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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항거’ 되고 ‘엄복동’ 안 되는 이유[연예기자24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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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현정 기자]

결국은 ‘진정성’의 힘이다. 아니 스스로에 대해 잘 몰랐던 탓일지도.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두 영화가 같은 날 개봉했지만 희비는 엇갈렸다.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아픈 역사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담긴, 그 안에서도 위대한 삶을 살았던 이들에 대한 진심만을 오롯이 녹인, ‘항거: 유관순이야기’(이하 ‘항거’)였다.

지난 27일 ‘3.1 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아 영화 ‘항거’와 ‘자전차왕 엄복동’(이하 엄복동)이 동시 개봉한 가운데 ‘항거’는 주말 극장가를 장악하며 3‧1절 영화의 힘을 보여준 반면, ‘엄복동’은 평단과 관객의 혹평 속에서 일찌감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안타깝지만 예견된 일이었다.

‘항거’는 1919년 3.1 만세운동 후 세평도 안 되는 서대문 감옥 8호실 속, 영혼만은 누구보다 자유로웠던 유관순과 8호실 여성들의 1년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배우 고아성부터 김새벽, 김예은, 정하담 등 충무로의 연기파 배우들의 진심 어린 열연과 열일곱 소녀 유관순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그리고 인간적 면모를 만날 수 있다는 점, 만세 운동 이후의 서대문 형무소 여옥사 8호실 속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흑백의 영상미로 진중하게 담아냈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았다.

지난 주말 양일간 34만 관객(3/2(토) 189,052명, 3/3(일) 154,012명)을 기록하고, 개봉 첫 주 79만 명을 동원하며 연휴 기간 내내 전체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 누적 관객 수 790,510명을 동원했다. 순제작비가 10억원 이하로 알려져 있어 이미 손익분기점을 훌쩍 넘은 상태다.

뿐만 아니라 롯데시네마 관람객 평점 9.0, CGV 골든에그지수 97%, 네이버 영화 관람객 평점 9.44점 등 실 관람객들의 뜨거운 극찬을 불러 모으고 있으며 10대부터 50대까지 전 세대별 고른 지지를 얻으며 흥행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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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복동’의 경우는 일제강점기, 일본 선수들을 제치고 조선인 최초로 전조선자전차대회 1위를 차지하며 동아시아 전역을 휩쓴 '동양 자전차왕' 엄복동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동시대의 아픔을 그렸지만 전혀 다른 결의 스포츠 휴먼 드라마.

엄복동의 시대적 배경은 1920년 5월 2일 열린 경성시민대운동이다. 이날 대회에서 1등으로 달리던 엄복동이 경기를 갑자기 중단시킨 일본의 만행에 항의하며 우승기를 꺾었다. 이에 일본인은 그를 집단 폭행했고, 당시 경기를 지켜보던 10만 명의 조선 관중이 격분해 일제히 경기장으로 뛰쳐나왔다. 한일간의 난투극으로 확대된 이 사건은 결국 일본 측의 진압으로 끝났다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재구성했다.

무려 100억대가 넘는 제작비를 들여 만든 영화는 가수 겸 배우 비가 7년 만에 스크린으로 컴백한 작품으로 일찌감치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드라마 같은 그 날의 일과 ‘엄복동’이란 인물, 여기에 초호화 캐스팅으로 관심을 한 몸에 받았지만 결국 과욕으로 인한 진정성 부재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진 못했다. 개봉 첫날 5위를 기록한데 이어 관객들의 혹평 속에서 순식간에 하위권으로 추락해 관심 밖으로 완전히 밀려났다.

영화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저항해 전 조선이 일어났던 최대 규모의 민족운동이자 항일독립운동인 3‧1 운동의 의미와 정신을, 그 뜨거운 ‘민중의 저력’을 엄복동에 입히지만 과도한 역사 왜곡으로 감동 보단 오히려 거부감을 불러온다.

당시 그의 승리가 억눌린 조선의 한을 달래고 독립을 향한 열망에 뜨거운 힘을 불어넣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통해 조선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 줘 이후 독립이라는 희망을 품게 하고, 결국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세우게 된 뿌리라고 말하는 일차원적이고 방대한 비약을 서슴지 않는 것. 여기에 독립군과의 로맨스, 지극한 효심, 신파 등 갖가지 요소를 섞으며 3‧1절 영화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상업 영화의 모든 공식을 답습한다. 모두가 기억해야 할 가슴 벅찬 역사가 감독의 과욕으로 서서히 희화화되며 자긍심은 상실된다. 이쯤되니 역사적 아픔을 소재로, ‘3.1 만세운동 100주년'의 의미를 마케팅에 교묘하게 이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 정도.

‘항거’의 고아성은 자신의 영화를 촬영하는 내내 “죄송했다. 매일 같이 기도하듯 연기에 임했다. 열사님의 음성을 모른다는 게 한스럽더라. 대사를 한 마디 한 마디 내뱉을 때마다 늘 가슴 한 켠이 뜨겁고 죄스러웠다”며 인터뷰를 하면서도 눈물을 흘렸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 사람들의 이야기”라며 연신 진심을 전해다.

‘엄복동’을 연기한 정지훈 역시 “암울한 시대에 이렇게 드라마같은 일이 있었다는 게 놀라웠다. 위인이 아닌 스포츠스타로 생각하며 연기했지만 그 분의 의도대로였든 아니었든 어쨌든 그가 남긴 성과는 민중에 큰 힘이 됐고 그의 삶이 어떠했던 우리는 그 사실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영화는 역사적 사실, 인물을 다뤘지만 상당 부분 허구와 오락 요소가 다량 가미된 스포츠 엔터 영화”라고 강조했다.

같은 시대, 어떤 양념도 최소화한 채 처절한 사실 그대로를 오롯이 담은 다큐 영화와도 같은 ‘항거’와 스포츠 스타의 영웅담을 화려하게 담은 전형적 상업 영화 ‘엄복동’의 비교는 애초부터 잘못된 출발선이 아니었나 싶다. 영화에 대한 정체성이, 거기에 담은 진심은 조금은 다른 결이었음을 인정했다면 서로 다른 색깔의 영화로 평가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kiki2022@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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