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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 (토)

무너진 한국판 메시 육성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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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바르셀로나와 손잡은 대교

이듬해 "대행사 능력 부족" 팀 해체

유소년 회원 300명 동심에 큰 상처

대행사 측 손배소로 뒤늦게 알려져

중앙일보

대교-시흥 바르셀로나 축구학교가 문을 닫으며 몸담았던 유망주들의 꿈도, 유럽식 인재 육성 시스템 도입에 대한 기대감도 물거품이 됐다. [사진 코리아EMG]


중앙일보

서울에 사는 최윤호(10) 군은 2년 전 황당한 사건을 겪었다. 좋아하는 축구선수 리오넬 메시(27·바르셀로나)가 배운 것과 똑같은 훈련 시스템을 제공한다는 설명을 듣고 최군은 2012년 초 경기도 시흥시 소재 대교-시흥 바르셀로나 유소년축구학교에 등록했다. 그런데 그해 말 ‘팀 해체’라는 통보를 받았다. 최군의 아버지 최금천(43) 씨는 “세계적인 축구클럽(FC 바르셀로나)과 굴지의 교육기업(대교)의 이미지를 믿고 선택했는데, 팀 해체 이후 연회비 환불은커녕 사과전화 한 통 받지 못했다”면서 “무엇보다도 아이의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2년 전 한 아이의 동심에 생채기를 남긴 그 사건이 결국 송사로 번졌다. 바르셀로나 구단의 국내 대행사인 코리아EMG가 “축구학교 운영을 고의로 방해해 발생한 직·간접 손해를 배상하라”며 지난 9월 대교 측에 수십억원 대의 소송을 제기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이와 관련해 대교가 바르셀로나와 계약 기간 중 별도의 축구학교 사업을 몰래 준비한 정황도 포착됐다.

대교는 지난 2011년 바르셀로나와 5년 계약을 맺고 시흥시에 대교-시흥 바르셀로나 축구학교를 열었다. 스페인 현지 코치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파격적인 운영 방식이 관심을 모았다. 유럽식 패스축구의 기초를 배울 수 있다는 기대감에 300명의 회원이 몰렸다.

‘한국축구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일 대안’으로 주목받던 바르셀로나 축구학교에 그림자가 드리워진 건 2012년 6월부터다. 대교와 코리아EMG가 교육 거점을 확대하고 대상도 영유아와 방과후 교실까지 확장하는 내용의 새 계약을 맺은 후 양측의 입장에 차이가 생겼다. 코리아EMG는 “2012년 말 대교측에서 일방적으로 ‘바르셀로나 축구학교 운영을 중단하겠다’고 통보해 쫓겨나듯 사무실을 비워줬다. 대교를 믿고 진행한 초기 투자 경비와 바르셀로나에 지급한 로열티 등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한다. 대교는 “코리아EMG의 마케팅 능력이 부족해 정상적인 운영이 어렵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대교의 입장에 변화가 생긴 이유는 짐작 가능하다. 본지가 입수한 ‘리틀대교FC 파일럿 추진건’이라는 제목의 대교 내부 문건에 따르면, 대교는 2012년 10월경부터 이미 ‘리틀대교FC’라는 이름의 독자적인 브랜드를 준비한 것으로 돼 있다. 해당 문건에는 ‘(바르셀로나에 지급하는) 로열티 없이 자체 브랜드만으로 축구클럽 사업을 진행해 수익성을 강화한다’는 문구가 나온다. 실제로 대교는 2개월 뒤 바르셀로나 축구학교를 접었고, 이후 바르셀로나 시스템을 벤치마킹해 시흥과 의왕·여주에 리틀대교FC를 운영하고 있다.

바르셀로나 축구학교가 사라진 후폭풍은 거세다. 바르셀로나식 육성 시스템(라마시아)을 도입하려던 축구계의 염원이 물거품이 됐다. 믿었던 도끼에 발등을 찍힌 바르셀로나 측의 반발도 적지 않다. 대교와 코리아EMG가 법정다툼을 벌이는 동안 가장 큰 피해자인 축구 유망주들의 한숨은 잊혀지게 됐다.

한 법조인은 “로열티를 아끼기 위해 바르셀로나와의 계약 관계를 무시한 대교의 결정은 교육사업의 독점적 지위를 남용한 ‘갑의 횡포’로 볼 수 있다”면서 “그 피해가 한국 축구와 축구를 좋아하는 어린이들에게 돌아간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송지훈 기자

송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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