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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내 사랑 울릉,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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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에 반해 2004년 정착한 이장희, 자신의 전용 공연장 ‘울릉천국아트센터’ 열어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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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하면 떠오르는 것은? 오징어, 호박, 명이나물 정도가 있겠다. 요즘엔 하나가 추가됐다. ‘이장희’다. 울릉도는 가수 이장희(71)가 정착해서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6년부터 매년 울릉도를 찾아서 여행하던 이장희는 2004년부터 울릉도 북면 송곳산 산골 마을에 집을 짓고 정착해서 살고 있다. 그는 “울릉도를 보는 순간 첫눈에 반했다”고 말했다.

“이야, 우리나라에도 이런 섬이 있나. 96년도에 첫 방문을 하면서 포항에서 도동항을 통해서 울릉도로 들어왔어요. 양쪽에 있는 커다란 절벽 사이로 배가 ‘촤악’ 하며 들어갈 때 ‘이야, 이건 마치 소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곳만 같다’는 느낌을 받았죠. 울릉도에 반했습니다.”

이장희는 친구들에게 편지를 보낼 때 ‘울릉도에서’라는 말 대신 ‘울릉천국에서’라고 적었다. 그리고 울릉천국에서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지난 8일 이장희가 전용 공연을 하는 ‘울릉천국아트센터’가 문을 열었다. 울릉군 북면 송곳산 아래에 150명이 들어갈 수 있는 공연장과 카페, 이장희의 지난 음악활동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실까지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조성됐다. 이장희가 약 500평 규모의 건축부지와 주변 공원 부지를 기부했고, 경북도와 울릉군이 70억원을 들여 건물을 올렸다. 날씨 관계로 공연은 9월 중순까지 매주 화·목·토요일에 연다.

관객 150명 들어갈 공연장 등

지하 1층·지상 4층으로 조성

울릉도의 새 명소로 떠올라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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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이장희를 만나기 위해 울릉도로 향했다. 사동항 선착장에 내린 후 버스를 타고 1시간여 동안 달려 울릉천국아트센터가 있는 송곳산 기슭까지 이동했다. 버스기사가 걸쭉한 사투리로 “원래 그쪽에 아무것도 없었는데 사람들이 자꾸 이장희씨를 보러 가서 버스정류장이랑 공중화장실이 생겼다”고 말했다. 산기슭에서 500m 정도를 걸어 올라가 울릉천국아트센터와 마주했다. 연초록빛 나무에 둘러싸인 작은 하얀 건물이 보였다. 관광버스에서 내린 관객들이 기타를 들고 있는 이장희 동상과 사진을 찍거나 연못가를 산책하며 저녁 공연을 기다렸다.

오후 5시. 작은 공연장에 관객이 들어차자 노란 조명이 켜지면서 공연이 시작됐다. 통기타를 멘 이장희가 무대 위에 등장했다. 콘트라베이스를 든 조원익이 오른쪽에, 전자기타를 든 강근식이 왼쪽에 섰다. 첫 곡은 쎄시봉의 ‘그애와 나랑은’이었다. “그애와 나랑은 비밀이 있었네/ 그애와 나랑은 남몰래 만났네” 가사에 맞춰 관객들이 고개를 좌우로 까닥였다. 노래 사이사이 이장희는 울릉도 예찬과 함께 오랜 세월 끝에 다시 마이크를 잡게 된 사연을 풀어놨다.

“허리 아파 농사는 진작 포기

경북지사 제안에 극장 지어

70 넘어 다시 음악 하니 좋아”


“처음에 여기 와서 더덕 농사를 3년 지었어요. 그런데 제가 농사지을 건 아니더라고요. 허리도 아프고 잘 안돼서 포기했어요. 야생화 꽃씨를 들에 뿌리니 꽃이 잘 자랐어요. 연못도 있으니 사람들이 자꾸 찾아왔습니다. 4년 전에 김관용 경북도지사가 선거 유세하러 방문했다 돌아가서는 ‘여기(울릉도)에 극장을 짓고 공연을 하면 어떻겠느냐’는 아이디어를 내놨습니다. 극장이 다 지어지고 얼마 전부터 노래 연습을 했어요. 이 옆에 강근식이랑 조원익은 저의 술친구이자 젊었을 때 밴드 ‘동방의 빛’을 하면서 음악이야기를 하던 음악친구예요. 다시 연습하면서 ‘이야, 이거 참 좋구나’ 하고 남다른 감회가 느껴졌습니다. 나이 70이 넘어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할 수가 있나. 공연을 준비하면서 친구들과 다시 40~50년 전처럼 밤새도록 음악 이야기를 했습니다.”

1시간 반 동안의 공연에는 이장희의 수십년 세월이 묻어났다. 1971년 1집 <겨울이야기>로 데뷔한 후 전성기를 달리던 그는 1975년 대마초 파동으로 한동안 힘든 시절을 겪다가 1980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떠났다. “그랜드캐니언과 같은 자연이 좋아 떠났지만, 말이 안 통해서 참 힘들게 미국생활을 했다”는 그는 당시 힘든 마음을 담아 작곡한 노래 ‘나는 누구인가’를 소개하며 그때를 회상했다.

“미국에서 정말 가슴 아픈 일이 있었습니다. 한 3년 정도 살고 있는데, 처가 아이들을 데리고 하루아침에 식탁에 쪽지 하나 남겨둔 채 한국으로 가버렸습니다. 내 인생에 이런 게 찾아올 수 있나, 온갖 생각이 다 들고 참 어려웠던 시절이었습니다. 여러분, 제 노래 모두가 저의 인생입니다.”

이날 이장희는 ‘잊혀진 사람’ ‘편지를’ ‘울릉도는 나의 천국’ 등 10여곡을 불렀다. 공연은 그의 노래 중 가장 많이 알려진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와 ‘그건 너’로 마무리됐다. “지금으로부터 40여년 전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작곡한 노래입니다. 오늘밤은 이 울릉천국에 있는 모든 분들께 저의 진정을 드립니다”라고 말하자 객석에서 환호가 터져나왔다. “나 그대에게 드릴 게 있네/ 오늘밤 문득 드릴 말 있네/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터질 것 같은 이 내 사랑을”이라는 가사를 객석의 관객들이 입모아 따라 했다. 울릉도의 밤이 그렇게 깊어갔다.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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