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뷰티 광장시장점. (사진=오프뷰티) |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 초입. 상가들 사이로 보라색 간판 하나가 유독 눈에 띈다. 국내 최초 뷰티 아울렛을 표방하는 ‘오프뷰티’ 1호점이다.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들어선 매장은 예상보다 활기찼다. 외국인 관광객으로 보이는 이들이 진열대 사이를 천천히 걸으며 제품을 꼼꼼히 살폈다. 일부는 휴대폰으로 온라인 최저가를 검색해 비교하거나, 화장품을 한 아름 안고 계산대로 향했다.
매장 구조는 일반적인 뷰티 스토어와 사뭇 달랐다. 제품 안내 직원을 최소화하고, 진열대는 창고형으로 박스와 선반을 그대로 활용했다. 아누아, 조선미녀, 메디큐브, 롬앤 등 인기 K-뷰티 브랜드부터 샤넬, 디올 같은 명품 브랜드까지 다양한 제품이 정돈돼 있었다. 매대 곳곳에 붙은 ‘최대 90% 할인’ 문구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방문객의 연령과 성별이 다양한 점도 인상 깊었다. 젊은 여성은 물론, 중장년 부부와 광장시장을 찾았다가 들른 듯한 중년 여성 고객도 많았다.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도 꾸준히 이어졌다. 광장시장과 동대문으로 이어지는 관광 경로상의 입지가 자연스러운 고객 유입을 유도한 것이다.
태국에서 온 수파펀 씨는 SNS에서 한국 인플루언서의 소개 영상을 보고 이곳을 찾았다. 마침 인근 명소를 관광하던 길에 방문한 것이다. 그는 “올리브영에서 본 제품도 있는데 가격은 더 저렴해서 인상적이었다”며 “지인들에게 한국에 오면 한 번쯤 들러보라고 추천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전략적 재고 유통…‘직매입+오프라인’의 조합
오프뷰티 매장 안 매대. |
오프뷰티는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만 모아 파는 ‘땡처리 매장’과 성격이 다르다. 실제로 유통기한이 1년 미만인 제품은 전체의 5%도 되지 않는다. 대부분은 브랜드사의 패키지 리뉴얼, 생산량 조절, 유통 채널 전환 등의 이유로 발생한 ‘전략적 재고’다.
오프뷰티의 운영사 큐앤드비인터내셔날은 이 재고를 유통 도매상을 거치지 않고 브랜드 본사에서 직접 매입한다. 위탁이 아닌 직매입 구조이기에 소비자 판매가를 큰 폭으로 낮출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재고 소진을 넘어, 브랜드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유통 리디자인’으로 풀이된다. 김훈기 큐앤드비인터내셔날 이사는 “브랜드사의 전략적 판단에 따라 정리해야 할 상품을 대량으로 매입해 합리적 가격에 판매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온라인 아닌 오프라인, 폐쇄적 유통 전략의 이유
오프뷰티가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 매장을 고수하는 데는 명확한 이유가 있다. 온라인 채널은 가격 정보가 쉽게 확산돼 브랜드의 정가 정책이나 이미지 관리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오프라인 매장은 물리적으로 접근과 노출이 제한되므로 상대적으로 가격 통제가 쉽다.매장 운영 방식도 단순함을 추구한다. 체험 공간이나 응대 인력을 최소화하고 제품 진열과 가격 표시에만 집중한다. 마케팅 활동 역시 최소화했다. 이처럼 창고와 매장 기능을 결합한 구조는 물류비와 운영비를 동시에 절감하는 효과를 낳는다. 그 결과 소비자는 저렴하게 구매하는 즐거움을, 브랜드는 외부에 드러나지 않게 재고를 소진하는 목적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새로운 기회가 되는 공간…브랜드와 소비자 모두를 위한 설계
오프뷰티 매장 안 모습. |
오프뷰티의 등장은 브랜드와 소비자 모두에게 낯설지만 필요한 유통 대안을 제시한다. 브랜드는 이미지나 가격 질서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재고를 정리할 새로운 창구를 얻게 됐다.
소비자에게는 검증된 K-뷰티 및 명품 브랜드 제품을 저렴하게 구매할 기회다. 특히 제품력은 갖췄으나 마케팅 자원이 부족한 중소 브랜드에는 매장을 통한 자연스러운 홍보의 장이 되기도 한다. 김 이사는 “오프뷰티를 단순 판매 채널을 넘어, 브랜드와 소비자를 잇는 ‘뷰티 재고 유통 허브’로 키우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빠르게 확장 중…2026년 150개점 목표
오프뷰티의 한 지점. (사진=오프뷰티) |
오프뷰티는 지난 5월 첫 매장을 연 뒤 두 달 만에 10호점을 돌파했다. 광장시장점을 시작으로 망원, 인사동, 천안, 안암 등 다양한 상권에 매장을 내며 시장 반응을 살폈다. 올해 안에 40~50개, 2026년까지 전국 150개 매장 운영을 목표로 한다. 외국인 유동 인구가 많은 관광지뿐 아니라 일반 상권에서도 충분한 경쟁력을 갖췄다는 판단에 가맹 문의가 늘고 있다는 후문이다.
운영사인 큐앤드비인터내셔날은 대명화학 계열사로, 패션·뷰티 유통 분야에서 풍부한 브랜드 운영 경험을 쌓아왔다. 최근에는 글로벌 K-뷰티 유통사 ‘모스트’를 인수해 30여 개 뷰티 브랜드와 협업하고 있다. 오프뷰티는 이런 전략적 흐름 속에서 탄생한 프로젝트다.
오프뷰티는 단순히 할인율만 내세우는 매장이 아니다. 유통의 사각지대에 있던 전략적 재고를 브랜드 가치 손실 없이 재배치하는, 입체적인 유통 플랫폼에 가깝다. 소비자에게는 가격 혜택을, 중소 브랜드에는 성장의 기회를 제공한다. 정가 유통과 저가 판매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은 이 실험이 국내 뷰티 유통 지형도를 어떻게 바꿔 놓을지, 그리고 한국 시장에 새로운 ‘아울렛’의 개념을 정착시킬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그 밖에 자세한 내용은 김훈기 큐앤드비인터내셔날 이사와 일문일답 형식으로 풀어봤다.
Q. 기존 뷰티 시장에서 어떤 기회를 포착했는가.
K-뷰티의 급격한 성장과 함께 수많은 브랜드가 생겨나고, 그만큼 사라지기도 했다. 이 같은 흐름에서 시장에는 과잉 생산된 재고가 상당히 누적됐을 것으로 예상했다. 브랜드사 역시 이 재고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처리할지 고민이 컸다. 이에 재고를 합법적이고 안정적이며, 전문적으로 소진할 수 있는 유통망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Q. 5월 말 첫 매장 개점 이후 현재까지의 성과는 어떤가.
성과는 기대 이상으로 좋다. 특정 세대에 편중되지 않고, 외국인·내국인 할 것 없이 전 연령층 고객들이 고르게 좋은 반응을 보여줬다. 국내 고객 중에는 “이런 매장이 왜 이제야 생겼냐”는 반응도 있었다. 외국인 고객들은 “숨겨진 보물창고를 발견한 느낌”이라는 표현을 남긴 점이 인상적이다.
Q. 오프뷰티의 경쟁사, 경쟁 채널은 어디인가. 궁극적으로 뷰티 유통 시장에서 어떤 역할을 기대하나.
기존 시장 내 오프뷰티는 뚜렷한 경쟁사나 경쟁 채널이 없다고 생각한다. 기존 화장품 유통 시장에는 ‘아울렛’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올리브영은 트렌디한 신제품 중심의 편집숍, 다이소는 생활밀착형 저가 제품이 주력인 만큼 이들과는 지향점과 역할이 다르다. 오프뷰티는 소비자에게 검증된 정품을 더욱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하는 ‘뷰티 아울렛’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고 있다. 장기적 목표는 브랜드와 소비자 모두가 신뢰하는 ‘재고 유통의 중심 허브’로 자리매김하는 거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