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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연예계 양극화①] 회당 1억원 vs 50만원…“쉬고 싶어 쉬는 배우는 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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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대한민국에서 배우로 살아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연예인은 이미 오래 전 ‘선망의 직업’이었지만, 모두의 삶이 같은 것은 아니다. 이 곳은 철저한 계급사회이자, ’빛과 그림자‘가 극명한 공간이다.

상위 1%, 소위 말하는 특A급 배우들의 삶은 화려하다. 대중의 열광을 한 몸에 받으며 억대 출연료까지 가져간다. 2007년 드라마 ‘태왕사신기’에 출연, 기본 출연료에 부가판권료까지 더해져 회당 2억 500만원을 받은 배용준을 시작으로 드라마 시장엔 억대 배우들이 속속 등장하게 됐다. 배우 장동건 현빈 김수현 이영애 전지현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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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세’를 지불한다지만 연예인들의 삶은 TV 밖 서민들의 눈엔 상대적 박탈감만 안긴다.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또 다른 배우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주조연 배우가 아닌 ‘생계형’ 조ㆍ단역배우들의 여건은 여전히 열악하다.

이들은 지상파 방송 3사가 정해높은 출연료 등급표에 따라 최저 6등급부터 최고 18등급까지 나뉘어져 출연료를 받는다. 이 등급표에서 10분당 기본 출연료는 최저 3만4650원(KBS 기준)이다. 70분짜리 드라마는 회당 43만 6590원, 60분짜리 드라마는 33만 2640원을 받는다. 최저 등급의 연기자의 경우 한 달 중 20일을 드라마에 출연해도 1년 기준 약 830만원(식비, 차비 포함)을 벌지 못한다.

최고 18등급이면 10분 기준 14만6770원까지 오른다. 주말연속극의 경우 169만5190원, 미니시리즈는 184만9300원이다.

이 등급이 상향되는 일은 쉽지 않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등급을 결정할 때는 경력, 인지도, 출연작의 수와 시청률, 수상경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판단한다”고 말했다. 상향 조정될 경우 특히나 까다롭게 책정하는 편이다. 주말 오전 인기 프로그램에 10년 넘게 출연 중인 한 배우는 “10년 넘게 연기자 생활을 하고 있는데 등급제에 따라 회당 50만원이 되지 않는 출연료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배우는 프로그램의 일등공신 격이지만 “돈을 더 달라고 하면 교체될지도 모르니 그냥 그거 받고 하겠다고 한다”며 “기본적으로 높은 등급의 배우들은 쓰지 않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회당 약 50만원씩 5주간 방송되면 250만원의 출연료를 받게 되지만, 출연은 격주가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월 평균 수입이 100원인 달도 있다. 거기에 의상이나 미용 등 직접비용이 없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상황도 허다하다. 촬영을 위해 스스로 의상을 구입하다 보면 출연료의 상당 부분이 떨어져 나간다. “인터넷 쇼핑이나 동대문에서 발품을 팔며 싼 옷을 찾아내는 노하우가 생겼다”고 말한다. 또 다른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7등급의 연기자는 “캐스팅이 불규칙하니 수입이 고정되지 않아 힘든 점이 많다”며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연기자로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럴지라도 고정 출연물이 있는 경우엔 그나마 사정이 낫다. 프로그램 출연의 보장되지 않거나 단발성으로 투입되는 경우엔 생계 유지 자체가 어려워진다. 총 5000여명의 탤런트, 개그맨, 성우, 연극인, 무술연기자 등이 소속된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에 따르면 조합원의 20000~3000명은 실업 상태에 가깝다. 방송연기자 두 명 중 한 명은 출연 소득이 전혀 없고, 연소득이 10만원 수준인 조합원도 있다.

한연노에 소속된 15년차 연기자는 “연기경력도 훨씬 낮은 어린 배우들이 회당 수천만원 대의 출연료를 가져가거나 나와 비슷한 비중이나 연기력의 배우가 몇 백만원 씩의 차이 나는 출연료를 가져가는 것을 보면 당연히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설상가상 출연료 미지급 사태가 벌어지면 피해는 고스란히 이들의 몫이다. 악재는 언제나 낮은 곳에서 시작된다. 한연노에 소속된 한 연기자는 “드라마 촬영현장은 주연배우 위주의 현장이기 때문에 조, 단역 배우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하루 종일 기다리기만 하는 경우도 많다. 모두가 고생하는 현장이지만, 이 곳에서 인지도가 없는 배우들은 또 다른 계급을 몸소 겪는다”라며 “식비나 교통비 역시 자비로 먼저 계산하는데, 출연료가 미지급될 경우 우리 같은 배우들은 돈을 들여 드라마를 찍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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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만 보면 ‘누구’라도 알아볼 만한 한 조연배우는 등급제에 해당되는 배우는 아니지만 작품이 끝날 때마다 생계를 걱정한다. 그는 “쉬고 싶어서 쉬는 배우는 0.01% 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며 “작품 하나가 끝나면 수입이 끊기기 때문에 힘든 직업이다”라며 “이 일을 하면서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생계 때문에 하던 일을 포기하거나 연기자로 살기 위해 번외 일을 하는 경우가 허다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작품과 함께 수입이 끊기고, 현재 상종가를 달리며 캐스팅되더라도 언제 섭외가 끊길지 모르는게 연예인들의 삶이다. 이 때문에 ‘물 들어올 때 노 젖는다’는 말은 업계 관용어가 된지 오래다. 한 올 한 해 두 편의 작품을 마친 조연배우의 매니저는 “올 들어 일을 많이 하고 있지만 사실 연예인의 생활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두려움과 불안을 항상 안고 있다”며 “기회가 있을 때 무조건 많이 벌어둬야 한다”고 말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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