수사 경험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던 임은정 지검장을 가리켜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어 그는 “‘왜’를 설명하지 못한 채 ‘검찰 수사권 폐지’가 독립운동만큼이나 중요한 과제인 양 목청을 높이는 사람들을 보면, 질문 순서가 바뀐 것을 모르고 프리드리히 대왕의 질문에 기계적으로 답변한 어린 병사같이 느껴진다”고 했다.

◇“정확한 비판과 어리석은 비판은 구분해야”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차장)도 같은 날 내부망에 게시글을 올리면서, 미국 뉴욕남부지검의 연방 검사장을 지낸 프릿 바바라 전 검사장의 저서 ‘Doing Justice’를 소개했다. 형사 사법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국민을 위해 일하는 국가의 법률가로서 기본을 돌아보자는 취지다.

강 차장검사는 특히 바바라 전 검사장의 “정확한 비판과 어리석은 비판을 구분해야 한다”는 책 속 구절을 인용했다. 검찰 개혁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더불어민주당이 밀어붙이는 개혁안에 대해선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을 에둘러 표현한 셈이다.

[이민준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