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육상 100m 金 블레이크의 브레이크 없는 야망]
재대결 기다리고 있어… 200m 기록은 앞서
변화무쌍한 날씨 신경 안써, 야수는 어떤 상황서도 잘달려
자메이카의 육상 스타 요한 블레이크(23)가 두 팔을 양옆으로 쭉 뻗으며 외쳤다. 지난 11일 런던올림픽 메인 스타디움 앞에 선 그의 표정에선 자신감이 넘쳐 흘렀다. "런던올림픽을 생각하면 벌써 흥분이 됩니다. 바로 이곳에서 내가 얼마나 빠른 사나이인지를 전 세계 사람들에게 보여줘야죠."
스타디움을 배경으로 부지런히 사진을 찍던 블레이크는 기분이 좋은지 요즘 유행하는 '셔플 댄스'로 춤 솜씨를 뽐냈다. 그는 런던의 여름을 기다리고 있었다.
◇"볼트와의 재대결을 기다린다"
블레이크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단거리 황제' 우사인 볼트(26·자메이카)다. 블레이크는 작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 100m에서 우승했지만, 그의 금메달은 주목받지 못했다. 100m 세계 기록(9초58) 보유자인 '번개' 볼트를 빼놓고 열린 결선 레이스였기 때문이었다.
우승을 예약한 것 같았던 볼트는 100m 결선에서 스타트 총성이 울리기 전에 튀어나가고 말았다. 부정 출발로 실격된 볼트가 머리를 감싸쥐며 트랙을 떠났고, 블레이크는 남은 선수들과 경쟁해 9초92의 기록으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미국 스포츠 전문지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I)가 2011년 최고의 스포츠 뉴스로 선정할 만큼 놀라운 사건이었던 볼트의 실격에 블레이크의 우승은 묻히고 말았다. 블레이크는 당시 우승 기자회견에서도 자신과 관련된 질문보다는 볼트의 상황에 대해 대답을 더 많이 해야 했다. '행운의 챔피언'이란 달갑지 않은 꼬리표도 따라붙었다.
블레이크는 "메달을 따고 슬프고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며 "경기를 끝내고 볼트가 축하 인사를 건네줬을 때 비로소 기뻤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블레이크에게 이번 런던올림픽은 그의 진짜 실력을 증명해야 할 중요한 무대다. 블레이크와 볼트는 대구세계선수권 이후 같은 출발선에 서서 경쟁한 적이 없다. 블레이크는 "런던에서 만날 가장 반가운 얼굴이 볼트일 것"이라며 "볼트와의 재대결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작년 기록만 놓고 보면 100m에선 볼트(9초76)가 블레이크(9초82)에 앞서 있지만, 200m에서는 오히려 블레이크(19초26)가 볼트(19초40)보다 빨랐다.
◇"런던의 주인공은 나"
블레이크가 세계 육상계에 이름을 알린 것은 2009년 7월 로마에서 열린 골든 갈라 대회였다. 100m에서 타이슨 게이와 아사파 파월에 이어 9초96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하며 사상 최연소(19세197일)로 10초 벽을 깬 선수가 됐다.
'차세대 스타'로 주목받았던 그는 2009년 베를린세계육상선수권을 앞두고 진행된 도핑검사에 걸려 3개월 자격 정지를 당하는 시련을 맛봤다. 블레이크는 그해 세계선수권에서 대표팀 동료인 볼트의 신기록 행진을 지켜보며 꿈을 키웠다.
하지만 이번 런던올림픽에선 볼트가 도전자의 입장이 된다. 여전히 객관적인 실력에선 볼트가 블레이크를 앞선다는 평가가 우세하지만, 대구세계선수권 100m에서 실패한 볼트가 런던에서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승부는 섣불리 예측할 수 없다.
블레이크는 "볼트 외에도 타이슨 게이와 아사파 파월 등 단거리엔 쟁쟁한 선수들이 많다"며 "하지만 그들과의 승부에 두려움은 없다"고 했다. 그에게 출발선에서 어떻게 긴장을 푸느냐고 묻자 '야수(Beast)'처럼 두 손으로 가슴을 두드리면 떨리지 않는다고 했다. 변화무쌍한 런던의 여름 날씨에 대해서도 "야수는 어떤 상황에서도 잘 달린다"고 답했다. 그는 보통 남자들과 달리 손톱을 길게 기른다. 블레이크는 "'삼손의 머리카락'처럼 손톱을 길게 길러야 힘이 솟는다"고 했다.
블레이크가 기억하는 올림픽 최고의 순간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볼트가 100m, 200m, 400m 계주에서 세계 기록을 모두 갈아치운 장면이다. 그는 "런던에서 내가 그런 장면을 만들고 싶다"며 "충분히 이룰 수 있는 목표"라고 말했다.
[런던=홍준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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