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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SE★VIEW] 드라마 '라이브'가 그리는 경찰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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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동물센터에서 자원봉사할 무렵, 퇴근할 시간에 새끼 고양이가 한 마리 들어왔다. 갓 낳은 듯 탯줄조차 그대로였던 고양이를 두고 베테랑 봉사자 이모는 ‘어차피 죽겠다’고 했고, 젊은 몇몇 이들은 밥이라도 먹여보겠다며 굳이 사무실에서 분유를 얻어왔다.

꿀떡꿀떡 분유를 삼키던 새끼고양이는 항문을 살살 긁어주자 동그란 물방울 모양의 변도 봤다. 그 모습에 모두들 박수쳤다. 수건에 감싸 시내 병원으로 옮기기로 계획하고 센터를 나섰다. 한 2㎞쯤 운전해 갔을까 앞서가던 이모가 차를 세웠다. 그렇게 고양이는 아주 짧은 생을 마쳤다.

‘삶과 죽음은 한끗차이’라고들 말한다. 평범하게 살면 와 닿지 않는 이야기다. 세상 어느 곳에서 그리 극적인 상황들이 벌어진다는 말인가. 대형병원 아니고서야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할 일들이, 드라마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들이 진짜 드라마에서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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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과 29일 방송된 ‘라이브’의 줄기는 삶과 죽음이었다. 대장암 1기 판정을 받은 기한솔(성동일 분) 소식에 환호한 것도 잠시, 운명의 장난처럼 그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경찰이 한순간에 총에 맞아 숨을 거뒀다. 몸에 기름을 끼얹고 불을 붙인 그의 선배는 목숨만은 건졌다. 살고 싶고 죽고 싶던 두 사람의 운명이 바뀌었다. 그리고 이들을 지켜본 동료들은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기한솔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위기를 극복한 자신의 삶과 두 선배의 엇갈린 운명. 그 사이에 선 그의 온갖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성동일은 ‘은실이’의 빨간양말, ‘추노’의 천지호 등 유머러스한 캐릭터로 인식되는 배우다. 그러나 그의 진가는 슬픔에서 나온다. ‘응답하라 1988’의 어머니 장례에서 그렇다. 이번에도 그렇다. 캐릭터는 유쾌하지만, 연기는 진지함이 떠오르는 유일무이한 배우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맞닿은 기한솔의 심정을 표현하는 순간 성동일은 단연코 주인공이었다.

작가가 노희경임을 감안했을 때 이는 이른 판단이었다. 총격사건의 여파는 지구대 모두에게 번졌다. 경찰을 사명으로 삼던 오양촌(배성우 분)에게도, 호구지책으로 삼던 한정오(정유미 분)에게도. “사망한 경찰이 우리 지구대 동료가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괴롭다”는 오양촌의 고백에 누가 토를 달 수 있을까. 외국 유학을 떠나겠다는 한정오를 누가 말릴 수 있을까.

퇴직을 앞둔 이삼보(이얼 분)가 부사수를 모아 사격장에 찾아간 장면은 보은 이들의 마음을 그대로 담았다. 함부로 총기를 사용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자신을 지키기 위해 사격 연습은 해야 한다는, 후배들의 위하는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됐다. 그리고 기한솔의 병실 앞에서야 마음 놓고 눈물짓는 그의 모습. 속 깊은데 표현하지 못하는 어른들이 그렇다.

젊은 경찰들이 충격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나 고민은 현실세계로 이어진다. 어이없는 징계가 도사리는 속에서 임무는 수행해야 하고, 급여는 가족을 허덕이게 만드는. 그 속에서 영웅이되 영웅 아닌 그들의 삶이 과연 개인에게도 가치 있는지, 자부심을 줄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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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서 형사를 하는 대학 선배에게 가끔 연락이 오는 날이면 먼저 심장이 내려앉는다. 그와 범죄심리학 과목을 함께 수강했고, 경찰서 실습도 해봤기에 눈짐작으로나마 그 삶을 알기 때문이다. 매번 너털웃음을 지으며 “야 그런 상황이 막 그렇게 매일 벌어지고 그러는게 아냐”라고 하지만 ‘막, 그건, 그렇게, 그리고’라며 사이사이 쓸데없는 말을 넣는걸 보면 “어디서 약을 파냐”고 답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보통의 사람들이 겪는 보통의 하루가 어디에서 누군가에게는 결코 보통이 될 수 없다는 것.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일선에서 낮에는 동료가 죽고, 밤에는 버려진 아이가 살아날 수 있다는 것. 그 엄청난 스트레스 사이에서도 길고양이 새끼 한 마리로 웃을 수 있다는 것. 우리 경찰은 얼마나 대단한 직업인가. 그리고 이를 그려내는 작가 노희경은 얼마나 치밀하고 예리한 사람인가. 마지막주 방송을 앞둔 ‘라이브’가 이제는 무서워지기까지 한다.

/김진선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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