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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안병수 기자의 피로프! 피로프!] 졌지만 투혼 불사른 살라흐… 사랑받을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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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L 득점왕… 이집트인들의 우상 / 어깨 부상 딛고 러시아전 맹활약 / 조국에 28년 만의 월드컵 골 선물 / 16강 어렵지만 팬들에 희망 전해

“이집투(2)! 러시아 제로(0)!”

비록 수는 적지만 독특한 응원 구호와 ‘파라오’를 연상하게 하는 응원복으로 시선을 잡아끄는 이들이 있습니다. 2018 러시아월드컵 다크호스로 주목받은 이집트의 팬들이죠. 개최국 러시아와의 조별리그 A조 2차전을 앞두고 2-0 승리를 기원하는 응원전을 펼치더니, “우리에겐 살라흐가 있다(We’ve got Salah)”며 프리미어리그(EPL) 팬들에게도 익숙한 응원가까지 부릅니다. 1억명 이집트인의 우상인 그는 현존 최고 공격수인 무함마드 살라흐(26·리버풀·사진)입니다.

세계일보

20일 경기가 열린 상트페테르부르크 스타디움은 6만4000여명의 구름 관중이 몰렸습니다. 대부분이 홈팀 러시아팬이지만, 이날 월드컵 데뷔전을 치른 살라흐의 존재감은 상상 이상입니다. 넋 놓고 러시아를 연호하던 홈 팬들마저 살라흐가 공을 잡으면 “아쯔따이바띠(막아 내라), 살라흐!”를 외치더군요. 경기 초반 번번이 상대 수비에 막히던 살라흐는 점차 몸이 풀리면서 특유의 위협적인 순간 침투를 수차례 보여줍니다. 설렁설렁 뛰는 것 같으면서도 공격 찬스에서는 전광석화 같은 움직임에 ‘슈퍼스타’란 이런 건가 싶더군요. 0-3으로 끌려가던 후반전에는 페널티킥으로 만회골을 기록, 조국에 28년 만의 월드컵 골을 선물했습니다.

살라흐가 이집트의 ‘등불’이 된 건 비단 월드컵 때문만은 아닙니다. 아랍 최대 국가인 이집트는 7년 전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가 물러난 뒤 경기가 침체돼 오랜 경제불황을 겪고 있습니다. 2016년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았고, 이집트 경제의 11%를 차지하는 관광업마저 극단주의 단체들의 테러가 이어져 큰 타격을 받고 있습니다. 기댈 곳 없는 이집트 국민은 지난 시즌 EPL 득점왕을 거머쥐며 단숨에 세계 축구의 중심이 된 살라흐에게서 희망을 봅니다. 지난 5월 소속팀 경기 도중 심한 어깨 부상을 당한 살라흐가 불굴의 의지로 출전을 강행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집트는 1-3 패배를 떠안으며 조별리그 2연패로 16강행이 사실상 좌절됐습니다. 경기 뒤 살라흐는 취재진의 질문 세례에도 굳은 표정으로 경기장을 떠났습니다. 소감을 묻자 말없이 고개를 가로젓더군요. 그러나 침통한 표정의 한 이집트팬은 “살라흐는 최고였다”고 치켜세웁니다. 비록 ‘이집트 왕자’ 살라흐의 러시아 정벌은 좌절됐지만 그가 전한 희망가는 축구팬들의 가슴을 오랫동안 적실 듯합니다.

r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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