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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황혼의 마구, 미국을 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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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메츠 38세 노장 디키 뒤늦게 너클볼 배워 부활

[춤추는 공만큼 기구한 인생]

어머니는 알콜 중독자… 성추행 당한 일까지 담은 자서전 펴내 베스트셀러

팔꿈치에는 인대도 없어… "나에겐 아직 긴 여행 남아"

19일(한국 시각) 미국 메이저리그 뉴욕 메츠의 홈구장인 시티 필드야구장. 메츠의 홈 팬들은 기립박수로 마운드의 노장 투수에게 기운을 불어넣고 있었다. 턱수염을 기른 투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공을 던졌다. 공의 스피드는 불과 시속 80마일(129㎞). 공은 바람을 타고 나풀거리듯 포수에게 안겼다. 삼진.

이 투수의 이름은 로버트 앨런 디키(38·뉴욕 메츠). 현재 메이저리그의 유일한 너클볼 투수다. 디키는 이날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상대로 삼진 13개를 잡아내며 9이닝 1피안타 완봉승을 거뒀다. 환호하는 관중을 향해 디키가 모자를 벗어 인사하는 동안 방송 아나운서는 "디키가 내셔널리그에서 68년 만에 두 경기 연속 1안타 완봉승을 달성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불혹을 앞둔 너클볼러 디키가 미국 프로야구에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그는 1997년 텍사스 레인저스에 입단해 작년까지 메이저리그 통산 41승50패에 그쳤던 노장 투수다. 올해 연봉은 메이저리그 평균(344만달러)을 조금 웃도는 425만달러(약 49억원). 그러나 21일까지 내셔널리그 다승(11승)·평균 자책점(2.00) 1위, 탈삼진(103개) 2위를 달리며 유력한 사이영상(최고투수상) 후보로 떠올랐다. 최고 160㎞대 강속구 투수들의 틈바구니에서 120~130㎞대 너클볼러가 리그를 주름잡고 있는 것이다.

디키가 미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비결은 단지 황혼기에 꽃을 피운 그의 실력 때문만은 아니다. 공기 저항으로 인해 이리저리 흔들리며 날아가는 너클볼에 순탄치 않았던 디키의 인생이 투영되는 까닭이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평소 라커룸에 소설책을 쌓아두고 읽는 '문학 청년'인 디키는 올 시즌 개막을 앞두고 자서전 '어디에서 공을 던지더라도(Wherever I wind up)'를 발간했다. 자신의 아픈 유년기를 솔직하게 다룬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불우했던 유년기… 야구가 희망

불우했다. 그는 미국 남동부 테네시주(州)의 주도 내슈빌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그가 어릴 적에 헤어졌다. 디키는 "어머니는 알코올 중독자가 됐고, 살림은 점점 쪼들렸다"고 떠올렸다. 여기저기 집을 옮기며 떠도는 생활이 이어졌다.

8살 때 디키는 여자 베이비시터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추행은 수차례 계속됐다. 얼마 뒤에는 동네 청소년에게 성폭행까지 당했다. 디키를 도와줄 사람은 주변에 없었다. 그는 "점점 목이 졸려 죽어가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상처 입은 디키에게 위로가 된 것은 문학과 야구였다. 그는 영문학에 재능이 있었고, 강속구 투수였다. 전액 장학금을 받고 사립 중학교에 입학했고, 테네시대학에 장학생으로 뽑혔다.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때는 대표팀 투수로 활약하며 2승을 올리며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디키는 199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텍사스 레인저스에 1라운드 전체 18순위로 지명됐다. 구단 측은 계약금 81만달러를 제시했다. 그런데 신체검사에서 상상하지도 못했던 결과가 나왔다. 그의 오른 팔꿈치 내측 인대가 아예 없었다. 텍사스는 계약금을 7만5000달러로 깎았다.

◇팔꿈치 부상… 너클볼러 도전

마이너리그 생활을 거쳐 2001년 메이저리그로 올라온 디키는 2005년 본격적으로 팔꿈치 통증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야 했다. 고심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팔에 부담이 덜 가는 너클볼이었다.

너클볼은 그리 쉽게 익힐 수 있는 공이 아니었다. 그는 너클볼러로 변신 후 첫 등판이었던 2006년 4월 7일 디트로이트전에서 홈런 6방을 맞고 무너졌다. 마이너리그로 떨어진 그는 시즌 후 방출했다. 2009년까지 여러 팀을 전전하는 떠돌이 생활이 이어졌다.

고된 마이너리그 생활 속에서 디키는 너클볼을 끊임없이 연구했다. 예전 투수들의 너클볼 영상을 분석하고, 당시 최고의 너클볼러였던 팀 웨이크필드에게도 조언을 구했다. 디키는 '고속 너클볼'을 개발했다. 공이 떨어지는 각도는 작지만 직구와 거의 비슷한 속도가 났다. 디키는 2010년 메츠에서 11승9패(평균 자책점 2.84)를 기록하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아직 너클볼 투수로는 젊다"

올해 전지훈련을 앞두고 디키는 구단의 만류를 무릅쓰고 평생의 소원이던 킬리만자로 등정에 성공했다. 어릴 적 헤밍웨이의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을 읽으며 마음의 상처를 치유했던 디키는 "산에 오르면서 야구와 내 삶을 다시 돌아봤다"고 했다.

올 시즌을 앞두고 디키는 "나의 유년기는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이라며 자서전을 출간했다. 자신의 아픈 과거를 처음 대중에게 고백한 것이다. 올해 디키가 너클볼을 완성한 비결도 정신적인 성숙 덕분이라는 분석이 많다.

디키의 아름다운 여정은 어디까지 이어질까. 너클볼 투수는 팔꿈치 부담이 적은 덕분에 선수 생명이 비교적 긴 편이다. 올해 2월 은퇴한 팀 웨이크필드(46)도 마흔 중반 나이까지 현역으로 뛰었다. 디키는 "너클볼 세계에선 난 아직 26살 정도"라며 "나에게는 아직 긴 여행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김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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