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은 기자 |
올해 한국 투자자가 가장 많이 사고판 미국 주식은 테슬라, 엔비디아 그리고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PLRT·팔란티어)다. 올해 국내 투자자의 팔란티어 거래대금은 16조원에 달한다.
인공지능(AI) 기반 데이터 분석 소프트웨어 업체인 팔란티어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성과를 내면서 서학개미(해외 주식 개인 투자자)의 눈에 띄었다. AI와 방산이라는 가장 뜨거운 테마를 모두 아우른 덕분이다.
팔란티어 주가가 최근 1년 새 5배 뛰면서 너무 비싸다는 평가도 나오지만, 팔란티어에 대한 국내 투자자의 팬덤은 과거 테슬라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이들을 일컫던 ‘테슬람’ 못지않다.
투자자들이 팔란티어에 열광하는 이유가 궁금하다면 공동 창업자인 알렉스 카프의 책 ‘기술공화국 선언’을 추천한다. 책을 보면 투자자들이 팔란티어에 강한 신뢰를 보내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카프는 ‘실리콘밸리는 길을 잃었다’라는 도발적 문장을 통해 미국 빅테크 기업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는 책임 의식을 포기하고,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에 머물러 있다고 진단했다. 카프는 그 원인으로 일찍이 체제 경쟁에서 승리했다고 결론 낸 서구 민주주의, 특정한 정체성을 공유하는 공동체 해체, 정치·사회 문제와 기업의 거리 두기 등을 꼽았다. 카프는 기업가이지만, 그의 철학은 단순히 영업으로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카프는 기업들이 다시 정부의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혁신을 유도하고, 공동체 나아가 ‘미국다움’을 회복하는 데 이바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팔란티어가 미국 국방부를 비롯한 정부와 협업이 많은 만큼 자기 방어를 위한 논리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공감되는 부분도 적지 않다.
카프가 강조하는 것처럼 정부와 기업이 한 팀이 될 때 난관을 극복한 사례는 차고 넘친다. 당장 한미 무역협상의 물꼬를 튼 것도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다. 국내 조선사의 경쟁력이 국가 간 문제를 푸는 지렛대로 쓰였다. 이재명 대통령과 만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조선업 협력에 기대감을 드러냈다.
앞으로도 정부와 기업이 호흡을 맞춰갈 때 그 공동체가 번영하고 기업도 이익을 내는 사례는 이어질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사례가 예외일 수 없다.
그런데 최근 여권(與圈)의 행보를 보면 역사적으로 성공 사례로 여겨진 정부와 기업의 협업을 기대하기 어려운 환경이 되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무엇보다 정부 정책 방향이 규제 일변도다. 이 대통령이 해외 순방에 오른 동안 국회 문턱을 넘은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재계는 물론 외국 기업단체까지 부작용을 걱정했지만,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강행 처리했다.
노란봉투법 통과 후 열린 주식시장에서 로봇주 주가가 급등했다. 파업에 대비해 기업이 로봇 도입을 서두를 것이라고 본 투자자가 그만큼 많았다는 의미다. 웃지 못할 촌극이었다.
‘더 센 상법’으로 불리는 상법 2차 개정안도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2조원 이상 상장사에 집중 투표제 의무 적용, 감사 위원 분리 선출 확대 등이 담겼다. 노란봉투법과 마찬가지로 재계의 우려는 반영되지 않았다.
그사이 이 대통령과 함께 미국을 찾은 한국 기업들은 선물 보따리를 풀어냈다. 기업은 해외로 빠져나가고, 국내 일자리는 줄어드는 악순환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카프의 표현을 빌리자면 ‘코스피 5000 시대’로 요약되는 이재명 대통령의 시장 정책도 길을 잃어버린 듯하다.
서학개미(해외 주식 개인 투자자)가 더는 특별하지 않은 시대다. 투자 자금이야 전망이 좋아 보이는 곳으로 쉽게 옮겨 다닐 수 있지만, 한번 떠난 기업이 다시 돌아오는 일은 무척 어렵다. 민관이 한 팀이라고 말만 할 일이 아니라, 노란봉투법과 상법 등이 시행되기 전에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보완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권오은 기자(oheu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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