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원식 국회의장이 27일 취임 인사차 국회를 찾은 허철훈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에게 12.3 계엄 당시 국회와 선관위 상황을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
한국의 헌법은 1987년 후 38년간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개헌 필요성이 차고 넘치지만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 국민투표를 거쳐야 하는 까다로운 개정 절차가 개헌을 막아왔다. 일부 개헌론자들은 2차 세계대전 후 60번 헌법을 고친 독일 사례를 들며 국회 의결만으로도 개헌할 수 있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한다. 하지만 역대 정권에서 개헌이 무산된 이유는 또 있다. 여야의 이해 다툼 외에도 대선 직전엔 ‘권력연장론’, 대선 직후엔 ‘정권안정 우선론’ 등 정치적 타산이 작용했다.
이재명 정부 초반부터 개헌 시간표가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27일 “9월 정기국회에서 1단계 개헌부터 논의하자”고 했다. 1단계 개헌에는 국민 공감대가 넓은 5·18정신 헌법전문 수록, 계엄에 대한 국회 승인권 도입, 감사원의 국회 이관 등 큰 이견이 없는 내용을 넣자는 것이다. ‘최소 수준의 개헌’이라도 해서 첫발을 떼자는, ‘단계적 개헌론’이다. 2단계 개헌 때 4년 연임제, 결선투표제 등 핵심 사안을 포함시키자는 것이다. 쉬운 문제를 먼저, 어려운 문제는 나중에 풀자는 ‘선이후난(先易後難)’의 접근법이 현실적이라는 판단이다. 우 의장은 내년 6·3 지방선거 때 1단계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치는 걸 목표로 삼고 있다.
우 의장은 국회 개헌특위를 9월 하순에 출범시키겠다고 했다. 우 의장의 제안은 지난달 17일 제헌절 때 “국회가 국민 중심 개헌 논의에 나서달라”고 한 이재명 대통령의 요청에 대한 화답이다. 더불어민주당도 국회 개헌특위를 상설화하는 법안을 발의하고, 국민투표법 연내 개정을 약속하며 이 대통령 제안에 호응했다. 국정기획위원회도 개헌을 1호 국정과제로 제시하고 2026년 지방선거나 2028년 총선에서 개헌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로드맵을 내놨다. 개헌 논의가 결실을 보지 못하고 사그라들던 전례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뚜렷하다.
새로운 헌법은 내란이라는 권력의 폭주를 막은 시민들의 선언이 담긴,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푯대여야 한다. 유신 때 폐지됐던 국민발안제도 검토할 수 있다. 국민의힘도 개헌 경계론을 주장할 때가 아니다. 헌법은 국민이 입는 옷과 다르지 않다. 시대와 국민의 삶에 맞게 수선할 기회를 더 이상 놓치면 안 된다.
구혜영 논설위원 kooh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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