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는 세상
장사가 잘돼 웃음이 절로 나올 법한 가게 주인이 있다. 그러나 매출이 늘수록 빚도 덩달아 불어난다. 정작 통장은 텅 비고 손님에게 잔치 한 번 못 한다. 요즘 보험사의 배당 사정이 이와 다르지 않다.
보험은 원래 오래 끌고 가는 계약이다. 그런데도 중도에 해약하는 사람이 생긴다. 이때 보험사는 해약환급금이라는 돈을 돌려준다. 계약자가 넣은 돈 일부와 이자를 계산해 지급하는데 문제는 보험사가 이 돈을 '미리' 쌓아둬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해약환급금 준비금이다.
새 회계 기준(IFRS17) 아래에서는 이 준비금을 더 엄격하게 쌓아야 한다. 계약자가 당장 해약하지 않더라도 그 가능성을 '보수적으로' 잡아 부채로 계산하라는 규정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보험상품을 팔면 팔수록 준비금을 쌓는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지는 구조가 됐다.
2022년 말 23조7000억원이던 해약환급금 준비금 누적액은 2023년 말 32조2000억원으로 1년 만에 36% 늘었다. 2024년 상반기에는 38조5000억원까지 치솟았다. 반기 만에 6조3000억 원이 늘어나는 이 부채는 단순 회계 숫자가 아니다. 준비금이 늘면 순이익이 줄고, 순이익이 줄면 배당가능이익도 함께 줄어든다.
실제로 지난해 수천억 원에서 조 단위 순이익을 거둔 보험사들조차 배당하지 못한 곳이 많았다. 상장 보험사에 배당 성향은 투자자 평가의 핵심인데 준비금 규제 탓에 주주 환원 여력이 사실상 '제로'가 됐다.
요즘 이재명 대통령은 상법 개정과 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 강화를 공약하며 코스피 5000시대 달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보험사의 노 배당 행렬은 이 정책 기조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더욱이 해약환급금 준비금은 시가평가 중심의 보험부채와 기존 해약환급금 체계를 묶어놓은 제도다. IFRS17 도입국 중 이런 규제를 운영하는 곳은 한국뿐이다.
올해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배당가능이익을 늘리려면 두 가지 길뿐이다. 순이익을 크게 늘리거나 유상증자다. 하지만 올해 금융·보험 시장 환경은 순익 급증을 기대하기 어렵고 유상증자는 주주 가치 희석 우려로 쉽지 않다. 결국 제도 개선 없이는 내년에도 배당 불가 사태가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해약환급금 준비금의 본래 취지는 소비자 보호다. 계약자가 해약했을 때 보험사가 돈을 못 돌려주는 상황을 막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지금처럼 과도하게 보수적인 적립이 아니더라도 소비자 보호는 가능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가령 기존 계약에 대해서는 준비금을 유지하되 IFRS17 도입 이후 체결된 신규 계약은 과도한 적립을 면제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보험사는 자본시장과 맞닿아 있는 금융업이다. 지나친 준비금 규제가 소비자 보호를 넘어 주주 가치 훼손과 자본시장 위축으로 이어진다면 균형점을 다시 잡아야 한다. 당국과 업계가 머리를 맞대 '필요할 만큼의 안전판'만 남기는 합리적인 제도 설계가 절실하다. 과도하게 소비자를 지키려다 투자자를 잃는 우를 범하지는 말아야 한다.
배규민 기자 bk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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