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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금)

[김헌식 칼럼] ‘인터스텔라’에 몰린 30-40대, 한국 특유의 문화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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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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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인터스텔라’의 앤 해서웨이와 매튜 매커너히(사진 = 스틸컷)


폭발적인 흥행 기록을 세우려면 평소에 관심을 잘 기울이지 않던 이들까지 모을 수 있어야 한다. 보통 문화계는 여성층이 흥행을 좌우한다. 이런 점 때문에 콘텐츠 제작자들은 여성들에게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문화적 취향을 강력히 반영한다. 영화도 예외일 수가 없다. 여성 관객들의 취향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크게 흥행을 크게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수 백 만명 예컨대, 벌써 7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는 작품이 되려면 남성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인터스텔라’에는 개봉 첫날부터 남성 관객들이 대거 극장에 몰려드는 기현상을 보였다. 근래에 SF와 액션물을 보기 위해 이렇게 개봉관을 찾는 경우는 흔하지 않았다. 보고 싶은 영화는 대개 IPTV나 PC를 통해 소비하기 때문이다. 영화 ‘인터스텔라’를 관람하는 남성들의 행태는 마치 영화 ‘트랜스포머’를 보기 위해 극장을 방문할 때의 풍경과 같았다. ‘인터스텔라’의 흥행을 ‘트랜스포머’와 같은 등급으로 평가하게 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특히, 30-40대 남성들이 극장을 많이 찾았다. 직장인들이 하루 업무가 끝난 뒤 저녁에 동료들과 볼 수 있는 영화이기도 했다. 한편, 주말에는 가족들과 같이 볼 수 있는 영화에 해당했다. 극장에서 봐야 하는 이유는 크리스토퍼 놀란이 시각적인 효과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작품성을 그 시각적 효과에 잘 버무려내는 대표적인 감독이기 때문이다.

70mm 아이맥스 필름을 고수하는 이유도 영화콘텐츠 소비를 이끌어내는 중요한 요인이 됐다. 다크나이트 시리즈에서 이러한 점을 이미 충분히 잘 보여줬다. 더구나 이번에는 더욱 이 분량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도 한몫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에 대한 철학과 세계관 자체가 차별화된 콘텐츠로 관객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 영화감독 자체가 브랜드이면서 콘텐츠가 되는 셀럽 현상이 ‘인터스텔라’의 흥행에 개입하고 있는 것이다.

집단주의 문화로 인해 한국사회에서 강한 ‘버벌 마케팅’의 요소가 컸다. 관객들은 이제 너무 빤한 지식과 정보를 담은 작품은 보고나서 입소문을 내지 않는다. 내용과 소재의 어려움은 몰입을 방해할 수 있지만, 내적 동기를 북돋울 수도 있다. 과학이론의 접목과 새로운 발견적 지식들은 이 영화의 상품성을 더욱 높여주는 영화가 되도록 했다.

청소년과 대학생 시절 과학 잡지에서 읽었던 과학지식을 영화적으로 한층 업그레이드 시켰기 때문에 지식 교양의 습득 면에서 장점이 있었다. 아이들에게도 학습과 교육적 목적으로 적합한 영화인 셈이었고, 이 때문에 가족 동반 영화로도 적합했다. 열성적인 교육열이 한 몫 했다는 지적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남성 가장 그리고 아빠의 역할을 능동적으로 형상화해서 남성들의 몰입을 더 이끌어냈다. 무기력할 수 있는 명예퇴직자 아빠가 우주비행사로 다시 나서고 이 과정에서 딸을 통해 마침내 세계를 구한다. 더구나 남자주인공은 늙지 않은 상태에서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나기도 한다. 이러한 점은 가장들이 이 영화에 주목해야할 포인트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말 ‘인터스텔라’는 우월한 우주여행 영화일까. 이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사실 우주공간에 대한 정서적 감동은 ‘인터스텔라’보다 ‘그래비티(Gravity 2013)’가 더 낫다. 중력을 다룬 ‘인터스텔라’는 은하와 은하를 연결하는 콘셉트 자체가 장쾌하고 숭엄한 공간 미학을 보여준다면, ‘그래비티’는 우주공간의 특성을 중력의 관점에서 인간 심리를 세밀하게 반영하고 있다. 우주에 처한 인간의 존재론적 불안과 희망 의지를 교차시키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인터스텔라’는 경쟁작이 별로 없어서 흥행조건이 좋았다. 남녀노소 전 연령대개에 걸쳐 골고루 볼만한 영화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이런 사실은 너무 평범하기 때문에 언급이 잘 되지 않는다.

또한 영화 ‘인터스텔라’가 과학적 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지만 결국 아무도 체험하지 않은 가상의 허구의 설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과학 논문을 제작진이 발표한다고 해도 영화의 대부분이 픽션임에는 분명하다. 웜 홀이나 블랙홀을 통해 공간 이동을 한 인간이 온전히 형체를 유지할 수 있을 지 알 수 없다.

생명체를 유지하고 이성적 활동을 정상적으로 하면서 미래에 있는 아빠가 과거의 딸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 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그것은 상상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런 상상적인 장면이 없다면 과학다큐멘터리를 봐야지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면 안 될 듯싶다. 이성이 아니라 감성으로 보는 영화이어야 몰입할 수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장을 찾는 것이 어디 ‘인터스텔라’뿐이랴. ‘트랜스포머’가 채워주지 못한 SF욕구를 뒤늦게 ‘인터스텔라’가 채워줬을 뿐이며, 그 결핍의 욕구는 문화적 무의식 심리 때문에 발생한다.

무엇보다 한국의 30대 40대들은 우주와 로봇에 매우 익숙한 세대들이다. 어린 시절부터 로봇과 비행선, 우주여행에 대한 신비감과 경외감에 노정돼있는 문화적 무의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프라 모델에 관한 키덜트 취향의 남성들이 많은 것도 이를 말해주는 문화현상 가운데 하나다.

이러한 점은 앞으로 지속적으로 이와 관련한 문화콘텐츠의 생산을 요구하는 동력이 될 것이다. 그 세대의 생애 주기가 끝날 때까지 말이다. 초월적인 세계에 대한 경도는 언제나 세대를 불문하고 존재했다. 요즘 세대는 우주여행이나 로봇보다는 좀비나 뱀파이어, 오컬트에 더 경도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동아방송예술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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